‘민원사주’ 제보자 색출…사라진 공익신고자 보호
지난 1월 15일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지난해 12월 27일 류희림 방심위 위원장의 수사 의뢰와 관련돼 이뤄졌다. 류 위원장은 자신의 ‘청부민원’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한 익명의 제보자를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익명의 제보자는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인터뷰’를 인용 보도한 방송사를 심의·처벌해 달라는, 방심위에 제기된 다수의 민원이 류 위원장의 가족 및 지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에 의해 이뤄졌다고 신고했다. 류 위원장이 이를 알고도 심의를 회피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해 해당 방송사들에 대한 과징금 징계를 주도했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이는 직무와 연관될 경우 공직자가 이를 신고 및 기피해야 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이하 이해충돌방지법)’ 제5조 위반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류 위원장은 그러나 ‘청부민원’ 의혹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은 채 “민원인 개인정보 유출은 범죄행위”라며 제보자 색출에 나섰다. 여당에서도 제보자 색출에 힘을 실었다. 지난해 12월 29일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민원인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철저히 보호돼야 하며, 이를 무단으로 유출하는 것은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했다. 류 위원장은 내부 특별감사를 지시하는 한편, 해당 사안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며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에 이 사건을 넘겼고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류 위원장,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처벌 대상”
시민사회에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1월 16일 민변 미디어언론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자유언론실천재단, 전국언론노동조합, 전태일재단,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등으로 구성된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준비위원회와 참여연대, 사단법인 오픈넷, 언론개혁시민연대, 인권네트워크바람, 진보네트워크센터 등은 공동으로 서울경찰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공익신고자보호법 등 관련 법령은 공익침해행위나 부패행위를 알게 된 공직자에게 신고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또 신고한 공직자에게는 다른 법령이 있더라도 직무상의 비밀준수의무 위반이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수색영장을 발부한 법원과 이를 집행한 경찰은 명백히 공권력을 남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류 위원장에 대해서는 내부감찰 지시 및 검찰 고발이 부패방지권익위법, 이해충돌방지법, 공익신고자보호법 등에서 명시한 신고자 보호 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부패방지권익위법은 공직자 및 공공기관의 부패 행위에 대한 신고와 관련된 법으로 제62조는 “누구든지 신고자에게 신고나 이와 관련한 진술, 자료 제출 등을 이유로 한 불이익조치를 하여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불이익조치로는 ‘직무에 대한 부당한 감사 또는 조사나 그 결과의 공개’, ‘주의대상자 명단 작성 또는 그 명단의 공개’ 등이 있다. 이상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소장은 “부패방지권익위법에서는 신고자 보호 규정을 두고 있다. 이 건은 제보자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고 방심위가 공직 유관단체이기 때문에 부패방지권익위법 신고자 보호 규정에 딱 들어맞는 사례다”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민원사주라는 불공정하고 위법·부당한 행위를 신고했기 때문에 부패방지권익위법에 따라 해당 신고자를 보호해야 한다. 류 위원장이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고발한 것은 사실상 제보자를 색출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내부감사는 물론 고발도 불이익 조치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준용해 신고자를 보호하도록 돼 있는 이해충돌방지법에도 위반된다는 지적이 있다. 지난 1월 10일 서울 방송회관에서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심의한다’ 토론회에서 김지미 변호사는 공익제보자를 감찰하는 것 자체가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고를 이유로 신고자를 감사·조사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는 것 자체가 이해충돌방지법상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해충돌방지법 제20조 제2항은 “누구든지 신고 등을 이유로 불이익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제27조 제2항은 신고자의 인적사항이나 신고자를 짐작할 수 있는 정보를 공개하면 5년 이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고자 보호 못 하게 악용되는 개인정보보호법
신고자 보호 못 하게 악용되는 개인정보보호법 신고자 보호 규정을 위반하는 명분으로는 흔히 개인정보보호법이 악용된다. 1월 16일 사단법인 오프넷은 성명을 통해 “류희림 위원장의 비위 의혹을 신고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민원인의 개인정보를 처리한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이 규정하고 있는 ‘다른 법률에 의한 행위’로 볼 수 있다. 또 공익신고를 위한 행위로서 형법상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의 위법행위로 볼 수 없다”라며 “개인정보보호법이 공익제보, 언론보도의 탄압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22년 10월 대통령실은 ‘관보’에 실린 병무청 공고(공직자의 병역사항)를 통해 직원들의 개인신상을 공개한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2022년 4월, 경찰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 당시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이유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MBC 기자의 자택과 MBC 뉴스룸을 압수수색했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압수수색은 중대한 범죄이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굉장히 높은 경우에 한정돼야 한다. 기업에서 고객의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유출한 사건도 아니고 방심위원장의 비위를 신고하기 위해 민원인의 정보가 제공됐거나 공직자의 인사청문회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은 불가피하거나 공익적인 측면이 크다”라며 “그럼에도 경찰이 압수수색을 한 점은 기본권 침해 여지가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오픈넷은 “개인정보보호법이 정치적·경제적 권력자의 언론 통제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개인의 공익제보, 사회고발, 언론보도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언론·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자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권익위가 침묵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안디도 내부제보실천운동 사무처장은 “류 위원장이 감찰반을 꾸려 색출하는 과정이 과거 공공기관이나 군대에서 신고자를 몰아세우고 색출하려고 했던 과정과 닮아 우려스럽다. 20~30년 전으로 퇴보하고 있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신고자를 색출하고 집권당까지 합세해 탄압하려고 했던 적은 근래에는 거의 없었다”라며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국민권익위가 불이익 조치를 중단하도록 적극적인 보호조치를 취하고, 다른 정부 유관기관에도 협조를 요청하곤 했는데, 지금은 권익위도 침묵하고 있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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