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엔 국경없지만 과학자는 국적있다"…박정희 부름에 응답한 그들

변휘 기자 2024. 1. 2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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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신년기획]⑩K-브레인 유출, 위기를 기회로
장인순 전 원자력연구원 원장 인터뷰
[편집자주] 인구구조 급변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가 국가적 난제로 떠올랐다. 50년 뒤 학령인구는 현재 대비 3분의1 수준(약 280만명)으로 이공계(理工界) 인재 부족이 심각할 전망이다. 한국이 1962년부터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고도성장기를 보낸 원동력은 바로 '인적 자본'이었다. 하지만 최근 30년간 인구감소와 저성장 늪에 빠져 국가 미래는 절체절명 위기를 맞았다. 국가의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신(新) 이공계 두뇌 육성책'을 모색한다.

/사진=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지 않습니까. 젊은 과학기술 인재들도 내면에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있고,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보람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1978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장인순 박사(84·사진)는 박정희 정부의 귀국 요청을 받았다. 국가 원자력 프로젝트 추진을 목표로 100명의 해외 물리학자를 향한 부름이었다. 장 박사의 전공인 불소화학은 원자력발전 기술 자립의 핵심이다.

지난해 말 세종시 전의마을도서관에서 만난 장 박사는 "물론 미국에서의 생활이 더 편했을 수 있지만, 우리네 삶이라는 게 편하려고만 사는 것은 아니지 않소"라고 당시 어려운 결심의 이유를 털어놓았다.

장 박사는 1979년 3월 서울 땅을 밟았다. 그해 10·26 사건으로 박 대통령이 숨지고, 원자력 개발 프로젝트도 굴곡을 겪었다. 국가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에 걸맞지 않게 R&D(연구개발) 인프라는 열악했다. 나무상자 위에 비닐을 덮어 실험대를 손수 제작했고, 연구비는 1000만원도 안 됐다.

장 박사는 "실은 눈앞이 깜깜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귀국 전 각오했던 것보다 낙후된 연구환경에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젊은 동료 연구원들의 눈빛에서 희망을 봤다"고 회고했다. 연구팀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부족한 건 몸으로 때우자'고 뜻을 모았다. 기자재가 부족했지만, 해외에서 들여오려면 값비싼 가격은 둘째치고 수개월 이상 걸렸다. 그래서 장 박사는 부지런히 청계천을 드나들었다. 그는 "헌책방에서 문서를 찾고, 청계천에서 부품을 찾아 만들어 썼다"며 "목표가 확실하니, 방법을 찾게 되더라"고 했다.

이후의 성과는 알려진 대로다. 1989년 핵연료의 국산화로 한국은 원전 기술 자립을 넘어 세계적인 원전 강국으로 발돋움하게 됐다. 장 박사는 1999~2005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을 지냈고, 2009년에는 UAE(아랍에미리트)에 수출한 한국형 원자로와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조국에 돌아와 자신의 역량으로 기여하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40여년 전으로 다시 돌아가도 같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장 박사는 현재 해외의 한인 과학기술인재들에게 '나처럼 국가에 돌아와 봉사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는 "어느 위치에서든 직분에 맞게 연구 활동에 전력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경험에 비춰 "해외의 인재들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국가에 봉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 내면의 부름에 응답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오히려 국내 연구기관이 '한국인'이라는 국적에 얽매이기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인재 유치에 나서기를 주문했다. 장 박사는 "2001년 브라질에 갔는데, 현지에서 '1989년 원자력연구원에서 연수받았다'는 브라질 정부 인사를 만났다"면서 "나를 기억하고,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결코 손해가 아니다"라고 떠올렸다.

장 박사는 또 "미국의 기초과학을 키운 사람 중 상당수가 한국·일본·중국·인도인들이다. 그들이 미국에서 공짜로 공부한 게 아니라, 미국에 어마어마한 부를 쌓게 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도 개발도상국의 우수 인재를 대거 유치하고, 역량을 갖췄다면 국가적인 R&D 프로젝트의 책임도 맡겨야 한다"면서 "대덕연구단지 인력의 3분의 1쯤은 외국인으로 채웠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변휘 기자 hynew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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