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 한 번에 골프행사 두 번…포스코 ‘도덕성 타격’ 이후
5박7일 캐나다 출장 ‘배임’ 고발
“글로벌 기업이라…” 궁색한 해명
새 리더십 창출 외풍 부는 시기
사외이사로 구성된 후추위 위기
며칠 전 포스코홀딩스 관련 뉴스를 보고 잠시 머리가 멍했다. 시이오(CEO)후보추천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희재 사외이사(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의 인터뷰 내용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최근 호화 해외 이사회 때문에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박 위원장은 이사회 지원 인력을 다 포함하면 보도된 것보다 해외 이사회 참석자 수가 훨씬 많은데, 언론이 몇명만 축소 거론하다 보니 액수가 커 보이는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오래전 필자가 한 언론사의 산업 담당 데스크로 근무할 때의 일이 생각났다. 알고 지내던 한 주류업체 임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담당 기자 20여명과 함께 해외 본사와 주류업체들을 시찰하는 출장을 계획하고 있는데, 동참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필자가 맡고 있던 부서는 주류산업을 담당하고 있지도 않았거니와, 기자들이 가는 해외 출장에 데스크가 나선다는 것도 영 모양이 맞지 않았다.
이 임원의 설명인즉, 5박6일 일정 동안 골프를 다섯차례 치기로 되어 있단다. 그런데 우리 매체의 주류 담당 기자가 골프를 치지 않기 때문에 필자가 대신 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몇몇 매체도 데스크들이 오기로 약속을 받았단다.
골프라는 게 일반적으로 하루 운동이라고 한다. 골프장 이동과 한 라운드 18홀을 돌고 식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을 다 감안하면 사실상 하루를 다 까먹는다. 20명 인력이 단체로 팀을 나눠서 골프를 치면 아마 술자리까지 이어질 것이다. 5박6일 출장에 다섯번의 골프가 들어 있다면 이는 골프 여행이지 주류기업 탐방과 주류 유통을 이해하기 위한 출장이 아니다.
현장시찰·세미나 대신 관광·트레킹
포스코홀딩스의 여러차례 해외 이사회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호화판이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내외 이사와 회사 직원 등 16명의 한끼 식사비가 2000만원을 넘었다느니, 수백만원짜리 고급 와인이 곁들여졌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보도되었다. 필자는 사외이사들이 먹고 마신 밥과 술이 얼마나 비쌌는지, 이것이 청탁금지법을 위반했는지, 해외 자회사들의 비용 분담이 배임에 해당하는지보다 이들이 해외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가 더 궁금하다.
논란이 확산하는 와중에 박희재 포스코홀딩스 시이오후보추천위원장이 언론매체에 한 말을 보자. 그는 “글로벌 기업 포스코의 해외 이사회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사외이사들이 포스코그룹의 글로벌 사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외에서 이사회를 열고 해외 사업장을 둘러본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호화 이사회 논란에 대해서는 “이사들의 해외 출장에는 현업 부서와 지원 부서, 해외 자회사 직원 등 수행 인력만 30명이 넘는다”며 “언론보도에서는 몇명만 거론되니 액수가 커 보이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비용 문제에 대해서는 박 위원장 설명을 수용한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해외 이사회 개최의 취지에 맞게끔 이사들이 현지에서 활동했는가. 언론에 처음 보도가 나온 것은 지난해 8월 5박7일의 캐나다 이사회였다. 이사진 12명과 직원 4명 등 16명의 출장에 총 6억8000만원이 지출되었는데, 해산물 식당과 중식당에서 각각 2000만원이 넘는 식비를 지출한 사례가 크게 다루어졌다.
이 기간 이사회는 단 한차례, 8월7일 오후에만 열렸다. 반면 골프 행사는 두차례 진행됐다. 나머지 일정 대부분은 관광과 트레킹이었다고 한다. 도시 간 이동에 전세기와 전세헬기를 활용하였는데 그 비용이 2억원 가까이 된다. 광산 시찰보다는 컬럼비아 대빙원 설상차, 밴프의 설퍼산 곤돌라, 밴쿠버 캐필라노 현수교 등 관광이나 골프를 하기 위한 시간 확보를 위해 항공기를 빌린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포스코의 글로벌 사업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취지라면 최대한 많은 산업 현장을 방문하고 이사들 간 토론이나 세미나로 일정을 채워 넣었어야했다.
밥과 술에 많은 돈을 쓴 것처럼 보이지만 보도 내용과 실제 데이터(사람 수)가 달라서 빚어진 오해라는 설명은 너무 후지다. 골프와 관광 일정이 왜 그렇게 많았는지에 대한 해명은 왜 없는가.
‘포스코는 케이티(KT) 같은 내수기업이 아니며, 매출의 3분의 2가 해외에서 나오는 글로벌 기업이어서 해외 이사회와 현장 방문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대빙원 설상차와 골프, 백두산 관광 앞에서 참으로 공허하게 들린다. 백두산 얘기는 2019년 중국에서 열린 이사회와 관련된 것이다. ‘캐나다 이사회’를 고발한 포항지역 시민단체의 추가 고발에 따르면, 그해 8월 포스코는 중국 베이징에서 이사회를 개최하면서 전세기를 이용해 7일간 백두산 일대 등을 관광했다고 한다. 백두산에서 채취한 버섯과 러시아산 털게, 고급 와인 등 식사와 전세기 비용을 포함해 7억~8억원의 비용이 들었는데, 상당 부분을 포스코차이나가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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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세력’ 이롭게 할 일
경찰은 중국 이사회 참석자에 대해서도 배임 또는 배임수재,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 중이다.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시이오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는 최정우 회장의 뒤를 이을 후보군을 선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위원회의 사외이사들은 모두 경찰의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그러다 보니 호화판 이사회 폭로가 신임 회장 선출에 앞서 후추위 흔들기를 시도하려는 외부 세력이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포스코그룹 회장 자리는 늘 정권의 전리품 정도로 여겨져왔다. 사실상 정부 개입으로 회장이 결정되는 일이 잦았다. 이번 사건 역시 현 정권과 관련 있는 외부 인사를 새 회장으로 앉히기 위한 정치권의 작업으로 보는 분위기도 있다. 국민연금 이사장이 최근 회장 선임 절차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발언을 한 이후 최정우 회장이 3연임 시도를 포기한 것 역시 외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최 회장은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나 재계 신년인사회 등에서 배제되어왔다.
그래서인지 후추위는 최근 일련의 상황에 대해 외부 세력 개입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후추위는 지난 12일 공식 입장문에서 “(해외 이사회에 대한) 비판 취지를 겸허하게 수용하겠다”면서도 “새 회장 선출을 위해 엄정한 심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시기에 후추위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이득을 보려는 시도는 없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새 회장 선출 작업은 경찰 수사 여부와 상관없이 계속 진행하겠다는 뜻도 확고히 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도덕성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사법리스크에 빠진 후추위 구성원들이 후임 회장 선출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김수헌│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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