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관통하는 질환”···이번엔 ‘1형 당뇨’ 환자·가족 고충 덜 수 있을까[복만개]

김향미 기자 2024. 1. 2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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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만개]는 ‘보건복지 분야를 둘러싼 만개의 이슈’의 줄임말입니다. 보건복지 담당 기자들이 주요 현안을 자세히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사단법인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관계자들이 15일 오전 세종시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1형 당뇨환자들의 처우개선을 호소한 가운데 환자와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9일이었습니다.

<“아홉 살 딸 너무 아파 힘들어”…일가족 숨진 채 발견>이란 기사가 나왔습니다. 충남 태안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9살 딸은 ‘1형 당뇨’를 앓고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의 유서에는 “딸이 너무 힘들어해서 마음이 아프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크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기사에는 50개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너무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

누구라도 이 댓글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비극’이라는 말, 이외 다른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1형 당뇨가 어떤 병인가요.”

당뇨병은 1형 당뇨와 2형 당뇨로 나뉩니다. 1형은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아 혈당 조절이 되지 않는 만성 질환입니다. 주로 소아·청소년기에 발병해 ‘소아당뇨’라 불리기도 합니다. 2형은 유전적 요인과 식습관에 따른 비만·과체중 등이 작용해 생기는 병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1형 당뇨병 환자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3만6248명입니다. 이 중 만 19세 미만 환자가 3013명입니다.

1형 당뇨병 환자는 고혈당이나 저혈당 쇼크에 빠지지 않기 위해 수시로 혈당을 측정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적절한 양의 인슐린을 주사해야 하고요. 지금은 연속혈당측정기가 있지만 이전엔 많게는 하루 10번 넘게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뽑아 혈당을 측정했다고 합니다. 환자와 보호자 모두 힘든 일일 겁니다.

국립의과학지식센터 홈페이지에서 ‘1형 당뇨’를 검색해봤습니다.

<제1형 당뇨병 당사자와 부모의 심리사회적 경험>(김미영 한영대 간호학부, The Journal of Korean Diabetes, 2021)이란 논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1형 당뇨병 특성상 질병 관련 자기관리는 매일 이루어져야 하고, 부모도 질병관리에 참여하게 되므로 이는 당사자와 부모의 심리사회적인 디스트레스(distress)*를 초래한다. 이와 관련하여 제1형 당뇨병 당사자와 부모의 절반 정도가 질병으로 인해 부정적인 심리사회적 문제를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 ‘제1형 당뇨병 당사자와 부모의 심리사회적 경험’(2021) /*디스트레스 : 신체적, 감정적 문제를 가져오는 스트레스

이 논문에 따르면 1형 당뇨병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심리사회적 문제 발생 비율은 55.95%로 질병이 없는 아동에 비해 높았습니다. 세부적으로는 성가심(irritation)이 38.1%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우울(36.9%), 불안(32.1%) 순이었습니다. 성인 환자라고 해서 이런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형 당뇨병 자녀를 둔 부모도 디스트레스, 스트레스, 불안, 우울, 외상 후 장애 등을 호소한다고 합니다. “특히 자녀가 진단받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자녀를 돌보는 것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해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애통할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지난 15일 한국제1형당뇨병환우회 회원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인스타그램(@kst1diabetes) 캡처

환우회 회원들은 ‘태안 일가족 사망사건’과 관련해 “부모 손으로 직접 투여한 인슐린 주사에 아파하는 자녀의 모습을 보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라며 “태안 일가족의 비극은 남의 일이 아니다”고 말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습니다.

환우회 측은 정부에 1형 당뇨병을 중증 난치성 질환으로 인정해 본인 부담을 낮추고, 지원 체계를 강화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관계자들이 15일 오전 세종시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1형 당뇨환자들의 처우개선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소아환자가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보건교사를 통한 인슐린 주사 등의 의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고혈당·저혈당 등의 위급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상급학교 배정 때 근거리 우선 배정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교육뿐만 아니라 보육 서비스를 받기도 어렵습니다. 2020년 3월 <당뇨 있는 아이는 안 받습니다>란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1형 당뇨가 있는 아이에 대해) 유치원 원장은 ‘아이 몸 상태가 불안하고 신경이 쓰이니 규모가 작은 다른 유치원으로 가달라’고 요청했다.
····
어린이집에서는 원장이 1형 당뇨 원아에 대한 보육을 거부했다. 원아의 식사도 가정에서 따로 하고 올 것을 요구했다.
- ‘당뇨 있는 아이는 안 받습니다’(2020.3.1), 경향신문

환우회 측은 ‘소아당뇨’가 아닌 ‘췌도부전증’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소아당뇨라는 이름은 1형, 2형 당뇨병을 혼용한 정체불명의 병명으로 많은 오해와 편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1형 당뇨는) 평생 혈당 관리를 해야 합병증 없이 생존할 수 있어 일상생활과 직업 선택에도 제약이 큰 췌장 장애”라고 했습니다.

예견된 참극, 일종의 사회적 타살입니다.”

대한아동병원협회는 지난 15일 태안 일가족 사망사건과 관련해 입장문을 내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규정하며 “1형 당뇨 소아환자는 18세까지만이라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협회는 “미국에서는 소아 당뇨환자를 위한 의료 보험 혜택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장애인법(ADA)으로도 당뇨병 환자를 보호한다”며 “우리나라도 소아 당뇨환자가 18세가 될 때까지만이라도 장애인 혜택을 받도록 하는 등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는 태안 일가족 사망사건과 관련해 지난 12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가족들을 안타까운 상황에 이르게 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관련 정책들을 점검·보완해가겠다”고 했습니다.

우선 이렇게 조치했습니다.

올 3월부터소아 환자 대상 당뇨관리기기 구입 시 건강보험 급여를 확대할 계획이었는데 2월부터 당겨 적용한다고 했습니다. 정밀 인슐린 자동주입기 구입 시 381만원에 달하던 본인부담금은 45만원대로 낮아집다. 월 19만원 수준인 연속혈당측정기 등의 환자 부담도 월 10만원 수준으로 낮아집니다.

또 기존 1형 당뇨병 환자 재택의료 시범사업에서 인슐린펌프와 관련된 교육을 처방 시 의사 교육은 6회에서 8회로 늘리고 간호사 환자사용교육도 4회 확대(8회→12회)하기로 했습니다.


☞ 소아·청소년 1형 당뇨환자 의료기기 지원 확대···본인 부담 10분의 1로
     https://www.khan.co.kr/life/health/article/202312281714001

다만 복지부는 앞선 자료에서 중증질환 산정특례 지정 요구와 관련해선 “‘치료기간을 특정’해 운영하는 중증질환 산정특례 제도 취지에 맞게 1형 당뇨의 지정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중증질환 산정특례제도는 심장, 뇌수술의 경우는 30일, 암 등의 경우는 5년 등 치료기간을 한정해 특례로 지정해 본인부담 의료비를 경감해주는 제도입니다.

복지부는 지난 19일 환자단체와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한국소아당뇨인협회, 대한당뇨병연합,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환자단체와 내분비학회 김재현 교수(분당서울대), 대한당뇨병학회 김수경 교수(차의과대) 및 김재현 교수(성균관의대)가 참석했습니다. 교육부 학생건강정책과장 및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관련 부처와 기관 관계자도 참석했습니다.

환자단체 측은 간담회에서 “1형 당뇨는 어릴 때부터 발병해 평생 완치가 어렵고, 매일 인슐린 주사가 필요한 의료비 부담이 큰 질환”이라며 “중증질환 지정과 19세 이상에도 당뇨 관리기기의 추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또 “학교 현장에서 1형 당뇨 환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질환 특성에 따라 전자기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인식 개선 및 지원도 중요하다”라고 했습니다. 구직 및 직장 내 편견 해소를 위한 사회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질병의 중증도 등을 고려할 때 ‘1형 당뇨’라는 질병 명칭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있다”며 “특히 1형 당뇨 환자들은 기기 사용에 대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중요한 만큼 의료 현장에서 관련 교육이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완책이 필요하다”라고 의견을 냈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 회의실에서 1형 당뇨 환자단체와 전문가들, 관련 기관 관계자들과 함께 간담회를 열고 있다. 복지부 제공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간담회에서 “대책을 만드는 와중에 충남 태안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며 “환자와 가족들이 겪는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바탕으로 지원방안을 찾아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했습니다.

“건강보험 의료보장의 사명은 국민들이 적절하게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특정 질병에 따라 의료보장 제도가 가지고 있는 보호 수준과 급여의 내용을 세심하게 다듬겠습니다.”
-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 1형 당뇨 관련 간담회(2024.1.19)

1형 당뇨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필요한 지원 제도들이 마련될지 주목됩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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