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사로 보는 세상] 암세포 죽이려 세균 죽이는 약을 쓰게 된 이유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2024. 1.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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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람의 정상세포는 30회 정도 분열을 하면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스스로 죽어 없어지는 것이 자연 현상이다. 그러나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바뀌면 죽어 없어지지 않고 거의 무한대로 자라나게 된다. 암세포는 주변 조직으로 침입해 들어가므로 결과적으로 정상세포와 조직이 암세포로 바뀌게 되어 정상 기능을 못하게 된다.

요즘은 약(항암제), 수술, 방사선요법 등 좋은 치료법이 많이 발전하여 암치료 효과가 전보다 많이 개선되었지만 그래도 암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섬뜩해지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세균 죽이는 항생제를 사용한다는 게 무슨 말일까.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페니실린 발견의 나비 효과

앞선 최초 항생제 페니실린 발견은 우연일까(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2933)에서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플레밍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실제로 감염병 치료약으로 사용되기까지 여러 해가 흘렀음을 소개했다. 

곰팡이로부터 세균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왁스먼(Selman Abraham Waksman, 1888-1973)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191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그는 ‘세상에는 곰팡이 종류가 아주 많으니 페니실리움 곰팡이에 들어 있는 항생제 페니실린 외에도 다른 종류의 항생제를 가지고 있는 곰팡이 종류가 많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 왁스먼은 러트거즈대(Rutgers University)에 들어갔다. 농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원에 들어가 토양(흙)에 존재하는 곰팡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캘리포니아대에서 잠시 연구원생활을 한 후 러트거즈대로 돌아와 토양 미생물학과에서 강사로 일하기 시작한 후 곧 교수가 되었다. 

1940년부터 신설된 미생물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토양에 존재하는 미생물 연구를 계속했다. 학자로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하면서 연구비를 많이 수주하게 되자 연구팀 규모도 점점 커져 갔다. 그러고 있을 때 페니실린이 발견되고 시판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감염병 치료에 효과를 지닌 물질(페니실린)이 곰팡이에 들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곰팡이의 종류가 엄청나게 다양함을 알고 있는 그에게 새로운 항생제를 찾아 보겠다는 생각은 다음 연구목표로 아주 합당한 것이었다.

셀먼 아브라함 왁스먼. 위키미디어 제공

● 수십가지 항생제를 찾아낸 왁스먼의 성과와 공헌자들의 발견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왁스먼의 지도로 1927년에 박사학위를 받은 뒤보스(Rene Dubos, 1901-1982)는 졸업 후에도 세균의 기능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왁스먼은 뒤보스에게 세균 종류를 바꾸어 가면서 곰팡이 추출물을 이용하여 항균 효과를 보이는 물질을 찾아보자고 했다. 뒤보스는 록펠러 연구소에서 근무하던 1939년에 세균을 죽일 수 있는 티로트리신(tyrothricin)과 그라미시딘(gramicidin)을 분리했다. 페니실린 이외에 항생제가 존재할 거라는 예상이 들어맞은 것이다. 

같은 해에 왁스먼은 박사학위를 받고 졸업하는 우드럽(H. Boyd Woodruff, 1917-2017)에게 “과거 제자인 뒤보스가 흙 속에 존재하는 곰팡이에서 세균을 죽일 수 있는 물질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제부터 우리도 그런 물질을 찾아 보자”는 이야기를 했다. 뒤보스가 발견한 물질은 그람 양성 세균(미생물학자 그람이 발견한 염색법으로 염색되는 세균)에 효과를 지녔으므로 왁스먼과 우드럽은 그람 음성 세균을 사멸할 수 있는 항생제를 찾고자 했다. 

왁스먼과 우드럽은 1940년에 악티노마이시스(Actinomyces) 곰팡이로부터 그람 음성 세균을 사멸할 수 있는 물질을 발견하여 악티노마이신(actinomycin)이라 이름붙였다. 악티노마이신은 그 때까지 발견된 물질중 가장 항균 효과가 강했지만 대신 독성도 가장 강해서 부작용이 잘 나타나는 점이 문제였다.

광범위하게 세균잡는 약을 찾아내려는 왁스먼의 계획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성과를 보여 주었다. 또다른 제자 호닝(Elizabeth Horning)이 1942년에 푸미가신(fumigacin)과 클라바신(clavacin)을 발견하는 등 수많은 새로운 곰팡이와 항생물질이 계속해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실험적으로 세균을 죽이는 효과를 지니는 물질이 모두 사람 몸 속에서 효과를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알려졌다. 세포를 이용한 실험에서 효과가 있으면 동물실험을 통해 먼저 검증을 해야 한다. 실험동물에서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된 후에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는 것이 요즘의 연구 순서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물질이 존재하고 있고 사람에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독성과 부작용에 대한 검증이 철저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뒤보스는 1942년에 항생물질이 세균감염을 잘 해결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그 세균이 항생물질에 저항성을 가질 수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현상을 ‘항생제 내성’이라 하며 이런 세균이 많아지면 세균 감염 해결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이 그의 경고였다. 

왁스먼은 스트렙토마이시스(Streptomyces griseus) 곰팡이에서 분리한 스트렙토마이신(1943)을 발견한 것을 비롯하여 네오마이신(1948) 등 항균효과를 지닌 새로운 물질을 계속 발견했다. 특히 스트렙토마이신은 그람 음성 세균에 효과를 지닌 최초의 항생제였으며 불치의 병 결핵을 치료할 수 있는 최초의 약이었다.

1949년에 러트거스대에 설립된 미생물학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왁스먼이 임명되었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항생물질에 대한 이익금의 많은 부분을 이 연구에 사용했다. 왁스먼은 스트렙토마이신 발견의 공로를 인정받아 195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18권의 책과 400편이 넘는 논문을 남겼다.

왁스먼은 “유기체(곰팡이)에서 분리한 화학물질로 세균을 사멸할 수 있는 물질”이라는 의미로 항생제(antibiotics)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원래 세균을 죽이는 약을 의미하는 항균제는 유기체에서 분리한 항생제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을 합성하여 사용하는 화학요법제로 구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항생제도 곰팡이를 키우지 않고 합성하여 분리하는 경우도 많아졌으므로 항생제라 하면 화학요법제를 포함하여 항균제 대신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스트렙토마이신. 위키미디어 제공

● 스트렙토마이신의 진짜 발견자는 누구인가.

스트렙토마이신 발견이 먼저 발견한 다른 항생제가 받지 못한 노벨상을 안겨다 준 것은 당시까지 불치의 병이던 결핵애 효과를 지니고 있는 것을 비롯하여 효과가 아주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스트렙토마이신이 다른 항생제보다 더 널리 사용될 수 있음이 알려지자 왁스먼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은 샤츠(Albert Schatz, 1920-2005)는 스트렙토마이신에 대한 공로를 왁스먼이 가로챘다며 1950년에 고소를 했다. 이 둘은 스트렙토마이신의 효과를 알린 최초의 논문(Streptomycin, a Substance Exhibiting Antibiotic Activity Against Gram-Positive and Gram-Negative Bacteria)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왁스먼은 샤츠가 1943년에 자신의 실험실에 3개월만 있었고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하는 데 작은 역할만 했다고 주장했다. 왁스먼의 주장은 샤츠의 공로를 실제보다 작게 이야기한 느낌이 있지만 샤츠도 왁스먼의 지도를 받았으므로 왁스먼에게 공로를 빼앗겼다는 것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양측은 샤츠가 특허권으로 12만 달러와 로열티의 3%를 받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이로써 샤츠도 공동 발견자로 남게 되었다. 노벨상은 연구책임자만 수상자로 선정되는 경우와 책임자를 도운 연구자와 책임자가 함께 받는 경우가 있다(예를 들면 2008년에 에이즈의 원인이 되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지누시는 공동수상자인 몽타니에의 연구원이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에서 왜 샤츠를 제외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왁스먼의 연구실은 수많은 연구자들이 각각 자신이 맡은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항생제를 발견했으므로 책임자인 왁스먼의 공로를 크게 인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자가 특허를 출원하고 유지하는 것처럼 자신의 전문분야 이외의 일에 시간을 쏟는 것은 학문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사건 이후로 미국에서는 학교가 나서서 특허 등 지적재산권 분배에 관여하는 일이 강화되었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선진국임을 과시하듯이 대학에서 지적재산권 수입이 아주 미미한 우리나라와 다르게 미국의 대학은 지적재산권을 통해 큰 수입을 올리는 곳이 많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대학에서 지적재산권 관리를 전보다 강화하고 있고, 학자이면서 자신의 발견에 대해 특허를 얻어서 수입을 올리는 일이 증가하고 있다.

항암제로 사용되는 항생제.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 항암제로 사용되는 항생제

약 반세기 전에 우리나라에서는 감염병 치료제를 의미하는 용어로 ‘마이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했다. 악티노마이신과 스트렙토마이신 외에도 겐타마이신, 링코마이신, 테라마이신 등 세균의 성장을 막는 약은 여러 가지 발견되었다.

특이한 것은 악티노마이신 D(Actinomycin D, 아래 닥티노마이신)은 1964년부터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아 난소암 일부, 고환암, 윌름스 종양, 횡문근육종 등 다양한 종류의 암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세균을 죽이는 약이 항암제로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에게 해로운 세균이든 암세포든 사람 몸 속에서 자라나지 않는다면 사람에게 큰 해가 없다. 숫자가 늘어나야 사람에게 해가 될 정도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우연히 침입하거나 변이에 의해 생겨난 적은 수로는 특별한 병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닥티노마이신은 DNA에 결합함으로써 RNA 중합효소가 DNA로부터 RNA를 만드는 과정을 막는다. 이렇게 되면 리보소체(리보솜)로 유전정보가 전달되지 않으므로 결국 세포가 성장(분열)하지 못하게 된다. 

세균은 핵이 없는 원핵세포 단세포생물이고 암세포는 진핵세포라는 점이 차이다. 원핵세포와 진핵세포는 핵의 유무 외에도 아직까지 학자들이 발견하지 못한 차이도 있으므로 일부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기는 하지만 사람과 같은 진핵세포에서는 아무 효과를 지니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닥티노마이신은 세균이든 암세포든 DNA에 닥티노마이신이 끼어 들어가면 생존이 어렵게 하므로 원핵세포와 진핵세포를 가리지 않고 같은 효과를 보여 주고 있다.

1964년에 항암제로 개발된 지도부딘은 1987년부터 항바이러스제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게(최초의 '에이즈' 치료제는 폐기처분된 항암제 https://www.dongascience.com/news.php?idx=62082 참조) 같은 해에 의료용으로 승인된 닥티노마이신이 처음 개발 목적과 다르게 항암제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예를 대할 때마다 생명현상이 참으로 오묘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참고문헌
Daniel, T. M. Selman Abraham Waksman and the discovery of streptomycin.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Tuberculosis and Lung Disease, 9(2);120-122, 2005.
William Kingston. Streptomycin, Schatz v. Waksman, and the balance of credit for discovery. Journal of the History of Medicine and Allied Sciences, 59(3);441-462, 2004.
H. Boyd Woodruff. Selman A. Waksman, Winner of the 1952 Nobel Prize for Physiology or Medicine. Applied and Environmental Microbiology. 80(1):2-8, 2014.
노벨재단 홈페이지. https://www.nobelprize.org/prizes/medicine/1952/waksman/biographical/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교수

※필자소개

예병일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C형 간염바이러스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한 후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어 경쟁력 있는 학생을 양성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평소 강연과 집필을 통해 의학과 과학이 결코 어려운 학문이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가까운 학문이자 융합적 사고가 필요한 학문임을 소개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감염병과 백신』,  『의학을 이끈 결정적 질문』, 『처음 만나는 소화의 세계』, 『의학사 노트』, 『전염병 치료제를 내가 만든다면』, 『내가 유전자를 고를 수 있다면』,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내 몸을 찾아 떠나는 의학사 여행』, 『이어령의 교과서 넘나들기: 의학편』, 『줄기세포로 나를 다시 만든다고?』, 『지못미 의예과』 등이 있다.

[예병일 연세대원주의대 의학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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