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총선 박빙 열세…책임 두려워 위기 아닌 척”
180석 맞혔던 이근형 전 위원장
“정당 지지도에 좌우되는 게 총선”
여전히 국힘과 오차범위 접전 중
“윤 대통령 비판도 제대로 못해”
전투기 추락 사고의 원인 중에 조종사의 비행착각이라는 게 있습니다. 조종사가 착각을 일으켜 하늘과 바다를 거꾸로 인식하는 것이 대표적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조종사들은 자신의 눈이나 귀가 아니라 계기 장비를 믿고 전투기를 조종하는 특별한 훈련을 받습니다.
선거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주위에는 ‘다른 정당’을 찍었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다른 정당’ 후보가 당선되면 부정선거를 의심하게 됩니다. 물론 부정선거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정당 지지자를 한 사람도 만나지 않았을 정도로 인적 교유의 폭이 좁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어느 언론사 사주는 자기 회사의 여론조사 담당 기자에게 “내 주위에 ‘다른 정당’ 찍겠다는 사람 아무도 없던데, 우리 여론조사 엉터리 아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선거에서는 현장에서 감으로 느끼는 민심 못지않게 숫자로 나타나는 객관적 자료가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여러분은 2020년 4·15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180석(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17석 포함)으로 미래통합당 103석(미래한국당 비례대표 19석 포함)을 누르고 압승을 거둘 때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정당 지지도가 어느 정도였을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4년 전 민주당이 대승한 이유
2019년 8월 조국 사태가 터졌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당원들을 동원해 광화문 집회를 열었습니다. 태극기 부대도 가세했습니다. 2020년 2월에는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민주당 지지도가 뚝 떨어졌을 것 같지요?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민주당보다 높았을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민주당 지지도는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2019년 내내, 그리고 총선 직전까지 자유한국당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2020년 1월 셋째 주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39%, 자유한국당 22%였습니다. 이런 격차는 2019년 1월 민주당 40%, 자유한국당 23%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4~5년 전이라서 많이 잊으셨겠지만, 2019년에는 조국 사태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본 기업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이 2019년 7월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를 시작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는데, 그 바람에 오히려 ‘친일 프레임’에 갇혀 버렸습니다.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나경원 의원이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공안 검사 출신 황교안 대표는 ‘우한 폐렴’이라며 색깔론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를 공격했습니다. 역풍이 불었습니다. 민주당이 월등히 앞선 정당 지지도가 좁혀지지 않은 채 4·15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미래통합당(자유한국당의 후신) 지도부는 끝까지 여론조사 수치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당 지지도 격차는 고스란히 실제 의석으로 나타났습니다.
선거를 닷새 앞둔 4월10일 민주당의 이근형 당시 전략기획위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민주당 의석수를 “130석 플러스알파”라고 예측했습니다. 권역별 안정 의석수에 비례대표 의석 목표치를 더한 수치였습니다. 이근형 위원장은 “우리가 그동안 의석을 갖지 못했던 지역에서 초박빙 접전인 곳이 많기 때문에 알파의 크기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130석 플러스알파’는 대외 발표용 ‘엄살’이었습니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서 180석 확보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이 위원장은 ‘지역구 163석, 비례대표 17석’을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족집게’였던 것입니다. 이 위원장은 엘지(LG)애드 마케팅전략실 차장, 홍보기획사 ‘밝은세상’ 대표, 김대중 정부 청와대 행정관, 노무현 정부 청와대 여론조사비서관 출신으로 여론조사·선거전략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상태에서 치러진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 152석’을 정확히 예측했습니다. 민주당이 123석으로 새누리당(122석)을 이긴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개표 전에 “어느 정당이 1당이 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초박빙”을 예고했습니다. 원외였지만 이런 전문성을 인정받아 2019년 5월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에 발탁됐던 것입니다. 총선 승리 직후 전략기획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2022년 3월 대선 때 이재명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미래기획단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대선 패배 뒤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12월14일 민주당 총선기획단에 2024년 4·10 22대 총선에 대해 강의를 했습니다. 총선을 어둡게 전망한다는 보도가 일부 언론에 나왔습니다.
“야권 200석? 사기진작용”
정말 그렇게 보는지 궁금했습니다. 왜 그렇게 보는지 궁금했습니다. 민주당에서 워낙 족집게로 소문난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두차례 만나서 물어봤습니다. 그는 민주당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를 드러내놓고 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겨우 설득해서 몇 가지 대답을 들었습니다. 주고받은 문답의 내용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과거 총선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뭔가?
“여론조사마다 방식이 다르다. 자동응답 조사가 있고, 전화면접 조사가 있다. 전화면접 조사도 집전화냐 휴대전화냐에 따라서 다르게 나온다. 조사를 계속하다 보면 일정한 패턴을 알 수 있게 된다. 그 패턴을 잘 분석해야 한다. 예를 들면 2020년에는 자동응답 조사에서 7%포인트 이상 이기면 우세로, 3~7%포인트 이기면 박빙으로, 3% 미만이면 열세로 봤다. 그런 기준으로 하니까 지역구 163석이 나오더라.”
―이번 총선 의석을 어떻게 전망하나?
“좋지 않다. 박빙 열세로 본다.”
―민주당이 1당을 빼앗길 수도 있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야권 200석을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희망적인 관측이거나 사기진작용일 뿐이다.”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 보나?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워낙 죽을 쑤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인데?
“바로 그게 문제다. 총선은 대통령 국정 평가가 아니라 정당 지지도에 의해 좌우된다. 2020년 총선 전에 문재인 대통령 국정 평가는 긍정 여론과 부정 여론이 비슷했다. 하지만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이 훨씬 높았다. 그래서 민주당이 크게 이길 수 있었다.”
―2019년 조국 사태가 있었는데도 민주당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은 이유가 뭘까?
“조국 장관 임명은 대통령이 한 것이다. 민주당이 주도한 것이 아니다. 유권자는 그걸 구별한다.”
―총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민주당 지지도를 어떻게 끌어올릴 수 있나?
“정당 지지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권투의 승부는 링에 오르기 전에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선수는 링에 오르기 전에 기초 체력을 보강하고 작전을 짜야 한다. 링에 올라간 뒤에 연습하고 작전 짜봐야 소용이 없다.”
―그래도 민주당이 총선에서 이기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한가지를 해서는 되지 않는다. 서로 연관성이 있는 조처를 동시다발로 쏟아부어야 한다. 이를테면지금 윤석열 대통령을 놓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잡아야 한다. 언론이 한동훈 위원장을 따라간다고 민주당도 그러면 되겠나. 인구소멸, 지방소멸 등 정책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정책 대안이라니? 예를 들면?
“국민의힘이 김포시 서울 편입을 주장했을 때 민주당은 대안을 제시하며 강하게 반격했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산층과 서민을 잘살게 해주겠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부자들 세금을 줄여줘야 한다고 말이 안 되는 주장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동산 정책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크로비스타(윤 대통령 자택) 집값 떠받치는 얘기다. 이런 걸 민주당이 제대로 공격하고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이낙연 신당은 변수가 될까?
“민주당에서 추가 탈당자들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이낙연 신당이 성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양당 체제에서 제3당이 의석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낙연 신당 때문에 민주당이 수도권 등 박빙 지역에서는 의석을 많이 잃을 수 있다.”
민주당의 ‘근거 없는 낙관론’
‘총선은 정당 지지도에 의해 좌우된다’는 이근형 전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총선은 민주당이 이길지 국민의힘이 이길지 알 수 없습니다. 1월19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평가는 긍정 32%, 부정 58%였지만, 정당 지지도는 국민의힘 36%, 민주당 33%였습니다. 2023년 내내 오차범위 안에서 엎치락뒤치락했던 흐름에서 큰 변화가 없습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고)
그런데도 지금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나 의원들, 그리고 지지자들은 대부분 “이대로 가면 총선은 우리가 이길 것”이라고 근거 없는 낙관론에 빠진 것 같습니다. 선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바로 근거 없는 낙관론입니다. 방심과 나태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은 어쩌면 지금 냄비 속의 개구리 신세일 수도 있습니다. 개구리를 끓는 물에 집어넣으면 곧바로 튀어나오지만, 찬물에 집어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죽는다는 얘기를 여러분도 들어보셨지요?
마무리하겠습니다. 이근형 전 위원장은 “위기가 아닌데도 긴장을 불어넣기 위해 위기라고 규정하는 경우가 있고, 반대로 실제로는 위기인데도 위기라고 하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 짐짓 위기가 아닌 척하는 경우가 있다”며 “지금 민주당은 후자인 것 같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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