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KBL에 저만큼 고난과 역경을 겪은 선수가 있을까요?” 이종현의 재기 스토리

조영두 2024. 1. 21.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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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조영두 기자] 이종현(30, 203cm)은 한국농구가 주목하는 대형 유망주였다. 고려대 시절 대학 무대를 평정했고, 태극마크를 달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6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울산 현대모비스의 지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프로에 입성했다.

하지만 아킬레스건, 슬개건, 어깨 등 크고 작은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고양 오리온(현 고양 소노), 전주 KCC(현 부산 KCC)로 팀을 옮겨 다녔지만 존재감은 미미했다. 그럼에도 이종현은 포기하지 않았고, 올 시즌 새롭게 둥지를 튼 안양 정관장에서 부활의 날개를 펼쳤다. 공수 양면에서 활약하며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부상을 딛고 안양에서 재기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인터뷰는 12월 5일에 진행됐습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월호에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찬란했던 아마 시절을 보냈는데 지금 생각해본다면 어떤가요?
행복했던 추억이죠. 나이도 어렸고, 지금처럼 생각이 많지도 않았으니까요. 그 나이에 누릴 수 있었던 행복과 추억인 것 같아요. 농구가 정말 쉽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대학리그는 프로처럼 외국선수가 없고, 제 신장이 제일 컸어요. 그리고 고려대가 전력이 좋아서 쉽고 재밌게 농구했어요.

프로 입성 후 연이은 부상으로 발목이 잡혔습니다.
많이 힘들었어요. 부상 당했던 아킬레스건, 무릎, 어깨 모두 어릴 때부터 아팠어요. 결과적으로 프로 와서 다 수술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제 아프지도 않고 건강해진 것 같아요. 물론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지만요. 그래도 힘든 시간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숙해졌고, 개인적으로 도움이 많이 됐던 시간이었어요.

‘만약, 이종현에게 부상이 없었다면?’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요즘도 가끔 해요. 부상 때문에 힘들었을 때 예전 영상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근데 그러면 더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과거 영상도 잘 안 보고, ‘부상이 없었다면?’이라는 생각도 잘 안 하게 됐어요. 현재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고 있죠.

농구선수로서 온갖 좌절을 다 겪어본 것 같은데요?
KBL에 저만큼 고난과 역경을 겪어본 선수가 있을까요(웃음)? 어릴 때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으니까요. 욕도 많이 먹었어요. 잘할 때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는데 몇 년 동안 부진하다보니 비난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였나요?
요즘도 아내한테 가끔 이야기해요. 2019년에 무릎 슬개건 부상을 당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그전에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고 복귀한지 얼마 안 돼서 또 슬개건을 다친 거라 충격이 컸어요. 그리고 무릎 재활이 엄청 힘들더라고요.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요.

농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많이 했죠. 안 좋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당연히 그럴 법 했고요. 그래도 어릴 때부터 농구만 했으니까 막상 그만두면 할 게 없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버텼어요. 저 때문에 부모님도 정말 많이 고생하셨어요.

오프시즌 FA(자유계약선수)를 앞두고 있었는데 경기에 제대로 뛰지 못했습니다.
형들이 FA 협상하는 걸 보니 선수가 누릴 수 있는 게 정말 많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지난 시즌에 경기를 많이 못 뛰어서 정말 진지하게 ‘은퇴하면 뭘 해야 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FA 시장이 열리고 초반에는 연락이 오겠지 싶었는데 단 한 팀도 오퍼가 없었어요.

“큰 마음 먹고 김상식 감독님께 연락드렸습니다”
오프시즌 생애 첫 FA 자격을 얻은 이종현은 또 한번의 좌절을 경험했다. 불러주는 팀이 없어 은퇴 위기에 몰린 것. 아마 시절의 명성, 국내 빅맨이라는 희소성이 있었지만 그동안 보여준 게 너무 없었다. 이종현은 간절함을 갖고 정관장 김상식 감독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고, 정관장이 그에게 손을 내밀면서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계약 기간 1년, 보수 1억 5000만 원의 조건이었다.

정관장에 오기 위해 김상식 감독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는데요?
(오)세근(SK)이 형이 이적해서 자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막상 전화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정말 큰 마음 먹고 감독님께 연락을 드렸어요. 남자농구 대표팀 코치로 계셔서 친분이 있었거든요. 전화 드려서 ‘감독님께 배우고 싶습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씀을 드렸죠. 다행히 감독님께서 제 말을 공감해주셨고, 상황을 이해해주셨어요. 감독님이 구단에 말씀을 잘 해주신 것 같아요.

정관장과의 협상 과정은 어땠나요?
이 자리를 빌려 정관장 단장님, 국장님, 감독님, 코치님들께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를 정말 많이 이해해주시고, 제 말에 공감해주셨어요. 실력은 의심하지 않는데 몇 시즌 동안 제대로 뛰지 못해서 보여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연봉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이런 이유로 1년 계약만 했고요. 계약을 잘 마쳤기 때문에 운동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어요.

정관장과 계약했을 때 기분은요?
‘급한 불을 껐다’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저 때문에 가족들이 마음고생을 더 많이 했거든요. 사실 다행이라기보다 걱정이 더 많았어요. 딱 1년 계약만 했으니까요. 모험이잖아요. 그래서 계약을 하고 나서도 후련하진 않았어요.

당시 정관장 상황이 환영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요?
맞아요. 시즌 전까지 환영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개막전에 피켓 시위하는 팬들도 계셨고요. 시즌 초반만 해도 선수 소개할 때 제 이름이 호명되면 조용하더라고요. 조금 서운하긴 했는데 요즘은 제 이름 많이 불러주시고 응원도 잘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번 오프시즌에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을 것 같은데요?
이 이야기를 언젠가 하고 싶었는데 매년 열심히 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어깨 수술하고 나서 병실에서 맨몸으로 스쿼트를 했고, 엘리베이터 타지 않고 일부러 걸어 다녔어요. 이런 부분까지 팬들은 잘 모르시잖아요. 보이는 걸로 판단이 되는 직업이니까 아쉽고 속상했어요.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안 나왔으니까요.

체중 감량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체질이 잘 찌고 잘 빠지는 스타일이에요. 시즌 끝나고 두 달 휴가를 받으면 3주 동안 쉬고, 나머지는 개인 운동하면서 조절을 해요. 이번에도 어느 정도 조절하고 팀에 들어와서 연습경기를 뛰는데 이렇게는 안 되겠더라고요. 스스로 충격을 받아서 탄수화물을 아예 끊었어요. 면을 좋아하는데 라면도 아예 안 먹었죠. 아내가 다이어트 식단을 잘 만들어줬어요. 저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많이 못 먹었지만 덕분에 체중을 감량할 수 있었어요. 오프시즌 끝났을 때가 112kg이었는데 지금은 103~104kg 정도로 유지하고 있어요. 프로 온 뒤로 최저 몸무게에요.

“하루하루 감사하고 행복하게 농구하고 있어요”
정관장 유니폼 입고 새 시즌을 맞이한 이종현은 달라진 모습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다. 자신감이 붙으면서 여유가 생겼고, 전성기 시절을 연상시키는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다. 223cm라는 긴 윙스팬을 활용해 수비에서도 팀에 공헌하고 있다. 다시 행복하게 농구하고 있지만 이종현은 만족하지 않고 있다. 아직 시즌이 절반 이상 남았기 때문. 그가 완벽하게 살아났다고 평가받기 위해서는 부상 없이 마지막까지 꾸준함을 보여줘야 한다.

올 시즌 초반부터 좋은 활약을 펼쳤습니다.
진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근데 너무 잘 풀려서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어요. 제가 원래 잡생각이 많은 성격인데 이번 시즌에는 생각 없이 플레이하려고 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아요.

플레이에 자신감이 붙은 것 같은데요?
감독님, 코치님들이 편한 분위기에서 자신감을 많이 심어주세요. 그래서 저도 마음 편하게 플레이하다보니 좋은 플레이가 나오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믿어주시는 만큼 실망시켜드리지 않으려고 책임감을 갖고 뛰려고 해요.

11월 3일 서울 삼성전에서 1772일 만에 더블더블(13점 10리바운드)을 작성했습니다.
엄청 오래 걸렸죠. 1, 2년이 아니니까요. 예전에는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지금은 더블더블 꾸준히 하는 선수들 보면 대단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개인 기록보다 팀이 승리해서 더 기분 좋았어요. 그래서 더블더블에 큰 의미부여는 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게 굉장히 오랜만 일 것 같은데요?
관심은 항상 많이 받았어요. 최근 몇 년 동안은 나쁜 관심을 주시더라고요. 요즘은 좋은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도 많이 해주셔서 하루하루 감사하고 행복하게 농구하고 있어요.

김상식 감독 지도 스타일은 어떤가요?
엄청 부드러우세요. 선수들에게 자유를 많이 주시죠. 자유를 주시는 만큼 실망시켜드리지 않으려고 선수들이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보통 팀들은 훈련 30~40분 전에 나와서 몸을 푸는데 정관장은 1시간 전에 나와서 개인 운동을 하더라고요. 자율적인 문화가 잘 잡혀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정관장이 시즌 초반 순항했는데 잘할 걸로 예상했나요?
기존 멤버들과 새롭게 합류한 선수들이 잘 뭉쳤어요. 새 선수들은 이적한 선수들 빈자리를 최대한 채우자는 마음으로 뛰었죠. 기존 멤버들은 지난 시즌 우승을 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고요. 팀 구성원이 많이 바뀌었지만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난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올 시즌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요?
매 시즌 똑같아요. 다치지 않고 전 경기 출전이 목표예요. 매 시즌이 중요했지만 올 시즌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시작이 좋았으니까요. 지금은 연패를 타고 있지만 좋은 분위기로 시즌을 마쳤으면 해요. 시즌 치르면서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번 깨면 다시 상위권으로 갈 수 있어요.

▼ 이종현 프로필
생년월일

1994년 2월 5일
신장/체중/포지션
203cm/103kg/센터
출신학교
연가초-휘문중-경복고-고려대
경력
2016~2020 울산 현대모비스
2020~2023 고양 오리온-고양 캐롯
2023 전주 KCC
2023~현재 안양 정관장

# 사진_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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