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호 30년] ② 최대 '국책사업 실패 사례'…어떻게 되살렸나
담수화 실패에 1999년 해수화…민·관 손잡고 생태계 99% 복원
[※ 편집자 주 = 경기 시흥시, 안산시, 화성시에 둘러싸인 시화호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호수입니다. 정부가 수도권 내 인구와 산업을 효율적으로 분산하기 위한 반월 특수지역 개발 계획을 수립한 후 1994년 1월 24일 시화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완료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완공과 함께 오염이 시작돼 '죽음의 호수'라는 오명은 물론 사회적 문제로까지 부상했습니다. 하지만 1999년 정부가 담수화를 포기하고 해수를 유입시킨 뒤부터 시화호가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정부, 지자체, 환경운동가 등의 꾸준한 수질 개선 노력으로 지금은 생태계가 99% 회복했습니다. 조성된 지 올해로 30년이 되는 시화호가 환경의 보고로 탈바꿈한 여정과 현장을 3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시흥=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1994년 1월 24일 한반도의 지형을 바꾼 국내 최대(당시 기준) 간척사업인 시화지구 방조제 건설 공사가 착공 6년 7개월 만에 완료됐다.
방조제 축조로 탄생한 인공 담수호인 시화호가 공사 완료 직후부터 썩어 들어 가면서 시화호를 농업용수로 활용하겠다던 정부의 장밋빛 계획은 무산됐다.
시화호 조성은 건국 이래 최대의 국책 사업 실패 사례로 전락하고 만다.
결국 정부는 방조제 건설 5년여 만인 1999년 담수화를 포기하고 해수화하기 이른다. 방조제를 통해 해수를 유입시킨 것이다.
그 후 25년이 지난 지금 민관이 손을 모아 살려낸 시화호는 '죽은 호수'에서 '생태계의 보고'로 재탄생하고 있다.
여의도 58배…당시 국내 최대 간척사업
시흥시 정왕동 오이도와 옹진군 대부도(지금은 안산시 부속) 방아머리를 잇는 총연장 12.7㎞의 시화 방조제는 당시 네덜란드의 주다지 방조제(30㎞) 다음으로 길었고, 동양에서는 가장 길었다.
길이뿐 아니라 높이 27m, 바닥 폭 213m라는 규모 면에서도 당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대형 구조물이었다고 한다.
방조제 건설에 투입된 자재만 돌 700만㎥, 흙 1천600만㎥ 등 2천300만㎥에 달했다.
이 자재를 15t 덤프트럭에 싣고 한 줄로 세운다면 경부고속도로를 30번 왕복할 수 있는 정도다.
투입된 인력만 2천여명. 장비도 덤프트럭 320대, 굴착기 40대, 착암기 40대 등 하루평균 400여대에 달했다.
방조제 공사는 합성 나일론 매트 위에 5t짜리 돌망태와 8t 크기의 돌을 깔아 바닥을 다지고, 그 위에 사석과 흙을 쏟아붓는 공정으로 진행됐다.
방조제 건설을 통해 1억8천만t(준공 당시 기준)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43.8㎢ 규모의 인공 담수호 '시화호'가 탄생했고, 그 주변에는 여의도 면적의 58배에 달하는 1만7천3백㏊의 간척지가 새로 생겼다.
대규모 토목 사업으로 그야말로 한반도의 지형이 바뀐 것이다.
이 같은 방조제 건설 사업은 시화호 담수를 인근 농지의 농업용수로 활용하는 목표로 계획됐다고 한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시행하고 농어촌진흥공사(현 한국농어촌공사)가 감리를 맡아 추진한 시화지구 개발사업에는 총 4천8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죽음의 호수' 담수화 실패
시화 방조제 준공 소식을 전한 1994년 1월 24일 자 연합뉴스 기사 말미에는 "환경전문가들은 시화지구에 대형 담수호가 만들어지면 이 지역에서 나오는 생활하수가 호수로 유입돼 인공호수가 급속히 오염될 것을 우려하면서 하수종말처리장 건설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다.
방조제 준공 이듬해인 1995년 수자원공사와 농어촌공사는 준공한 지 불과 두 달여 뒤인 1994년 3월부터 그해 11월까지 실시한 시화호 수질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수치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시화 담수호 바닥에서 채취한 갯벌에서는 구리 52.83ppm, 수은 20.81ppm, 카드뮴 1.41ppm, 망간 473.88ppm 등 중금속이 검출됐다.
수은의 경우 자연 함유량의 4배에 가까웠고, 구리는 17배, 아연은 32배나 높은 수치였다.
수질 또한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은 5.7ppm(연중평균치)으로, 공업용수의 수질 기준치인 4ppm을 초과했다.
시화호는 말 그대로 중금속에 오염돼 있었고, 이때부터 '죽음의 호수'라는 오명까지 얻게 됐다.
수천억 원을 들인 시화호가 죽음의 호수로 전락한 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상하자, 감사원은 1996년 감사를 통해 시화호 오염은 ▲ 오폐수처리시설 완료 전 방조제 축조 ▲ 시화공단 내 하수관로 부실시공 ▲ 미흡 처리된 오·폐수 유입 ▲ 공장 폐수 방류 등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감사 결과에 따라 수자원공사 본부장급 1명 등 각 기관 공무원 14명을 문책도록 했다.
정부도 나서서 시화호에 4천억원대의 예산을 투입해 하수종말처리장을 증설하는 등 수질개선에 나섰고, 이때부터 고인 물을 서해로 유통하는 방류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그런데도 1997년 6월 시화호 COD는 22.8ppm으로, 전년 같은 기간 20.3ppm보다 오히려 악화하고 있었다.
수질 환경 기준(COD)은 매우좋음(2ppm 이하), 좋음(3ppm 이하), 약간좋음(4ppm 이하), 보통(5ppm 이하), 약간나쁨(8ppm 이하), 나쁨(10ppm 이하), 매우나쁨(10ppm 초과) 등으로 구분된다.
결국 정부는 고심 끝에 1998년 12월 29일 '시화호를 담수호로 만들어 농업용수로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포기하고, 이듬해부터 해수를 유통해 시화호를 해수화했다.
당시 환경단체와 언론 등은 애초 공단 하류에 고인 물을 농업용수로 쓰겠다고 방조제를 건설한 것부터가 잘못된 발상이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해수화 전환 후 25년…환경의 보고로 재탄생
시화호 해수화 결정 후 처음으로 수질 개선 소식이 전해진 건 방조제 건설 이후 11년 만인 2005년이었다.
안산시는 그해 시화호 연평균 COD가 3.53ppm으로, 물막이 공사가 진행된 1987∼1994년 3.20∼4.50ppm 평균치보다도 오히려 좋아졌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시화호가 죽음의 호수에서 생명이 살아 숨 쉬는 해수호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민관이 협력해 환경 개선에 나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부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 시화호 주변에 하수종말처리장을 확충하고, 공장 폐수 유입을 차단하는 등 대규모 수질개선 사업을 추진했고, 2013년에는 바다로 배출되는 오염물질을 배출 총량으로 통제하는 '연안오염 총량관리제'도 도입했다.
민간도 손을 보탰다. 시흥을 중심으로 2004년 시화호 환경개선을 위해 출범한 민관협의체인 '시화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지역 주민이 직접 환경정화 작업을 하고, 환경 분야 지역 의제를 설정해 실천에 나섰다.
2011년에는 경기도와 시흥·안산·화성시 등 시화호를 끼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협력해 '시화호유역의제'를 구성하기도 했다.
시화호유역의제는 '건강한 바다호수, 아름다운 해안도시, 함께하는 지역'이라는 비전을 기반으로 ▲ 환경 교육 ▲ 시화호 유역의 해안문화 발전 ▲ 환경오염 개선을 위한 활동 ▲ 지역경제 모델 구축 등에 주력해왔다.
시화 방조제 건설 30주년을 맞는 현재 시화호는 방조제 건설 전의 생태 환경을 거의 회복한 상태다.
지난해 해수부가 조사해 발표한 시화호 연평균 수질 변화 자료를 보면 COD는 2004년 7.5ppm(약간나쁨)에서 2017년 1.8ppm(매우좋음)으로 좋아졌다가 2022년 3.2ppm(약간좋음)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시화호에 서식하는 법정 보호종 역시 2005년 7종에서 2020년 20종으로 늘어났고, 출현종 수는 2000년 80종에서 2020년 93종으로 증가했다.
양광식 순천향대 행정학과 교수(시화지구지속가능발전협의회 활동)는 "해수화로 전환된 지 25년이 지난 지금 시화호 수질은 외해나 인천 앞바다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그동안 관련 공공기관과 지자체, 각 분야 전문가, 시민 등이 참여하는 환경 거버넌스가 수질 개선을 위해 협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goal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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