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트 치고 오픈런, 웃돈 12배…미국 휩쓴 '스탠리', 친환경 맞아?
4년 만에 매출액 10배 넘게 늘어
업사이클링 '프라이탁' '스타벅스'
희귀상품 중고거래·액세서리 봇물
소비욕 자극하며 '친환경' 멀어져
"본인만의 소비 철학 생각해봐야"
# 이달 초 미국 전역의 대형할인점 체인 타깃 앞에 영업 시작 전부터 대기줄(오픈런)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강추위에도 사람들은 텐트를 치거나 담요를 두른 채 매장 밖에서 밤을 지새웠다.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먼저 뛰어가려다 넘어지는 부상자까지 속출했다. 미국 유명 텀블러(개인 컵)업체인 '스탠리(Stanley)'가 만든 한정판 텀블러를 사기 위해 수십 명이 몰리면서 벌어진 사태였다. 구매에 성공한 한 누리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텀블러 사려다 깔릴 뻔 했지만 한정판을 구매해서 매우 뿌듯하다"며 인증 사진을 올렸다.
친환경 열풍에 4년 만에 매출 10배 급상승
1913년 설립된 스탠리는 110년 역사상 최근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 세계 일회용품을 금지하는 친환경 열풍에 힘입어 스탠리 텀블러가 '국민 텀블러'로 자리매김했다. 스탠리는 과거 낚시와 등산 등 야외활동을 하는 중년층이 주고객이었지만, 친환경을 선호하는 젊은층을 집중 공략하면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물을 많이 마셔야 피부에 좋다"는 슬로건을 내걸어 친환경과 건강, 휴대성을 강조해 텀블러 유행을 주도했다.
지난해 화재로 전소한 차량에서 얼음이 남아 있는 스탠리 텀블러가 멀쩡하게 발견되면서 독보적인 입지를 굳혔다. SNS 틱톡에선 스탠리 텀블러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의 조회 수가 9억 회를 넘겼다. 매출도 수직 상승했다. 스탠리 매출은 2019년 7,300만 달러(973억8,200만 원)에서 지난해 7억5,000만 달러(1조5억 원)로 4년 만에 10배 넘게 뛰었다.
국내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고 있다. 17일 패션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최근 30일(지난해 12월 16일~올해 1월 14일)간 '스탠리'와 '스탠리 텀블러'의 검색량은 직전 30일(지난해 11월 16일~12월 15일) 대비 각각 155%, 88% 증가했다. 같은 기간 스탠리 전체 브랜드 거래액도 150% 급증했다.
66만 원에 중고 거래·텀블러 액세서리 인기
텀블러가 인기를 끌면서 색상과 디자인, 액세서리 등도 다양해졌다. 두 개 이상의 텀블러를 모으는 수집가들도 급증했다. 온라인 중고시장에선 희귀 색상 스탠리 텀블러가 원래 가격의 2~12배에 웃돈이 붙어 되팔린다. 19일 미국 이베이에선 스탠리 텀블러 한정판인 '컨트리 골드' 색상이 원래 가격(약 5만5,000원)의 12배가 넘는 66만5,000원에 판매 중이었다. 또 다른 희귀 색상 '워터멜론 문샤인'도 50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올라왔다.
수집가들 사이에선 텀블러에 열쇠고리를 달거나 겉면을 원하는 색으로 바꾸는 등 '텀블러 꾸미기'까지 유행하고 있다. 텀블러 맞춤 디자인을 하는 파멜라 탕은 개당 35달러(약 4만7,000원) 정도인 텀블러에 여러 색깔을 입혀 2배가 넘는 85달러(약 11만3,000원)에 파는데 대부분 금방 품절된다. 탕은 "9개월 전 사업을 시작했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서 일주일에 50~60개씩은 판다"고 했다. 온라인 쇼핑몰에는 텀블러 빨대 마개와 열쇠고리, 컵 뚜껑 등 각양각색의 액세서리들이 팔리고 있다.
프라이탁·스타벅스도...진짜 '친환경 소비'란
친환경 대표주자였던 스탠리 인기가 치솟으면서 더 이상 친환경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으로 장기간 사용하는 텀블러가 소비욕을 자극해 무분별한 수집으로 이어지면서 친환경 제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업사이클링으로 유명한 스위스 생활용품업체 프라이탁도 같은 비판을 받고 있다. 프라이탁은 버려진 트럭 방수천이나 천막 등을 재활용해 지갑이나 가방 등을 만든다. 폐품을 재활용해 같은 디자인이 드물고, 친환경에 일조할 수 있어 젊은층 위주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스탠리와 마찬가지로 프라이탁의 다양한 제품들을 모으거나 희귀 제품들을 중고 시장에서 웃돈을 주고 구하는 수집가들이 많아졌다.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선 원래 가격보다 높은 수십만 원대에 '희귀 타프(프라이탁 가방의 재료가 되는 방수 천)' 가방이 거래된다.
'일회용컵 없는 매장'을 운영하는 스타벅스는 2019년부터 2022년 9월까지 국내에서 총 1,126만 개의 텀블러를 팔았다. 판매된 텀블러 종류만 연평균 448종이다. 계절이나 기념일에 맞춰 텀블러뿐 아니라 가방과 우산 등 각종 액세서리를 한정판으로 출시해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전문가들은 친환경 소비를 하려면 본인만의 소비 철학이 뚜렷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같은 종류 제품은 한 개만 사겠다'는 것처럼 본인만의 소비 철학이 필수"라며 "소비 가치관이 정확해야 끝없는 마케팅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황진주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 욕구가 자극되는 상황에서도 본인의 소비가 지구 전체, 미래 세대와도 관계있다는 '지속가능한 소비'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짚었다.
기업도 책임이 크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내세우면서 무한 소비를 촉진하는 마케팅을 동시에 쓰는 경우가 흔하다"며 "사회적 책임을 위해 기업 운영을 한 방향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금고 돈 횡령했던 직원, 이사장님으로 돌아왔다
- "생일에 마약 파티할 사람 모여라"... 경찰관의 죽음으로 끝난 쾌락 모임
- 용준형, 현아와 열애 결국 인정 "예쁘게 지켜봐 달라"
- '나는 선생님과 결혼했다'…'인간극장' 사제에서 부부 된 사연은?
- 70대 푸틴, 영하에 또 "얼음 물 입수"... 5선 앞두고 건재 과시?
- 황인범, 요르단전 2-2 해결사였지만...한국, 16강 조기 진출·조 1위 실패
- '갤럭시 신화'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 국민의힘 입당한다
- "화장실 다녀온 손님 묘하게 달라져"… 쌍둥이, 뷔페 바통터치 딱 걸렸다
- [단독] 교단에 90년대생 섰지만....그들 마음은 바로 꺾였다
- 지금이라도 독감 백신 맞으려는데, 3가는 뭐고 4가는 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