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개미들이 '일본 ETF'에 몰려가는 이유는? [차이나는 중국]

김재현 전문위원 2024. 1. 21.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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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중국 증권사 객장 /로이터=뉴스1
지난 17일 중국 증시에 상장된 '차이나AMC 닛케이225' ETF(상장지수펀드)가 10% 급등한 가격에 거래를 시작했다. 개별 종목이 아닌 지수 ETF가 10%나 오르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알고 보니 중국 개인 투자자들이 올해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한때 3만6000선을 돌파하는 등 1990년이후 34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하자 중국 증시에 상장된 닛케이225지수 ETF를 앞다퉈 매수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차이나AMC 닛케이225 ETF'는 매수 주문이 쏟아지면서 한때 괴리율이 '+23%'까지 확대됐다. 괴리율이 +23%라는 건 순자산가치(NAV) 대비 ETF 가격이 23%나 비싸게 거래됐다는 얘기다. 중국 개인투자자의 묻지마 투자 열기를 짐작게하는 대목이다.

지는 상하이증시 vs 뜨는 도쿄증시
지난 5년간 닛케이225지수와 상하이종합지수 추이/사진=구글 파이낸스 캡쳐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중국은 뜨는 해, 일본은 지는 해로 여겨져왔지만 최근 몇 년간 상황이 급변했다. 그동안 중국의 성장성에 주목해왔던 해외투자자들의 '바이(Buy) 차이나'가 '셀(Sell) 차이나'로 바뀌고 중국 투자자들마저 '바이(Buy) 재팬'으로 돌아섰다. 중국 정부의 알리바바·텐센트 등 민영 IT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와 부동산 침체 영향으로 중국 증시가 하락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에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주식의 시가총액 합계가 6조3200억달러를 기록하며 3년 반 만에 중국 상하이증권거래소(6조2700억달러)를 제치고 아시아 1위를 탈환했다. 중국 선전증시와 홍콩증시를 더하면 여전히 중국 상장기업 시총이 일본을 멀찌감치 앞서지만, 도쿄증시가 상하이증시를 다시 따라잡은 것만 해도 큰 변화다.

17일 오전장 기준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지난 5년간 72.7% 상승하며 3만5679.97을 기록했으나, 같은 기간 상하이종합지수는 10.8% 오르며 2875.60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지난 5년을 되돌아보면 2020년 3월 닛케이225지수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약 20% 급락했으나 곧 'V자형' 반등에 성공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2023년 3월까지 2만6000~2만7000선에서 등락을 거듭하던 닛케이225지수는 같은 해 4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일본 5대상사 지분 추가매입 뉴스가 나오자 상승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지난해 닛케이225지수는 28% 급등했으며 올해도 17일까지 6.6% 상승하면서 도쿄증시는 상하이증시를 따라잡았다. 반면 상하이증시는 지난해 줄곧 하락했으며 올해도 중국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로 하락이 지속되며 결국 도쿄증시에 아시아 1위를 내줬다.

도쿄증권거래소의 PBR 개선 정책
일본 주식이 이렇게 상승한 원인은 뭘까. PBR(주가순자산비율) 개선 정책과 신NISA 2가지가 손꼽힌다. PBR 개선 정책부터 살펴보자.

지난 15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도쿄증권거래소는 PBR 1배 미만 기업이 절반에 달하는 일본 주식의 부양책 마련을 위해, 프라임과 스탠더드 시장에 상장된 3300여개 상장기업에게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글로벌 기업 중심인 '프라임', 중견기업 중심인 '스탠다드', 신흥기업 중심인 '그로스'(Growth) 3개 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토픽스 지수와 미국 다우존스 지수의 PBR 추이/사진=블룸버그 홈페이지 캡쳐

PBR 1배 미만은 주가가 기업의 청산가치(Liquidation value)를 밑돌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쿄증권거래소는 PBR이 낮은 기업이 유럽·미국보다 많기 때문에 일본 상장기업들에게 자본비용(cost of capital)과 주가를 의식한 경영을 하도록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중이다.

15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일본 토픽스(TOPIX)지수의 PBR은 약 1.4배 수준으로 미국 다우존수지수의 약 4.8배에 훨씬 못 미친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지난해 3월에도 PBR 1배 미만은 "자본비용을 상회하는 자본수익성을 달성하지 못했거나 성장성이 투자자(주주)로부터 충분히 평가받지 못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하나의 지표"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15일 도쿄증권거래소 발표에 따르면 2023년 말까지 주가를 고려한 경영노력을 공시한 기업은 프라임 시장 상장 기업의 40%(660개사), 스탠더드 시장 상장기업의 12%(191개사)다.

일본 기업들의 PBR 개선책은 크게 △자본 효율 개선 △성장 전략 △주주환원 3가지로 구분되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자본 효율 개선 노력이다. 즉 자기자본이익률(ROE) 등의 지표를 통해 경영상태를 관리하고 주주와의 소통에도 활용한다는 방안이다.

일본 석유화학기업인 이데미츠코산은 ROE 목표를 8%에서 10%로 상향했으며 지난해 3월 이후 주가 상승률이 40%에 달했다. 전자기업인 무라타제작소는 투하자본이익률(ROIC) 20% 이상을 달성하겠다고 공시했다.

성장 전략을 내놓은 기업은 음향·영상기기 제조사 JVC켄우드다. 회사는 3년간 650억엔(5910억원)을 투자해 북미에서 방재·경비용 무선기기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으며 작년 3월 이후 주가가 93% 올랐다. 출판인쇄업체 다이닛폰인쇄(대일본인쇄)는 게임용 메타버스 구축에 5년간 3900억엔(3조55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주주환원 방안을 내놓은 기업도 적지 않다. 자동차기업 혼다는 2000억엔(1조8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방안을 발표했으며 유통업체 플랜트는 올해 주주환원 성향 100%를 달성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는 당기순이익의 100%에 달하는 금액을 현금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주주에게 환원하겠다는 의미다.

일본 상장기업들이 주가 중심 경영을 펼치면 이는 향후 주가의 지속적인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앞으로 상장기업들의 PBR 개선책 발표 현황을 매월 업데이트하겠다고 밝혔다.

신NISA의 비과세한도는 3배, 기간은 평생으로 확대
/사진=블룸버그
일본 금융청(FSA)이 내놓은 새로운 소액투자비과세제도(NISA·Nippon Individual Savings Account)도 일본 증시 상승에 유리한 요인이다. 2014년 일본이 영국의 개인저축계좌(ISA)을 본떠 만든 NISA는 일정 한도 내에서 주식투자에서 발생한 양도차익과 배당수익에 대해 비과세하는 제도다. 일본은 주식매매로 인한 양도차익과 배당수익에 대해 약 20%가 과세된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신NISA는 가계 금융자산의 증시 유입을 위해 비과세 혜택 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렸을 뿐 아니라 평생 면세혜택을 제공한다. 즉 연간 납입한도는 120만엔(1090만원)에서 360만엔(3270만원)으로, 총 비과세한도액은 600만엔(5460만원)에서 1800만엔(1억6380만원)으로 상향됐다. 비과세 한도는 3배로, 비과세 기간은 5년에서 무기한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안 하면 손해다.

일본 SMBC닛코증권은 신NISA가 순조롭게 정착하면 매년 2조엔(18조21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이 일본 증시로 유입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마지막으로 도쿄증권거래소는 오는 11월 5일부터 증시 거래시간을 3시30분까지로 30분 연장한다. 지금도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12시30분은 점심시간으로 거래를 쉬는 도쿄증권거래소가 거래시간을 30분 연장한다는 건 눈물겨운 노력이다. 부지런한 유럽 투자자와 홍콩·싱가포르의 헤지펀드가 유동성이 풍부한 개장시간에 일본주식을 거래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의미다.

증시 부양을 위한 일본 당국의 진지한 노력은 중국의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한국의 개인투자자들도 부러워할 만하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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