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휴가·육아휴직 확대한다지만…"지금 있는 것도 못 쓰는데"

고유선 2024. 1. 21.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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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눈치 보이고, 소득 줄고, 경력 단절 우려에' 결국 포기하는 부부 많아
"여야 공약 긍정적이지만, '눈치 안 보고' 쓸 분위기 조성해야"
비어 있는 신생아실 요람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모습 2023.12.26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김수현 기자 = 2021년 둘째를 출산한 은행원 최현주 씨는 기업에 근무하는 남편이 당시 육아휴직은 물론 '배우자 출산휴가'조차 쓰지 못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첫째 때문에 산후조리원에 가지 않으려고 남편에게 배우자 출산휴가를 써달라고 했는데, 남편이 '첫째 때 썼는데 둘째 때도 쓰면 (회사에서) 욕먹는다'고 해서 결국 쓰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결국 둘째를 산후도우미님께 맡기고 첫째 어린이집 등·하원을 내가 했는데 출산 직후에, 그것도 한겨울에 첫째를 데리고 놀이터까지 다녀야 했다"며 "회사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직 남자들이 눈치 안 보고 휴가나 휴직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21일 각계에 따르면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다양한 저출생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임신·출산·육아를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가 생기는 것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정치권이 '선거용' 정책을 쏟아내는 것보다는, 이미 만들어놓은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선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총선 1호 공약은... (서울=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8일 강남구 중소기업 휴레이포지티브에서 총선 1호 공약 저출생 대책 '일·가족 모두행복'을 발표하고 있다. 2024.1.18 [국회사진기자단] xyz@yna.co.kr

실제로 출산·육아를 경험해 본 젊은 부부들은 배우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등 현재 시행되는 제도를 마음 놓고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유는 다양한데 여전히 보수적인 기업문화가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남성들의 배우자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사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제약이 더 크다.

대기업 기획팀에 근무하는 이모 씨도 지난해 육아휴직을 끝낸 아내가 자신에게 휴직을 권유했지만, 회사 분위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답했다가 결국 말다툼을 했다.

이 씨는 "대기업은 육아휴직이 쉽다고들 생각하는데,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며 "(우리 회사에서) 육아휴직을 하는 남자 직원은 승진을 포기했거나, 인사이동에 불만이 있어 '부서 탈출'을 하려는 사람들 정도다"고 전했다.

이어 "이례적으로 육아휴직을 했던 동료(남자)에게 물어봤더니 '휴직을 고민한다는 말조차 담당 임원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라'고 하더라"며 "이런 사내 메신저 내용을 캡처해서 아내한테 보여주고, 회사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다시 설명해줬다"고 말했다.

'하나보다 둘, 둘보다 셋'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13일 서울대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쌍둥이 플러스 홈커밍데이'에서 쌍둥이, 삼둥이 어린이들이 풍선 선물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2023.5.13 hama@yna.co.kr

여성들의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도 장벽이 여전하다.

기업 사내 변호사인 임모 씨는 2022년 출산했지만,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것은 곤란하다는 부서장의 압박에 결국 출산휴가 90일과 육아휴직 3개월을 붙여 6개월만 쉬고 다시 출근했다.

임씨는 "내가 변호사인데 내 권리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났다"며 "하지만 임신과 함께 '해고'를 걱정하는 여성들도 많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냥 6개월 쉬는 것도 감사하게 생각했다"고 한숨을 쉬었다.

대학병원 간호사인 A씨도 출산휴가 90일, 육아휴직 1년을 합쳐 총 1년 3개월을 쉴 예정이었는데, 3개월을 앞당겨 출근했다.

A씨는 "휴직 기간에 병동에서 그만두는 직원이 몇 명 생긴 데다, 당시 육아휴직자가 3명이라 병원으로부터 계속 휴직 끝내고 나오라는 압박을 받았다"며 "(복직 당시)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니지 않았고 너무 어려서 마음이 복잡했다"고 털어놓았다.

'민주당의 저출생 대책은?' (서울=연합뉴스) 한종찬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개오 정책위의장이 18일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생존을 위한 저출생 종합대책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4.1.18 saba@yna.co.kr

경제적인 문제도 높은 장벽이다.

육아휴직 급여가 있지만, 아이가 둘 이상일 경우나 외벌이일 경우 소득 감소 폭이 너무 커서 현실적으로 휴직하기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022년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한 직장인 B씨는 "육아휴직 당시 1년 치 고용보험에서 나온 휴직급여가 세금 떼고 1천500만원정도였는데, 그나마 410만원은 복직 후 6개월 뒤 받는 '사후지급금'이었다"며 "휴직급여 상한을 전체적으로 좀 더 높이거나, 다자녀 가정만이라도 상한을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눈에 띄는 새로운 정책을 내놓은 것도 좋지만, 이미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이 더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엄마·아빠가 출산과 육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도와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이 둘을 키우는 직장인 강모 씨는 최근 임신한 회사 후배가 '태아검진휴가'에 대해 질문해 적극적으로 휴가를 쓰라고 응원하며 정보를 줬다고 한다.

자신이 4년 전 임신했을 당시 태아검진휴가를 한 차례도 쓰지 못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강씨는 "당시 인사팀에서 (태아검진휴가 사용) 선례가 없으니 부서장과 상의해서 쓰라고 했는데, 부장님이 '요즘은 그런 휴가도 있느냐'면서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요즘은 이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조금 자유로워지긴 했지만, 아직 기업문화 측면에서 갈 길이 멀다"고 지적했다.

cin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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