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법원이 지나친 상상력 발휘?" 최강욱 명예훼손 뒤집힌 이유

CBS노컷뉴스 임민정 기자 2024. 1. 21.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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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 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법원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명예훼손' 뉴스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유명인부터 정치인, 대통령까지 명예가 훼손됐다며 고소·고발을 하기도, 또 당하기도 합니다. 최근엔 트로트 가수 영탁이 거액의 모델료를 요구했다는 허위 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한 막걸리 제조사 대표가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선 사실을 말해도, 허위사실을 퍼뜨려도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만큼 명예훼손 고소·고발이 흔하기도 하죠. 하지만 손에 잡히지도 않을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걸 따지고 증명하는 건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이동재 전 채널 A기자 사이의 '명예훼손' 공방만 봐도 그렇습니다. 1심은 최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이를 뒤집고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선고 이후 최 전 의원은 "법원이 과도한 상상"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그가 허위사실을 페이스북에 올려 이 전 기자를 비방할 목적을 가졌다고 판단했는데, 과연 재판부가 무리한 '상상'을 펼친 것인지 따져볼까 합니다.

1심과 달라진 판결…"벌금 1천만원 선고"

항소심 재판 당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기 때문이었을까요. 법정에 들어서기 전 최 전 의원은 비교적 여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법정 복도에서 지인으로 보이는 이들과 악수하고 "뭘 여기까지 왔냐"고 말하며 웃음을 보이기도 했죠. 기자들이 "오늘 판결을 어떻게 예상하느냐"고 묻자 "잘 되겠죠"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재판, 판사가 재판정에 들어서자, 방청석의 어수선하던 분위기도 잦아들었습니다. 선고를 듣고자 통상의 피고인들처럼 최 전 의원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최태영·정덕수·구광현 부장판사)는 이날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된 최 전 의원에게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습니다.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의 2심 선고공판이 끝난 뒤 취재진에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사건의 시작점인 약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죠.

2020년 4월. 최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편지와 녹취록상 채널A 이동재 기자 발언 요지'라는 제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립니다.

게시글엔 "채널A 이 전 기자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대표에게 '눈 딱 감고 유시민에게 돈을 건네줬다고 한마디만 해라', '유시민의 집과 가족을 털고 (유시민이) 이사장을 맡은 노무현재단도 압수수색한다', '우리는 세게도 할 수 있고, 기소 안 할 수도 있다'란 내용이 담겼습니다.

최 전 의원의 명예훼손 혐의가 성립하려면 우선 게시글이 참인지 거짓인지 따져야 하고 고의로 이 전 기자를 비방하려고 했는지를 따져야 하는데, 항소심은 두 가지 모두가 인정된다고 본 겁니다.

우선 1, 2심 재판부 모두 최 전 의원이 허위사실을 주장했단 점은 받아들였습니다.
2024.01.17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 선고 中
피고인은 의견의 표시가 아닌 구체적 사실관계의 진술을 통해 허위의 사실을 드러낸 것이라고 봄이 상당합니다.

…(중략) 이 사건 편지 등의 전체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평균적인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사건 인용 부분이 이 사건 편지 등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주장처럼 피고인의 해석을 근거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인식하기는 어렵습니다.

MBC뉴스데스크는 2020년 3월 31일경 피해자(이 전 기자)가 협박성 취재활동을 하였다고 보도하면서 피해자가 이철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일부 공개했고, 2020년 4월 2일경 그 전문을 공개하였는바, 피고인은 당시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자료만 비교해 봐도 이 사건 인용 부분의 내용이 객관적 사실과 다름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던 점, 나아가 피고인은 이 사건 게시 글을 게시하기 전 이미 이 사건 편지 등을 검토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은 이 사건 게시 글을 게시할 당시 허위성에 대한 인식 내지는 허위사실 적시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합니다.


"비방 목적 있어"…"여론 왜곡 가능성, 죄질 좋지 않아"

스마트이미지 제공

다만 허위사실을 통해 최 의원이 이 전 기자를 '비방'하려 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1심에선 해당 게시글이 공적 관심 사안과 관련돼 '비방'의 목적이 인정되지 않다고 봤습니다.

이 때문에 검찰은 항소심에서 '공소장 변경'을 신청하기도 했는데요. 기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에 '비방 목적'이 인정될 필요가 없는 형법상 명예훼손죄 혐의를 추가합니다.

1심 재판부는 "당시 피해자는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이철에게 수 회에 걸쳐 편지를 보내고, 검찰을 통해 선처를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며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며 "이를 바탕으로 기자가 검찰과 연결돼 위법한 취재활동을 했는지 등에 대한 비판과 검증을 할 필요가 있었다" 고 최 전 의원이 허위로 글을 올린 건 비방이 아닌 검증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최 전 의원이 이 전 기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봤습니다.

2024.01.17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 선고 中
피고인이 이 사건 게시 글을 작성한 행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넘어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봄이 상당합니다.

…(중략)

피고인이 이 사건 게시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검찰과 언론의 총선기획, 이게 바로 쿠데타입니다"라고 표현한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소위 정치 개입을 위한 '검·언 유착'이라는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부각시키고 피해자를 공격하기 위하여 이 사건 편지 등을 의도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피고인은 이 사건 편지 등의 요지를 인용하거나 정리한 것을 넘어서 그 내용을 왜곡함으로써 피해자를 '검사와 공모하여 무고를 교사하거나 허위 제보를 종용한 기자'로 인식되도록 공격하였다 할 것인데, 이는 우리 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취지와는 맞지 않고, 사회 통념상 그 비판의 허용 범위를 넘어 위법하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재판부는 최 전 의원의 게시글이 허위사실일 뿐 아니라 비방의 목적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렇기에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도 그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형법 310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이날 재판부는 최 전 의원을 질타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 신분으로 그것도 전파력이 강한 SNS를 통해 발언할 땐 신중했어야 한단 겁니다.

2024.01.17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 선고 中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보면, 피고인의 발언은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에 상당한 기여를 할 수밖에 없으며 피고인 역시 정치인으로서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특성상 광범위하고 신속한 전파력과 파급력이 있는 페이스북에 허위사실이 포함된 이 사건 게시글을 작성하였는바, 이러한 피고인의 행위는 여론 형성 과정을 심하게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좋지 않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이 전 기자가 편지에서 '유시민의 비리 정보를 제공하면 검찰 관계자를 통해 선처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은 사실이므로 이 전 기자가 검찰과 연결돼 부당한 취재활동을 한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은 있었다고 봤습니다.

판결 이후 최 전 의원은 담담한 표정으로 법원을 나섰습니다. 그러고는 비방의 목적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어떤 사적인 이유나 앙심으로 비방할 목적을 가지고 특정 기자를 음해하는 글을 썼겠습니까. 명백히 사실과 다르고요. 법원이 지나친 상상력을 발휘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말한 최 전 의원은 대법원에서 다시 판단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이날 재판엔 이동재 전 기자도 참석했습니다. 그는 "정치인·언론·음모론자·사기꾼 '어벤져스'가 벌인 공작에 3년 9개월 만에 유죄가 선고됐다. 가짜뉴스는 인격을 살인하고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최악의 범죄"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과 별도로 최 전 의원은 이 전 기자와 사이에서 민사 사건도 진행 중입니다. 손해배상 소송 1,2심은 모두 최 전 의원에게 패소 판단을 내렸습니다. 지난해 6월 서울고법은 최 전 의원이 이 전 기자에게 3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1심과 같은 판단이었죠. 이 민사 사건 역시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입니다.

1심과 달라진 2심의 판단, 최 전 의원이 상고 의사를 밝히면서 이 사건은 이제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받게 됐습니다. '비방' 목적이 있는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그렇지 않다. 과연 대법원의 판단은 어떻게 내려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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