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신 처음” 모녀 참혹하게 훼손…맞춤법 틀려 잡혔다
※ 이 기사에는 잔혹한 범죄 상황 묘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사형 확정 판결에 이르기까지 경위를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드리기 위함입니다.
땅속 깊게 묻힌 라면 상자 세 개. 그 안엔 검정 비닐봉지가 있었다. 검정 비닐봉지에 싸인 것은 30여 조각으로 토막 난 사체였다. 마치 도살한 짐승의 사체처럼, 뼈들은 예리한 칼로 살점이 발라져 있었다. 사람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가 있었지만, 얼굴 피부가 벗겨져 있었다. 손끝 부분의 살점도 도려져 나가, 지문조차 확보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던 형사가 견디지 못하고 구토를 했다. “이렇게 끔찍한 시신은 강력 형사하면서 처음 봤다”고 했다.
이런 상태의 여성 시신 두 구가, 강원 원주와 경기 남양주에서 각각 발견됐다. 둘은 모녀(母女) 관계였다. 1994년 8월 하순이었다. 범인은 성낙주. 피해자 가운데 엄마인 전모씨의 동거남이었다. 이른바 ‘황금장 살인사건’이다.
사건 후 28년이 지난 2022년, 그는 방송에 공개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또 똑같이 죄를 지을 것이다. 이제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죄지음에 대한 벌도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여관 주인’ 과부에 빌붙은 승려... 불행의 시작
1951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난 성낙주는 결혼해 자녀 3명을 낳았으나 아내가 가출하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1976년에 출가해 태고종으로 입종했으나 1984년 승적을 박탈당해 일정한 직업과 거처 없이 떠돌았다. 1993년경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 철학관을 차렸는데, 전 씨와 인연을 맺은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그는 딸 하나를 키우며 남편 없이 자수성가한 ‘황금장’ 여관의 주인 전 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다. 허리가 좋지 않은 전 씨에게 지압해주고 침, 뜸을 놔주며 가까워졌고, 1993년 2월 전 씨의 집으로 들어가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성낙주가 돈벌이 없이 살림을 축내는 데다 성기능 장애로 부부관계도 만족스럽지 못하자 두 사람은 사사건건 다퉜다.
◇목 졸라 살해.. 시신은 토막 내 살점 다 벗겼다
범행의 발단은 1994년 8월 13일, 그날도 성낙주와 전 씨는 크게 다퉜다. 전 씨 딸 이모(당시 만 14살)양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이 양은 성낙주에게 “엄마와 그만 싸우고 이젠 집에서 나가 달라”고 했다. 성낙주는 다음 날 오전 5시쯤 전 씨 집에서 혼자 자고 있던 이 양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성낙주는 시신을 욕실로 옮겨 식칼로 목과 팔, 다리 등을 30여조각으로 토막 냈다. 살점은 변기에 넣어 물을 내려 처리했는데, 다음날 건물 물탱크가 바닥을 드러낼 정도였다. 나머지 시신은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종이상자에 담았다.
그는 이복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고사 지낸 돼지머리를 버려야 하니 도와 달라”고 했다. 그리곤 이복동생의 그레이스 승합차를 타고 남양주 북한강휴게소 인근 야산으로 가 시신을 매장했다. 성낙주는 타자기로 메모를 적어 이 양이 가출한 것처럼 꾸몄다. 메모에는 이렇게 쓰였다.
‘엄마 나 사랑하는 남자가 생겨서 그 남자를 따라가기로 했어요. 그러니 나 찾지 마세요. 엄마도 나를 잊고 아저씨랑 행복하게 사세요.’
전 씨는 중학생 딸이 가출한 걸로 믿고 경찰에 신고했다.
사건 일주일만인 21일, 전 씨는 성낙주와 심하게 다투던 중 “재산도 없이 남자 구실도 못 하는데 어떻게 당신을 믿고 사냐”고 말했다. 성낙주는 1980년대 초에 교통사고를 당한 뒤 척추를 다쳐 성기능에 문제가 있었다.
격분한 성낙주는 이날 여관 107호에서 잠자던 전 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살해, 시신 처리방식은 첫 번째 범행 때와 똑같았다. 이번에는 이틀전 미리 구매한 수술용 메스를 시신 훼손에 썼다. 시신을 토막 내고 살점을 도려내 정화조에 버리고 나머지는 상자 3개에 나누어 담았다. 이번에는 이복형에게 도움을 청해 함께 렌터카를 타고 강원도 원주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 포크레인으로 땅을 깊이 파 시신을 묻었다.
◇ ‘옆’을 ‘엽’으로 쓴 오타에 덜미 잡혀
두 여성을 살해해놓고선 태연히 카운터에 앉아 여관 주인 행세를 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전 씨의 친구 A씨가 전 씨의 소재를 캐묻자 성낙주는 “가출한 딸을 위해 절에 불공드리러 갔다”고 둘러댔다. A씨는 곧바로 경찰에 실종 신고를 냈고, 신고 당일 경찰은 성낙주를 연행했다.
경찰은 성낙주가 4억∼5억원정도 되는 전 씨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이어갔다. 그러나 성낙주는 불리한 진술이 나올 때마다 눈을 감고 불경을 외우거나 모르쇠로 일관했다.
경찰은 이 양이 썼다는 메모 속 ‘옆’을 ‘엽’으로 쓴 오타에 주목했다. 경찰은 국민학교(초등학교)밖에 마치지 못한 성낙주에게 자술서를 쓰라며 ‘옆’을 쓰도록 유도했고, 성낙주는 경찰의 예상대로 ‘엽’이라고 틀리게 썼다. 또 경동시장에서 수술용 메스를 구입한 점이 확인되고 휴게소 영수증까지 발견되며 결국 범행을 자백했다.
성낙주는 ‘어떻게 이렇게 시신을 훼손할 생각을 했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어렸을 때부터 토끼를 잡아먹었다”고 답했다.
1994년 12월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는 전 씨와 이 양을 살해한 뒤 사체를 토막 내 암매장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성낙주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이 판결은 1995년 확정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범행을 반성하고 불우하게 자라난 성장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이 사회가 날로 극악으로 치달아가는 현실에 경종을 울려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극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美입양아 친부 주장하며 ‘마지막 사형’ 피했지만... 거짓
그러나 이 범행은 잔혹성에 비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 출신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은 “1994년 당시 범행으로선 엄청나게 무자비하고 참혹함 그 자체였다. 어쩌면 유영철 사건, 오원춘 사건 이상의 잔인함”이라며 “그럼에도 주목받지 못한 것은 너무 잔인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2000년 뜻밖의 계기로 재조명됐다.
6살에 미국으로 입양된 주한미군 애런 베이츠가 친부모를 찾으러 한국을 찾았는데, 성낙주는 자신이 그의 친아버지라고 주장했다. 실제 2000년 교도소에서 특별 면회로 성낙주와 애런 베이츠가 만났고, 사형수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성낙주는 사형을 피해 갔다. 사형은 1997년을 마지막으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3년 뒤 한 방송에서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뒤늦게 DNA 검사를 한 결과 성낙주가 친부가 아니라는 점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애런 베이츠는 성낙주를 친부로 여긴다고 한다. 이 사연을 모티브로 2007년 영화까지 제작되면서 “사형수를 미화하고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2022년 2월 한 방송 프로그램은 이 사건을 취재하며 2021년 9월부터 성낙주로부터 받은 7통의 편지를 공개했다. 그는 편지에서 반성의 기미 없이 범행을 끝까지 피해자 탓으로 돌리며 제작진에게는 영치금까지 요구했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나의 건강이 어느 때보다 더욱 쇠약해져서 피해자의 욕구를 들어 주지 못하게 되자 성질을 부리며 ‘당장 집을 나가라’는 말에 이성을 잃게 되고 위스키를 먹으며 화를 키워 범행을 자행하게 된 것 같다.”
“그때로 되돌아 간다 하면 나는 또 똑같은 죄를 지을 것이다. 당시의 형편상 죄를 짓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누구 눈치 볼 일도 없고 죄지음에 대한 벌도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버린 영혼을 다시 살려볼까도 생각하고 있다.”
“아들(에런 베이츠) 손주 건강 조심하고, 나 역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시간 있을 때 만나 보길 원한다. 아들 손주 많이 보고 싶구나. 사랑한다.”
“(제작진에게) 영치금을 부탁드려도 될지요. 사정상 어려움이 많습니다. 가능하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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