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시켜 달라” 살인범 호소에도 법원이 징역 25년 선고한 이유

재판부 “다른 보복 범죄와의 형평성 고려”

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받고도 옛 연인을 찾아가 무참하게 살해한 30대 스토킹범이 중형을 선고 받았다. 온라인커뮤니티 캡처

살인범은 "목숨으로 사죄드리고 죗값을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에게 징역 25년형을 선고했다.

설모(31) 씨는 지난해 7월 17일 새벽 인천 남동구의 한 아파트 복도에서 출근 중인 옛 연인 이모(여·37) 씨를 흉기로 살해했다. 이 씨의 비명을 듣고 나와 범행을 말리던 이 씨의 어머니도 손을 크게 다쳤다. 이 씨의 6살 딸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 현재 심리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 씨는 교제 때부터 헤어진 이후까지 이 씨를 스토킹했다. 설 씨는 이 씨에게 집착했으며 폭력을 휘둘렀다. 마침내 지난 6월 법원은 설 씨에게 "이 씨로부터 100m 이내 접근하지 말고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도 금지하라"는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이 같은 판결은 설 씨를 더 분노케 했다. 검찰은 이번 살인 사건이 이 씨의 접근 금지 요청에 대한 설 씨의 보복살인이라고 봤다.

검찰은 지난달 15일 결심 공판에서 "피고인은 무방비 상태인 피해자를 잔혹하게 계획적으로 살해했다"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설 씨는 당시 사형이 구형되자 "유가족의 크나큰 슬픔을 목숨으로나마 사죄드리고 싶다"며 재판부에 직접 사형 선고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18일 인천지법 형사15부(류호중 부장판사)는 설 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유족의 정신적 고통과 엄벌 요구를 언급하며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피고인이 범행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하면서도 "피해자 자녀가 범행 장면을 목격했다거나 피고인이 자녀가 지켜보는 가운데도 범행을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 형벌을 가중할 요소로 포함하진 않았다"고 판시했다.

또 재판부는 "자신의 죄를 처벌받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다른 보복 범죄와의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거나 영구 격리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 씨 유족은 선고 공판 뒤 "피고인이 다시 또 세상에 나와서 조카(이 씨의 딸)에게 범행할 수도 있다"며 "결과적으로 조카도 지켜주지 못한 판결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유족은 "(이 씨의 딸이) ‘나 엄마 죽는 거 봤는데 왜 어른들은 나한테 아무 얘기도 해주지 않냐’는 말을 분명히 했다"며 "(피고인이) 세상에 나오게 돼서 저희 조카에게 똑같은 짓을 저지르지 않으라는 법은 없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임정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