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전기차 회사를 일군 작은 거인 왕촨푸 BYD 회장[지식人 지식in]

이영욱 기자(leeyw@mk.co.kr) 2024. 1. 20.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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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촨푸 BYD 회장이 지난해 9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IAA 모빌리티쇼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국산 상품과 중국산 신형 휴대폰의 인기, 신에너지 자동차, 리튬 전지, 태양광 제품 등이 중국 제조에 새로운 성장점이 됐다.”

지난 1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신년사 중 한 대목입니다. 시 주석은 2023년에 대해 부단한 노력으로 중국의 혁신 동력, 발전 활력이 용솟음쳤다고 밝혔습니다. 여러 산업이 중국의 제조업을 이끌었다는 점인데 이 중 특히 ‘신에너지 자동차’라는 부분은 오늘 소개할 주인공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새해 초 자동차 업계에 놀라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습니다. 전세계 전기차 판매 대수 1위 자리를 놓고 벌인 경쟁에서 BYD가 테슬라를 꺾었다는 소식이었죠. 심지어 테슬라는 목표치보다 더 많은 전기차를 판매했지만 BYD의 무서운 질주를 막지는 못했습니다.

테슬라가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 4분기 48만4507대의 차량을 인도했습니다. 애널리스트의 전망치 48만3173대를 넘어선 수준이었죠. 테슬라의 자체 목표치 48만대를 넘어서는 좋은 실적이었습니다. 같은 기간 BYD는 52만6409대를 판매했습니다. 이 또한 놀라운 수치입니다. BYD의 분기별 순수 전기차 판매량이 50만대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죠. 2023년 전 세계 시장에서 BYD는 302만대, 테슬라는 180만대를 판매했습니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오늘의 주인공 BYD의 창업자 왕촨푸 회장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론 머스크 당신은 나를 비웃었겠지만, 나는 보란듯이 성공했다’고 말이죠.

2011년 일론 머스크는 한 TV 방송에 출연해 BYD에 대해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력이 그리 강하진 않은 기업”이라고 일축한 바 있죠.

시골 목공의 둘째 아들, 중국 대표 배터리 기업을 창업하다
왕촨푸는 1966년 중국 안후이성 우후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목공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왕 회장은 10대에 양친을 모두 잃었으며 이후 집안이 급격히 기울면서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내야했습니다. 왕 회장의 형도 왕 회장의 학업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본인의 학업을 접고 일터로 나갔죠. 가족들의 도움으로 왕 회장은 1987년 후난성 창사의 중난대학교에서 야금물리화학을 전공할 수 있었고 같은해 베이징 유색금속연구원에서 석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왕 회장은 연구원이 1993년 선전에 설립한 배터리 유한회사의 부사장으로 임명됐는데 여기서 그는 배터리 산업에 미래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됩니다. 과감히 사직서를 던진 왕 회장은 1995년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축적한 사촌 형으로부터 큰 돈을 빌려 BYD를 창업하고 배터리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BYD 하면 전기차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BYD도 설립 초기엔 배터리 기업이었습니다.

‘배터리 제조 기업’ BYD는 설립 초기 휴대폰과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주력 품목으로 삼았습니다. 왕 회장은 퇴근도 잊고 늦은 시간까지 일에 매진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당시 배터리 시장은 일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는 일본 기업들이 발을 빼고 있던 니켈 카드뮴 전지 분야로 사업을 넓히며 배터리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습니다. 왕 회장은 곧이어 리튬 배터리 분야로 눈을 돌렸고 모토로라에 배터리를 납품하기 시작했죠. 이 외에도 일본 산요전기, 소니 등에 배터리를 공급하면서 명실상부한 중국 배터리 대표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왕 회장은 중국 내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급증할 것이라고 내다봤고 배터리 분야에 집중 투자를 단행합니다. 배터리 시장에서의 큰 성공을 바탕으로 2002년 BYD는 홍콩 증시에까지 상장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배터리에서 전기차의 미래를 본 왕촨푸…은인 버핏을 만나다
왕촨푸 BYD 회장이 찰리 멍거 버크셔헤서웨이 부회장, 워런 버핏 버크셔헤서웨이 회장(왼쪽부터)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배터리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왕 회장은 이제 배터리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좀 더 넓히고자 했습니다. BYD 창립 7년 후 왕 회장은 돌연 자동차 산업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그 시작은 2003년 국영기업인 시안친촨자동차 인수였죠. 투자자와 주주들은 반대 입장을 확고히 했습니다. 배터리 기업인 BYD는 자동차를 만들어 본 적이 없어 관련 기술은 전무했고, 더욱이 친촨차는 내연기관을 만들던 기업이었기 때문이었죠. 회의론자들의 전망대로 주가는 급락했지만, 왕 회장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타사 제품을 면밀히 연구하고 자체 기술개발에 매진하면서 왕 회장은 전기차를 타사 제품의 절반 가격에 판매한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배터리, 모터, 전자제어 장치 모두를 자체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과감한 결단이었죠. 그렇게 2005년 BYD의 첫 번째 자동차 모델 BYD F3 DM을 생산합니다. 이 때 BYD의 등에 날개를 달아준 은인이 나타났는데,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었습니다.

버핏의 단짝으로 불리는 찰리 멍거 버크셔헤서웨이 부회장은 BYD를 눈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멍거의 주도하에 버크셔헤서웨이는 2008년 투자자들 사이에선 당시 잘 알려져있지 않던 BYD의 주식 10%를 매입합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이는 현재 가치로 BYD 전체 지분의 약 7%, 약 50억달러(약 6조5000억원)에 해당합니다. 멍거 부회장은 당시 버핏 회장에게 “왕 회장은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GE를 세계 최고의 기업 반열에 올려 놓은 전설적인 경영자 잭 웰치를 섞어놓은 것 같은 사람”이라며 지분 매입을 설득했습니다. 멍거 부회장은 생전 “버크셔 최고의 투자는 애플이 아니라 BYD가 될 것”이란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버핏 회장 역시 BYD 지분을 매집하며 “결국 전기차가 대세가 될 것인데, BYD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죠.

여기에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BYD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 대중화를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기차가 대중화되면서 내연기관 차량이 줄면 원유 수입을 줄일 수 있고, 이를 통해 무역수지가 흑자가 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죠. 각종 보조금에 더해 충전 전기 할인 등 혜택이 쏟아지자 중국에선 전기차 창업 붐이 일었습니다. 수 백여 기업이 난립하던 전기차 시장은 현재 BYD를 포함해 몇 개의 주요 업체들로 재편되는 중입니다. 중국 정부의 정책에 발맞춰 BYD 역시 2022년 3월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신규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고금리·보조금 삭감에 위축되는 전기차 시장…BYD의 성공은 이어질까?
지난해 6월 중국 선전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국제 모터쇼를 찾은 관람객들이 BYD의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하지만 일각에선 BYD의 성공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FT는 “미국과 유럽에서 BYD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며 “중국산 자동차의 유럽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자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나서 중국 정부의 지원책을 조사하고 EU 자체적으로 유럽 기업들의 보조금을 늘리기로 결정했다”고 전했죠. 미국에선 상황이 더 좋지 않습니다. 중국을 타깃으로 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인해 세계 2위 자동차 시장인 중국 시장 진출도 쉽지 않기 때문이죠.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는 올해 주춤할 것으로 보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는 최신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전기차 시장은 27.1%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데 각 정부의 보조금 삭감으로 (소비자)구매력이 떨어지면서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죠. 카날리스는 이에 덧붙여 “중국 제조업체들은 글로벌 차원의 각 지역 제조 관련 투자가 곧 결실을 거둘 것인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왕 회장은 2022년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말은 줄이고, 더 많이 행동해야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는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BYD에 대해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전략은 기업 성공의 방향이 된다”며 “기술은 기업 전략을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고 기업을 더 높게, 더 멀리, 더 깊게 보게 만들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BYD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까요. 여담으로 왕 회장에 따르면 BYD란 사명은 창업 당시 회사가 자리잡은 야디촌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비(B)는 알파벳으로 표기시 사명을 앞 순번으로 당기기 위해 붙였다고 하죠. 이후 BYD는 Build Your Dreams라는 슬로건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과연 BYD가 꿈을 이뤄줄 수 있을까요?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를 넘어 또 다른 혁신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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