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귀를 자른 이유는 ‘술’ 때문?…천재는 왜 알콜중독에 빠졌나 [전형민의 와인프릭]
머리에 칭칭 붕대를 감고 털모자를 쓴 남자의 무심한 눈길, 일그러질듯 말듯한 묘한 곡선이 이어져 만들어 낸 황홀한 달밤, 벚꽃처럼 섬세하게 꽃이 핀 아몬드 나무…
불세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작품들 입니다. 네덜란드 후기 인상파인 그의 그림은 표현력이 풍부하고 다채로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반 고흐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많은 팬들은 소용돌이치는 붓터치를 느낄 수 있는 별이 빛나는 밤(The Starry Night)을 대표작으로 꼽습니다. 그림 왼쪽에서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치솟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수평으로 캔버스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는 밤하늘의 묘한 대비, 그 수직과 수평을 역동적이게 표현한 붓터치는 아름답다 못해 처절하다는 평가가 나오죠.
정신 질환과 비극으로 가득 찬 감정적이고 격동적인 삶을 산 반 고흐의 인생 역시 이야깃거리 입니다. 그는 열정적인 예술가였지만, 때때로 자기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폴 고갱(Paul Gauguin)과의 다툼 끝에 스스로 자신의 귀 일부를 잘라낸 스토리는 유명합니다.(*여러 가설이 있습니다.)
역사가들 사이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입니다만, 많은 전문가들은 그가 와인 중독자였다는 데 동의합니다. 생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곳곳에서 그의 와인 사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편지에서 그는 좋은 와인도 창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는 글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에 대한 좌절감을 표현합니다. 원인이 무엇이든 반 고흐가 쓴 편지와 일기를 통해 그가 매일 와인을 마셨다는 건 확인된 셈입니다.
“글쓰기의 가장 큰 어려움은 교육받은 사람의 언어로 자신이 느끼는 것을 표현하도록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이 와인은 비록 아주 좋기는 하지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좀 더 생기는 것 외에 특별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빈센트 반 고흐
압생트는 반 고흐가 살던 시대, 화가와 시인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음료였습니다. 전 유럽에서 창궐한 필록세라의 영향으로 와인 시장이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에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던 화가와 작가들에게 사랑 받았습니다.
값싸고 쉽게 취하는데다, 오묘한 색깔과 달콤 쌉쏘름한 향신료향을 풍기기 때문인데, 한때는 섬망과 환각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섬망·환각 유발 문제는 반증이 됐지만요.
반 고흐 역시 생전 압생트를 열성적으로 마셨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가 압생트 중독 때문에 귀를 잘랐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서도 논쟁이 있습니다만, 어찌됐건 그가 창작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셨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이렇게 생긴 알코올 중독은 그의 정신건강을 손상시켰고 우울증과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불러왔을 겁니다. 고흐는 알코올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쨌든 마시기로 결정했습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편안함과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술을 많이 마시거나 담배를 많이 피워서 기절시키는 것 뿐이다.” -빈센트 반 고흐
우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붉은 포도원(The Red Vinyard)에 대해서는 잘 아실 겁니다. 1888년 그가 프랑스 남부 도시 아를(Arles)에서 그렸고, 같은 해 아를 인근 몽마주르(Montmajour)에서는 푸른 포도원(The Green Vineyard)도 그렸습니다.
아를에서 기거하는 동안 포도밭 그림을 연거푸 그렸던 것에 비춰볼 때, 머무는 동안 이 지역 와인에 깊이 심취했던 게 아닐까 추정됩니다.
꼬또 덱상 프로방스 AOC는 프로방스에서 두 번째로 큰 AOC로 서북쪽에 위치하며 50개 마을에서 4000헥타르(㏊) 정도의 포도밭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생산량의 대부분인 81%가 로제 와인, 15%가 레드, 4%가 화이트 와인 입니다.
사실 프로방스 지역은 로제 와인으로 유명합니다. 요새 트렌드에 잘 맞는 스타일이죠. 가볍고, 향기롭고, 쉽게 마시고 즐기기 좋은 스타일인데다 중성적인 성격을 지녀 어떤 음식과의 페어링도 무난하게 잘 어울립니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대형 마트에서도 병당 1~3만원에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와인병과 잔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해왔지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다. 반사와 투명도로 좋은 효과를 얻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나는 아직도 유리 그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결국 아를에서의 요양 생활을 끝낸 지 2년여 만인 37살, 반 고흐는 불안정한 정신 건강이 문제가 돼 스스로의 가슴에 권총을 쏴 자살을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틀 뒤 세상을 떠납니다.
누구보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예술혼을 지녔지만 사람들의 외면이 계속되면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의심하며 끊임없이 고독과 싸워야 했고, 끝내 그 광기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져 내린 것 아닐까요.
로제 와인의 대표적인 산지로 불리는 만큼 프로방스에는 로제 와인과 관련한 이런 무성의한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프로방스에 태양을 절여 와인을 만드는 어부가 있었는데 그는 태양을 헹구고 빨아서 분홍빛을 얻었고 그 분홍빛을 잔 속에 담아 만든 것이 로제 와인이 됐다 라는 이야기입니다.
프로방스는 지중해를 가득히 안고, 높은 산과 깊은 바다 그리고 따스한 햇살과 너른 땅을 갖춘 천혜의 지역입니다. 어쩌면 생득적으로 천혜의 땅에서 살아온 프로방스인들에게 와인은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음료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태도가 이런 무성의한 전설을 만든 건 아닐까요.
복잡한 일로 머리가 아프다면, 너무 심각하기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현실에 충실한 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로제 와인 한 잔을 즐기시기를 권합니다. 의외로 단순한 곳에서 해결책을 찾게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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