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기름’ 아니라 ‘플라스틱’ 이라니 [사이언스라운지]

고재원 기자(ko.jaewon@mk.co.kr) 2024. 1. 2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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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연구팀이 미국 하와이 앞바다에서 건져올린 플라스틱 조각들이다. [사진=NOAA]
미세 플라스틱이 인류의 재앙이 될까. 마이크로미터(μm)급의 매우 작은 플라스틱 입자가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인 마리아나 해구부터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 정상까지 지구 모든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사람의 몸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는 연구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지구의 모든 곳, 모든 것에 미세 플라스틱이 침투한 셈이다.

19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미세 플라스틱은 통상 1μm∼5mm의 플라스틱을 일컫는다. 미세 플라스틱은 발생 원인에 따라 두 종류로 나뉜다. 얼굴에 발라 문지르다가 물로 씻어내는 클렌징이나 스크럽 제품에 들어있는 미세 플라스틱은 1차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류된다. 애초에 의도적으로 작게 제조된 플라스틱이다. 2차 미세 플라스틱은 마모되거나 태양광 분해 등에 의해 잘게 부서져 생성되는 것들을 뜻한다. 낚싯줄이나 스티로폼 부표, 페트병 등에서 만들어지는 것들이다. 발생량이 가장 많은 것이 섬유와 자동차 바퀴 등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세 플라스틱은 먼지 형태로 날아다닌다. 지난 17일 산제이 모한티 미국 로스엔젤레스 캘리포니아대 환경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비료에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이 바람에 흩날려 공기 중 떠다닌다는 분석을 국제학술지 ‘환경 과학 및 기술 레터스’에 공개했다.

연구팀은 비료를 사용하는 미국 워싱턴주 농지 지역을 분석했다. 해당 지역의 공기 중 미세 플라스틱 농도를 분석했고, 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본래의 토양 때보다 공기 미세 플라스틱의 양이 약 2.5배 더 많다는 결과를 얻었다. 연구팀은 “미세 플라스틱 입자는 다른 입자들에 비해 ‘끈적임’이 덜해 쉽게 토양 속에 박혀 있지 못한다”며 “강한 바람이 불면 미세 플라스틱이 공기 중으로 쉽게 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버려진 플라스틱들은 2차 미세플라스틱의 발생 원인이 된다. [사진=NOAA]
먼지 형태로 날아다니는 미세 플라스틱은 지구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심지어 고도 20km 부근의 성층권까지 도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센 바게리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미세 플라스틱이 성층권에 도달해 구름 형성 과정은 물론 오존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을 국제학술지 ‘환경과학기술’에 지난 9일 공개했다. 이 분석은 연구실 실험과 모델 시뮬레이션 결과를 종합해 얻은 것으로 미세 플라스틱이 어떻게 발생원 근처 범위를 한참 넘어 매우 먼 지역까지 도달하는지를 밝혔다. 성층권까지 올라갈 정도로 미세 플라스틱이 쉽게 흩날리기 때문에 전지구적 이동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미세플라스틱은 지구 모든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영국 플리머스 해양연구소에 따르면 전 세계 미세 플라스틱 조각의 숫자는 최대 125조 개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2014년 기준 약 50조 개였던 것이 10년 새 증가한 것이다. 최근에는 미국에서 시판되는 생수 1병 안에 미세 플라스틱이 약 24만 개가 들어 있었다는 연구결과도 나오는 등 생활 속 물품에도 파고 들었다.

이에 더해 사람 몸에서 미세플라스틱 입자가 발견됐다는 연구가 쏟아지고 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브리예대 연구팀은 건강한 성인 22명의 혈액 샘플을 채취해 조사했더니, 혈액 샘플의 50%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국제학술지 ‘국제환경저널’에 게재된 이 연구는 혈액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는 첫 사례였다. 이전에는 사람의 뇌나 장, 태아의 태반, 대변 등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된 바 있다.

시판되는 생수 1병 안에 아주 작은 크기의 미세플라스틱이 약 24만 개가 들어 있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사진=미 컬럼비아대]
그렇다면 이 미세 플라스틱들은 사람 몸에 악영향을 줄까. 과학자들이 내놓는 답안은 ‘모른다’이다. 과학자들은 미세플라스틱은 입자가 작을수록 독성이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세포막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산화방지제 같은 첨가제가 다량 들어가 있어 몸안에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또 해양 환경에서 주변 오염물질을 흡착할 수도 있다. 산업 농업에서 사용되는 중금속이나 발암물질로 알려진 벤조피렌 등 독성물질이 흡착된 미세플라스틱이 세포막을 뚫어 침투하면 신경계나 면역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미세 플라스틱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생수 1병 안에 미세 플라스틱이 약 24만 개가 들어있다는 연구가 화제가 됐을 때 생수업계를 대변하는 ‘국제생수협회’가 “미세 플라스틱 입자가 건강에 미칠 수 있는 과학적 합의가 없다”며 “소비자에게 불필요하게 겁을 주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칠 수 있는 이유다.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미세 플라스틱의 인체 유해성을 밝히긴 어렵다. 과학자들은 일상 생활에서 노출되는 화학 물질의 양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인과 관계를 찾는 것은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향후 더 많은 연구들이 필요한 이유다. 여러 연구에서 생수보다 수돗물의 미세 플라스틱 수치가 낮다고 조사되는 이유, 생수병 안에 있던 미세플라스틱의 발생 원인, 미세 플라스틱이 인체로 유입되는 경로, 유입 후 입자의 거동 특징 등과 같은 난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과학자들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배달이나 포장 음식 소비를 줄이고, 미세 플라스틱 발생원이 되는 합성의류보다는 천연 소재를 사용하는 등의 노력이다. 이미 발생한 미세 플라스틱을 처리하려는 기술적 노력도 계속 되어야 한다. 영국 스타트업 ‘타이어 콜렉티브’는 타이어 마찰로 인해 발생하는 미세 플라스틱을 흡수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자동차 바퀴 옆 범퍼 하단에 설치해 미세 플라스틱을 빨아들이는 장치다. 수중의 미세 플라스틱을 포집하는 자성 물질도 호주에서 개발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2년 내놓은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약 4억 3000만t의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이는 2060년까지 3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스타트업 ‘타이어 콜렉티브’가 개발 중인 미세 플라스틱 흡입 장치. [사진=타이어 콜렉티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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