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아소비·이마세·킹누···이제는 '덕후' 아닌 대세된 J-팝[허지영의 케잇슈]

허지영 기자 2024. 1. 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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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아소비 내한에 8000명 떼창
J-팝·애니메이션 인기 '시너지'
"J 웨이브 흐름은 日아티스트에 달려"
[서울경제]

요즘 가요계에는 무슨 이슈가 있을까? 가요 담당 허지영 기자가 친절하게 읽어드립니다.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위상을 떨치는 추세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서는 J-컬쳐 열풍이 불고 있다. '슬램덩크', '스즈메의 문단속', '귀멸의 칼날' 등 일본 애니메이션은 영화관에서 일제히 100만을 훌쩍 넘기며 사랑받았다. 국내 음악 시장에서도 J-팝이 K-팝 못지않게 큰 사랑을 받는 추세다. 2인조 밴드 요아소비(YOASOBI)는 지난달 첫 내한으로 1만여 관객의 떼창을 끌어냈고, 솔로 가수 이마세(imase)는 곡 ‘나이트 댄서(Night dancer)'로 J-팝 최초 국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에서 17위에 올랐다. 최근 들어 J-팝이 국내에서 이토록 주목 받는 저력은 과연 무엇일까.

요아소비 내한 콘서트 현장 / 사진=리벳(LIVET), Kato Shumpei(카토 슘페이)

◇'피켓팅' 내한 공연...8000명 일본어로 '떼창' = 2023년에는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일본 밴드 다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요아소비의 첫 내한 공연은 국내 J-팝과 J-컬처 열풍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티켓팅이 열리고 1분이 지나기도 전에 2회차 공연 좌석이 모두 팔렸다. 이에 공연사 측은 급히 요아소비의 공연 회차를 1회 추가했으나 순식간에 매진돼 요아소비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관객은 요아소비의 히트곡 '아이돌'부터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수록곡까지 전곡 떼창으로 요아소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대 커플부터 딸의 손을 잡고 온 엄마까지 연령대와 성별도 다양했다. 이에 요아소비는 다음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본 곡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일본어를 열심히 떼창으로 따라 해 주셨다. 열정이 잘 느껴져서 기뻤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마세 / 사진=유니버설뮤직

국내에서 히트한 일본 가수로는 이마세를 빼놓을 수 없다. 2000년생의 젊은 가수인 그는 2021년 데뷔해 다음 해 8월 자작곡 '나이트 댄서'로 J-팝 열풍을 일으켰다. '나이트 댄서'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에서 무려 12억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국내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멜론의 일간 해외 종합 차트에서는 2위, 톱100에서는 17위에 진입했다. 이는 국내에서 사랑받은 J-팝 중 최고 기록이다.

힘 있고 완벽한 라이브로 전 세계를 투어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누리는 원 오크 록(ONE OK ROCK)도 지난달 12월, 5년 만에 내한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일본 가수의 내한이 다수 예정돼 있다. 4월에는 신흥 인기 밴드로 떠오른 킹 누(King Gnu)가, 5월에는 이브(EVE)가 처음 내한한다. 지난 9일 열린 킹 누 공연 티켓팅은 국내 K-팝 정상급 아이돌 공연 못지않게 '피켓팅'을 자랑했다.

킹 누 / 사진=주식회사 엠피엠지

◇J-팝 사랑, 배경에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 J-팝이 사랑받는 배경에는 J-컬처 열풍이 있다. 2021년 신카이 마코토의 영화 '너의 이름은'이 약 3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고, 지난해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이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며(550만 명) 일본 애니메이션도 '마이너'의 길을 벗어나게 됐다. 전 세계적 인기작인 '슬램덩크' 역시 지난해 1월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482만 명을 모으며 '농놀'('농구 놀이', '슬램덩크'를 '덕질'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냈다. '주술회전', '귀멸의 칼날', '체인소맨' 등 여러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은 신작이 나오면 넷플릭스 국내 시청 톱 차트에 이름을 올린다. 반세기 넘게 생명력을 자랑하는 일본의 대중 만화 IP가 한국에도 통한 것이다.

애니메이션 '주술회전' 포스터 /사진=대원미디어 제공

애니메이션에는 음악이 있기 마련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삽입곡을 부르거나, 오프닝 곡을 부른 밴드는 한국에서 특히 더 사랑받고 있다. 요아소비는 만화 '최애의 아이'를 모티프로 만들어진 곡 '아이돌'을 발표해 빌보드 재팬 '핫 100'에서 21주 연속 1위에 올랐다. 킹누는 '극장판 주술회전 0' 삽입곡과 '주술회전'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인 '역몽(Sakayume)', '일도(Ichizu)', '스페셜즈(SPECIALZ)' 등을 불러 기존 밴드의 팬뿐만이 아닌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주제가 '제제로감(第 zero 感)'을 부른 밴드 텐피트(10-FEET)도 지난해 부산국제록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내한했는데, 현장 반응이 매우 뜨거워 '제제로감'만으로 앙코르 무대를 진행했다.

킹 누 '역몽' 커버

◇일본 문화 개방 20년, 낙숫물 모여 강 됐다 = J웨이브가 하루아침에 형성된 건 아니다. 1998년 일본 문화가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 등은 '서브컬처'로 불리며 '덕후' 사이에서는 나름 인기몰이를 했다. 다만 일본 아티스트들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한국 팬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2020년대 들어 팬데믹과 엔데믹을 겪은 후에는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 아티스트들이 우후죽순 내한하는 것도 엔데믹이 선언된 2022년 이후부터였다.

일본 음악을 깊게 연구해 온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코로나 이전에는 굳이 수익을 크게 낼 상황이 아니라면 일본 가수들이 한국에 오지 않았다. 그러나 팬데믹을 거치며 일본의 문화계도 많이 힘들어졌고, '어딘가에서 우리를 좋아해 준다'고 생각하면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한국은 멀지도 않으니 접근성이 더 좋다"고 짚었다.

요아소비 내한 콘서트 현장 / 사진=리벳(LIVET), Kato Shumpei(카토 슘페이)

'개인 취향 존중'을 내세우는 현 10~20대 팬덤의 정서와 SNS의 발달도 국내 J웨이브를 견인했다. 김 평론가는 "20년 동안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히 늘었다. 한일 민족 감정 등으로 그동안 사회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별적인 취향을 존중하는 시대가 됐다. 그러다 보니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라며 "일본 아티스트들도 다 SNS를 보며 '한국에서 이렇게 인기가 많구나' 확인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 오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이 J웨이브가 얼마나 지속되는지는 국내 팬덤보다도 일본 아티스트에게 달렸다. 김 평론가는 "다른 해외 아티스트보다 일본은 아직 홍보에 소극적인 인상이 짙긴 하다. 지금은 엔데믹 이후 해외 시장 확보의 중요성을 느끼고 한국에도 '일단 한번' 와 보는 거다"며 "일본 아티스트들이 한국 젊은이가 느끼기에 얼마나 '힙한' 음악을 만드는지, 얼마나 한국 시장에 욕심을 내느냐에 따라 J웨이브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허지영 기자 he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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