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저출생 대책’ 격돌…누가 이겼을까?[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
여당인 국민의힘과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약속한 듯 한 날에 ‘저출생’ 대책을 내놨다. 18일 국민의 힘 공약개발본부는 ‘1호 공약: 일·가족 모두행복’을, 더불어민주당은 ‘저출생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총선을 앞두고 양당이 가장 중요하고 제일 먼저 공개해야 한다고 판단한 정책이 인구정책이었다는 건 개인적으로 반가운 일이다. 양당의 발표엔 일부 겹치는 것도 있었지만, 주로 방점을 찍은 곳은 달랐다. 과연 어느 당의 대책이 더 나았을까? 기자인 동시에 네 아이 엄마로서,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를 내려 본다.
● 與 “육아기 유연근무 의무화”, 가족친화 일터 위해 긍정적
국민의힘 대책 중 가장 눈에 띈 것은 ‘육아기 유연근무 확대’다. 육아기 유연근무란 어린 아이가 있는 직원에게 시차근무(다른 직원들과 시차를 두고 근무하는 것), 재택근무, 단축 근로와 같은 유연한 근무를 허용하는 것이다. 흔히 일터에서 필요한 육아 관련 제도라고 하면 ‘육아휴직’을 제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육아휴직보다 더 먼저 권장돼야 하는 것이 육아기 유연근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휴직’하는 것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게 우선 고려가 돼야 하고 그게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육아휴직은 육아하는 부모를 휴직시켜 일터에서 배제시키는 반면, 육아기 유연근무는 육아하는 부모도 일할 수 있게 만들어 일터에 가족 친화적인 근로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현재도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는 시행되고 있다. 만 8세 이하 부모가 육아를 이유로 단축 근로를 신청하면 사업주는 최대 1년까지 이를 허용해야 한다. 여당은 이런 단축 근로를 유연근무 전체로 확대해, 일정 규모 이상 기업부터 의무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중소기업 육아휴직 활성화를 위해 근로자뿐 아니라 기업 지원책도 함께 내놓은 점 역시 눈길을 끈다.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으로 인한 인력 공백의 타격이 대기업의 몇 배, 몇십 배로 크다. 따라서 중소기업의 경우 육아휴직률을 높이려면 기업에 인센티브를 높게 주어 육아휴직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여당은 중소기업이 직원 육아휴직을 허용하고 대체인력을 채용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고 기업에 대체인력지원금도 2배 높이겠다고 밝혔다. 남은 동료들을 위한 동료수당도 신설할 계획이다. 반면 민주당은 육아휴직자를 위한 ‘워라밸 프리미엄 급여(50만 원)’를 제시했지만,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밝히지 않았다.
● 아동수당·아이돌봄지원…양육부담 커지는 학령기 지원 확대 바람직
민주당 대책에서 특기하고 싶은 것은 아동수당 대상과 금액을 대폭 확대하고 아이돌봄서비스 지원책을 개선하는 등 만 8세 이후 학령기 가정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나온 점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주로 임신·출산 전후에 집중됐다. 출산을 늘리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 전후로 많은 혜택이 쏠린 것이다. 정작 많은 돈이 들어가는 학령기가 되면 지원이 급감해 양육 부담이 커지는 문제가 있었다.
아동수당의 경우 스웨덴,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은 대부분 법적 아동 기한인 만 18세까지 준다. 심지어 25세까지 주는 나라도 있다. 최근 일본도 중학생까지 주던 아동수당을 고등학생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한국은? 만 7세까지만 준다.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아동수당이 아니라 사실상 ‘영유아수당’에 가까운 수준이다.
민주당은 8세부터 17세까지 아동 1명당 월 20만 원의 아동수당을 카드로 지급하는 ‘우리아이 키움카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8세 이후 매월 10만 원씩 정부가 입금하고 부모도 매월 10만 원 입금할 수 있는 ‘우리아이 자립펀드’도 만들겠다고 했다.
만 12세 이하 아이가 있는 가정에 아이돌보미 인력을 제공하는 아이돌봄서비스도 소득에 상관없이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소득이 어느 이상이면 정부 지원이 없어 모든 금액을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심지어 아이돌봄서비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한부모 가정조차 2인 가구 소득 기준을 넘으면 한 푼도 지원받을 수 없다. 많은 저출산 대책이 이처럼 소득 요건을 두고 있어 실질적으로 저소득층만 혜택을 받는 경우가 많다. 중산층이라 해서 육아 부담이 없는 건 아니기에, 특히 지금 같은 초저출산 상황에서는 정책의 보편성을 확대해 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환영할 만한 제안이다.
다만 재원 마련은 숙제다. 여당이 ‘저출생대응특별회계’ 신설을 공약한 데 반해 민주당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아동수당 예산이 지금의 배 이상 늘어나고 아이돌봄서비스도 이용료가 인하되면 이용자가 크게 늘어날 수 있기에 예산 마련 방안이 꼭 필요하다. 여성가족부도 매년 아이돌봄 지원 확대안을 냈지만, 예산이 없단 이유로 번번이 추진에 실패했다.
● 육아휴직 의무화보다 근로문화 개선 우선돼야
양당 모두 육아휴직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여당은 아빠의 1개월 출산휴가를 의무화하고 임신 중 육아휴직 사용을 배우자에게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여성들이 결혼·출산을 꺼리는 이유로 ‘독박육아’가 꼽히고 있는 만큼 남성의 육아 참여율을 높이기 위한 이들 대책은 긍정적 평가를 받을 만하다. 육아휴직급여를 인상하고 유명무실한 사후지급금은 없애겠다고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사후지급금은 육아휴직급여 중 25%를 떼어놓았다가 복직 후 6개월 넘게 일하면 돌려주는 돈이다. 복직율을 높이기 위한 장치였지만, 최근 조사에 따르면 복직 효과는 크지 않고 육아휴직 기간 급여액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육아휴직 대상 확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육아휴직급여가 고용보험에서 나가는 탓에 현재는 고용보험 가입자만 육아휴직 혜택을 받고 있다. 이에 따른 형평성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왔고 방안 마련이 요구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8월 고용보험 가입률은 전체 임금근로자 77%이며, 비정규직의 경우 54.2%에 불과하다.
육아휴직 개선안 대부분 공감할 만한 내용이지만, 양당 모두 제시한 육아휴직 자동 개시 제도는 개인적으로 썩 마음이 가지 않는다. 현재도 출산 직후 육아휴직은 여성에 극히 편중돼 있다. 의무화까지 해버리면 육아휴직자 중 여성 비율이 더 크게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복지가 잘 자리 잡은 대기업을 제외하면 여전히 남성의 육아휴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육아휴직으로 인한 여성의 직장 내 인사 불이익, 도태도 심각하다. 이런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의무화를 추진했다가 되레 근로 현장에서 여성과 엄마를 더 배제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휴직 강제보다는 일을 하며 아이 키우는 일터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 아닐까.
● 다자녀 주거지원은 ‘빛 좋은 개살구’ 아닌지 따져봐야
다자녀 가정에 분양전환 공공임대 아파트를 제공한다는 민주당의 공약은 언뜻 큰 혜택처럼 보이지만 ‘빛 좋은 개살구’는 아닌지 따져 볼 일이다. 그동안 정부도 특공, 대출 혜택 등 다양한 주거 혜택을 내놓았는데, 네 자녀인 기자조차 한 번도 그 혜택을 본 일이 없다. 원하는 장소, 넓이가 아니거나 유주택자라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제한이 많다. 실제 이런 주거대책으로 얼마나 수혜를 보았는지, 저출산 해소에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조사된 자료도 없다. 민주당 관계자는 “선택지를 넓히는 차원으로 이해해달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전반적으로 일·가정 양립에, 민주당은 현금성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개인적으로는 전자가 좀 더 실현 가능한 구체적 대책을 내놨다는 생각이 든다. 여당인 만큼 정부에서 실제 진행 중인 정책을 많이 참고했을 테고,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상임위원인 홍석철 공약 총괄본부장(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의 코칭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동수당, 아이돌봄 지원 확대 같은 민주당의 공약도 양육기 부모들의 부담을 줄이고, 더불어 청년들의 육아에 대한 인식도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이다.
양당이 정책이 ‘누가 더 낫다’ 경쟁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서로의 장점을 흡수하여 더 나은 정책으로 실제 구현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기자이기에 앞서, 엄마로서.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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