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품격” 고려다완, “일본인의 찻잔” [일본 속 우리문화재]

강구열 2024. 1. 20.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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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국박, ‘찻잔-다도를 이야기하는 그릇’ 전시 고려다완 4점 포함
일본 와비차 유행과 함께 16∼17세기 고려다완 애호 절정 이뤄
“심오한 무작위의 경지…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작은 전시 ‘찻잔-다도(茶道)를 이야기하는 그릇’에 소개된 영상 속 장면들은 흥미롭다.  

기모노 차림으로 다실(茶室)에 앉은 세 남녀가 찻잔에 우려낸 말차(抹茶)를 나누어 마시는 데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다.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신주단지 모시듯 두 손으로 받쳐든 찻잔을 감상하는 사람의 모습도 재밌다. 천천히 돌려가며 빛의 정도에 따라 변하는 찻잔의 표면을 응시하는 것이 감상의 방법이란다. 손바닥으로는 찻잔의 무게, 감촉을 느껴야 한다.  

기모노 차림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다완을 감상하는 다인의 모습.  
한껏 이상화된 모습을 담은 듯 보여 ‘오버한다’ 싶기도 하지만 “전통문화의 대표”이자 “민족고유의 문화사상”인 다도에 대한 일본인들의 진심이 표현된 것이라 생각하면 이해못할 바도 아니다. 

그 진심 속에 고려다완이 있다. 다도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 정도가 아니라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가진 예술품이다. 일본의 다인들은 오래전부터 “말로 표현하기 힘든 풍격”, “심오한 조형미”를 가졌다며 크게 사랑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빼어난 예술성을 발견하고, 널리 즐겼던 그들에게 고려다완이 외국에서 수입한 문물이란 인식은 희박한 듯 보인다. 오히려 “일본인의 다완”이란 자부심이 또렷하다. 

도쿄국립박물관  ‘찻잔-다도를 이야기하는 그릇’전에 전시된 ‘호리미시마 찻잔 겐토’
◆일본 다도 절정기 장식한 한국 다완

전시회에 출품된 고려다완은 4점이다. 전시실 가장 앞자리에 ‘아오이도(靑井戶) 찻잔 도키(土岐)이도’가 자리잡았다. ‘귀얄무늬 찻잔 무라쿠모(村雲)’, ‘도토야(魚屋) 찻잔 사와라비’가 뒤를 따른다. ‘호리미시마(彫三島) 찻잔 겐토(玄濤)’은 “일본이 주문해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찻잔”이라고 소개했다.

도쿄국립박물관 찻잔 전시회에 출품된 고려다완. ‘아오이도 찻잔 도키이도’, ‘귀얄무늬 찻잔 무라쿠모’, ‘도토야 찻잔 사와라비’(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네 점은 16세기 혹은 16∼17세기 조선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고려다완이 16세기부터 일본 다인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17세기까지 융성기(16∼17세기)를 이뤘다는 사실과 겹친다. 이전에도 고려다완이 있었지만 중국 찻잔에 가려 각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5세기 후반 무라타 쥬코가 등장해 일본 특유의 ‘와비차’ 문화를 창시하고, 점차 자리를 잡아가면서 주목도가 크게 높아졌다. 차모임과 관련된 정보를 담은 다회기(茶會記)에 ‘고려다완’이란 명칭이 처음 나오는 건 1537년 9월 12일 기록이라고 한다. 임진왜란(1592∼1598)에 참전한 무장들이 경쟁적으로 고려다완을 노렸다. 이후에는 조선에 주문 생산을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중세 일본을 쥐락펴락했던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고려다완, 그 중에서도 이도다완(井戶茶碗)을 갖고 다회를 열었다고 하니 ‘성 하나와도 바꾸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주요 다이묘(일본의 영주)에다 센 리큐 같은 이름난 다도인까지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고려다완은 권위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다.

◆“무작위적이고 한없이 넓은 자태”

도쿄박물관 말고도 고려다완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여럿이다. 고토미술관은 소장품 중 하나인 ‘미노(美濃) 명(銘) 이도다완’을 “열손가락 안에 드는 명품”이라며 대표소장품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네즈미술관은 다음달 10일부터 고려다완을 포함해 “일본인이 애호해 온 조선도자기”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연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애정, 무엇에 마음을 사로잡힌 것일까.  

도쿄국립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고려다완을 비롯한 전시품들을 보고 있다.  
도쿄국립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고려다완을 비롯한 전시품들을 보고 있다.  
고려다완 중에서 “천하 제일”이라 평가를 받았던 이도다완에 대한 이런 평가가 눈길을 끈다.

“이도다완이 가진 무작위적이고 망양(茫洋·한없이 넓고 멀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한 자태는 무라타 쥬코(와비차의 창시자)가 말한 ‘히에카레타’ 운치에 통하고, 그것이 와비차(侘茶)의 절정기에 특히 찬사를 받은 것은 와비 미의식의 흐름을 짐작하는 데 있어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고려다완』, 중앙공론사, 1980)

히에카레타는 일본 다도가 지향하는 마음의 상태다. “수목이 시드는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 혹은 거기서 느끼는 맑고 늠름한 기운”이라고 한다. 와비는 일본 전통 미의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개념이다. 

일본인들은 이도다완의 이런 품격이 규범을 초월한 데서 비롯된다고 평가한다. 도공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 몸에 익혀 무심코 이뤄낸 경지다.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어서 현대 도예가들이 이도다완을 목표로 작업을 하지만 같은 품격을 재현하지는 못했다고 여긴다.

도쿄국립박물관 정원에서 서 있는 다실 ‘오쿄칸’
이런 찬사를 보고 있으면 고려다완을 외래의 문물로 여기는 태도나 시선을 거의 읽을 수가 없다. 월등한 예술성을 먼저 알아보고, 자신들의 문화 속에서 적극 활용했다는 점을 자부하고 부각한다. 한반도에서는 “고려다완 대부분이 고려시대 이래 한반도의 도예에서 주류였던 적은 없다”, “훼손되면 버려지는 잡기적 성격의 것이었다”고 주장도 서슴치 않는다. 이런 시각은 “고려다완이란 것은 한반도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미적평가에 있어서는 일본인의 다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주장으로까지 이어진다. 

글·사진=강구열 도쿄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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