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표현할 수 없는 품격” 고려다완, “일본인의 찻잔” [일본 속 우리문화재]
일본 와비차 유행과 함께 16∼17세기 고려다완 애호 절정 이뤄
“심오한 무작위의 경지…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도쿄국립박물관의 작은 전시 ‘찻잔-다도(茶道)를 이야기하는 그릇’에 소개된 영상 속 장면들은 흥미롭다.
기모노 차림으로 다실(茶室)에 앉은 세 남녀가 찻잔에 우려낸 말차(抹茶)를 나누어 마시는 데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다. 무릎을 꿇은 채 엎드려 신주단지 모시듯 두 손으로 받쳐든 찻잔을 감상하는 사람의 모습도 재밌다. 천천히 돌려가며 빛의 정도에 따라 변하는 찻잔의 표면을 응시하는 것이 감상의 방법이란다. 손바닥으로는 찻잔의 무게, 감촉을 느껴야 한다.
그 진심 속에 고려다완이 있다. 다도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 정도가 아니라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가진 예술품이다. 일본의 다인들은 오래전부터 “말로 표현하기 힘든 풍격”, “심오한 조형미”를 가졌다며 크게 사랑해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빼어난 예술성을 발견하고, 널리 즐겼던 그들에게 고려다완이 외국에서 수입한 문물이란 인식은 희박한 듯 보인다. 오히려 “일본인의 다완”이란 자부심이 또렷하다.
전시회에 출품된 고려다완은 4점이다. 전시실 가장 앞자리에 ‘아오이도(靑井戶) 찻잔 도키(土岐)이도’가 자리잡았다. ‘귀얄무늬 찻잔 무라쿠모(村雲)’, ‘도토야(魚屋) 찻잔 사와라비’가 뒤를 따른다. ‘호리미시마(彫三島) 찻잔 겐토(玄濤)’은 “일본이 주문해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찻잔”이라고 소개했다.
◆“무작위적이고 한없이 넓은 자태”
도쿄박물관 말고도 고려다완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여럿이다. 고토미술관은 소장품 중 하나인 ‘미노(美濃) 명(銘) 이도다완’을 “열손가락 안에 드는 명품”이라며 대표소장품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네즈미술관은 다음달 10일부터 고려다완을 포함해 “일본인이 애호해 온 조선도자기”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연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애정, 무엇에 마음을 사로잡힌 것일까.
“이도다완이 가진 무작위적이고 망양(茫洋·한없이 넓고 멀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음)한 자태는 무라타 쥬코(와비차의 창시자)가 말한 ‘히에카레타’ 운치에 통하고, 그것이 와비차(侘茶)의 절정기에 특히 찬사를 받은 것은 와비 미의식의 흐름을 짐작하는 데 있어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고려다완』, 중앙공론사, 1980)
히에카레타는 일본 다도가 지향하는 마음의 상태다. “수목이 시드는 초겨울의 차가운 공기 혹은 거기서 느끼는 맑고 늠름한 기운”이라고 한다. 와비는 일본 전통 미의식을 대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개념이다.
일본인들은 이도다완의 이런 품격이 규범을 초월한 데서 비롯된다고 평가한다. 도공이 수많은 경험을 통해 몸에 익혀 무심코 이뤄낸 경지다.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어서 현대 도예가들이 이도다완을 목표로 작업을 하지만 같은 품격을 재현하지는 못했다고 여긴다.
글·사진=강구열 도쿄 특파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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