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년간 계속된 ‘사칭 명예훼손’ 처벌 방법은 없었다…피해자 “너무 힘들어”
한 남성이 공영방송 KBS 기상 캐스터를 사칭해 입에 담기 힘든 심한 욕설을 하는 등 무려 수년간 ‘사칭 명예훼손’을 하고 다닌 것으로 18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드러났다.
피해자는 이설아 KBS 기상 캐스터다.
20일 세계일보 취재에 따르면 이씨는 2021년부터 남성 B씨의 집요한 타깃이 됐다.
B씨는 이씨의 열혈 팬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씨의 소셜미디어(SNS)에서 팬심을 자랑하기 바빴다. 부모를 통해 이씨의 사인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이씨는 책에 손수 메모와 사인을 남겨 B씨에게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일이 화근이 됐다는 게 이씨의 전언이다. 팬을 위한 선행이 B씨의 삐뚤어진 욕망을 자극했다는 전언이다.
B씨는 어느 순간부터 돌변해 이씨 SNS에 심한 말을 남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씨의 다른 팬이 남긴 글에도 심한 욕을 하는 등 도 넘는 악성 댓글로 이씨를 곤란하게 했다.
이씨는 이 같은 B씨의 행동을 참다못해 차단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문제는 손 쓸 수 없이 커졌다.
B씨는 이후 이씨를 사칭해 페이스북과 틱톡, 유튜브 등 각종 SNS에 사칭 계정을 만들어 마치 이씨인 것처럼 행동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러면서 앞서 하던 것처럼 심한 욕설을 했고, 항의하는 이에게 “사칭 아니다. 나 이설아다” 등 허위 사실까지 게재했다는 게 이씨의 전언이다.
결국 참다못한 이씨는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등으로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은 B씨가 전북에 사는 남성으로 확인하고 소환 조사를 벌였다.
SNS에서 당당했던 그는 경찰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됐다고 한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칭 계정을 만들고 악플을 다는 등 모두 자신이 한 일”이라고 털어놨다고 이씨는 전했다.
B씨의 자백으로 이씨는 그간 겪었던 정신적 피해를 지울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행복한 희망도 잠시,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사칭을 저질렀다고 자백까지 받았지만 이에 따른 명예훼손을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이에 B씨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일상으로 복귀했다.
경찰은 처벌 근거가 없자 B씨에게 잘못된 행위임을 엄중 경고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풀려난 B씨는 한동안 잠잠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세계일보와 만난 이씨는 “지난 3년간의 피해로 너무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그는 “저는 2022년부터 지금까지 각종 SNS에서 사칭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며 “피의자가 혐의 사실을 모두 인정했으나 피의자가 중증 지적 장애인이며 사칭에 의한 명예훼손에 대한 처벌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이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형사처벌을 부과하기는 어렵다는 결과를 통지받았는데, 정말 억울하고 답답하기 그지없다”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피의자의 사칭 행위가 법적 처벌이 되지 않는다는 무력감, 그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 그리고 이런 일이 앞으로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에 방송 활동에도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경찰조차 사칭 행위를 계속 알게 되면 스트레스를 받으니 모르는 척 살아가라고 하니 참담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제가 그동안 형사 고소 결과 통지를 알리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을 사칭해 인터넷에 비방·욕설 글을 게시하더라도 피해자에 대한 사실이 없으면 명예훼손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또 다른 사칭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며 “지금이라도 피의자가 저를 사칭하는 행위를 삼가주기를 간곡히 바라며, 지금이라도 사칭에 의한 명예훼손 관련 법안이 제대로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처럼 남을 사칭에 특정 개인의 명예를 훼손해도 범죄가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예컨대 누군가 특정인을 사칭해 욕설과 비방을 하고 다녀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것으로, 제2, 제3의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더는 ‘사칭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법 개정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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