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외면한 K-로맨스, 해외에서 열광하는 까닭
"전형적 K-로맨스 기대하는 해외 시장도 존재"
국내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으나 해외에서는 뜨거운 인기를 누린 K-콘텐츠들이 있다. 특히 로맨스 장르의 드라마들이 유의미한 결실을 얻었다.
글로벌 OTT 라쿠텐 비키가 발표한 인기 드라마 리스트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보인다. 라쿠텐 비키는 최근 2023년 미주, 유럽, 오세아니아 등을 포함한 해외 전역에서 서비스된 한국 드라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8개의 타이틀을 공개했다. 여기에는 '소용없어 거짓말' '완벽한 결혼의 정석' '오늘도 사랑스럽개' '반짝이는 워터멜론' '청춘월담' '진짜가 나타났다' '낮에 뜨는 달' '연인'이 속해 있었다. K-로맨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지점이다.
놀라운 점은 이중 많은 작품들이 한국에서는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소용없어 거짓말'은 3.4% 시청률로 종영했다. '완벽한 결혼의 정석'과 '오늘도 사랑스럽개'는 1, 2%대 시청률을 넘나들었다. 수차례 1%대 시청률을 보였던 '낮에 뜨는 달' 역시 소리소문 없이 종영을 알렸다.
물론 한국과 해외에서 동시에 뜨거운 인기를 누린 작품들도 있다. '연인'은 당초 20부작으로 계획됐으나 인기에 힘입어 1회 연장될 정도였다. 라쿠텐 비키에 따르면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은 최종회가 방영된 지난달 31일~지난 7일 기준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총 47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드라마는 한국에서도 9%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한국에서는 외면받았던 작품들이 어떻게 글로벌 OTT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걸까. 그 이유 중 하나는 K-로맨스의 브랜드화다. 많은 해외 시청자들이 한국 배우들이 출연하는 드라마 속 사랑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K-로맨스를 향한 신뢰감을 갖게 됐다. 반면 국내에서는 복수극 '모범택시' '더 글로리' 등 통쾌함을 선사한 작품, '닥터 차정숙'처럼 유난히 강렬한 공감을 이끌어낸 작품, '낭만닥터 김사부' 같이 온기를 전한 작품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로맨스물을 향한 대중의 선호가 크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 역시 "국내에서는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해도 해외에서는 그렇게 될 수 있는 형태의 로맨스도 있다. 국내에서는 멜로, 로맨스 계열이 퇴조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전형적인 로맨스 멜로, 로맨틱 코미디 계통의 드라마를 기대하는 해외의 한류 시장도 있다. 국내 반응과 별개로 기존 한류 팬들은 유사한 형식의 드라마에 반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로맨스 드라마가 미국의 좀비 드라마처럼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시장이 형성된 듯하다. 믿고 보고,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대하게 되는 거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에 더해 "취향이 다양하지 않나. 마이너 취향의 사람들이 선호할 콘텐츠라면 특정 국가에서는 반응이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서 나오는 반응을 합치면 거대해질 수 있다. 나라별로 (문화) 차이가 있다 보니 특정 국가에서 반응이 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배우들의 힘도 작품의 흥행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해외 팬미팅을 전석 매진시키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뜨거운 관심을 보여준 한국 배우들이 많은 상황이다. SNS 게시물에 외국어 댓글이 수없이 많이 달리는 연예인도 있다.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에도 배우들의 인기가 영향을 미쳤다. 라쿠텐 비키는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은 배인혁과 이세영, 두 배우의 인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드라마다. 배인혁은 '치얼업'과 '왜 오수재인가', 이세영은 '법대로 사랑하라'와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해 라쿠텐 비키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이 작품의 흥행 요인을 분석한 바 있다. 국내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작품들도 비슷한 맥락으로 출연자들이 해외에서 누리는 인기의 도움을 받았다.
정한별 기자 onestar10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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