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통에 넣고 몇 번 누르면 신기하게 올라오네…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4. 1. 2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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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11] 슉슉 누르면 빨아올리는 등유펌프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간장 츄루츄루 사용법. ① 펌프 위쪽 하얀색 마개를 잠그고 ② 기름통을 옮기고자 하는 용기보다 위쪽에 놓은 채로 ③ 빨간 펌프를 몇 차례 눌러주면 ④ 기름이 옮겨진다. ⑤ 하얀색 마개를 다시 열어주면 멈춘다. [사진 출처=SSG.COM]
명사. 1. 간장 츄루츄루(醤油チュルチュル) 2. 사이펀 펌프 3. 자바라 펌프, 오일 자바라 【예문】간장 츄루츄루의 펌프 부분을 몇 번 눌렀다 뗐다. 통에 담겼던 등유가 울컥거리며 석유풍로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흔히 ‘자바라 펌프’라고 알려진 이 물건의 정확한 명칭은 놀랍게도 ‘간장 츄루츄루(醤油チュルチュル)’이다. 일본인 발명가 닥터 나카마츠(ドクター中松)의 작명 센스가 폭발한 덕분. 펌프 아래쪽 관을 기름통 등에 삽입하고 펌프를 누르면 측면의 관으로 액체가 흘러 나와 다른 용기로 옮길 수 있다. 이때 원래 용기, 액체의 수면이 보다 높은 곳에 있다면 기압 차와 중력에 의해 액체가 계속 빨려 나가게 되는데 이런 현상을 사이펀(Siphon)이라고 하고, 간장 츄루츄루 역시 사이펀 원리를 이용한 물건이다.

자바라는 ‘뱀의 배 부분’을 뜻하는 일본어 じゃばら(蛇腹)에서 온 말이다. 뱀의 배처럼 주름진 형태의 물건을 총칭한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주름관’이란 우리말을 제시했지만, 아직은 자바라를 대체하지 못했다. 자바라 펌프는 이름은 간장 츄루츄루를 구성하는 흡입·배출관과 펌프가 아코디언처럼 주름진 형태 때문에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이펀 원리를 간단히 도식화 한 것. 간장 츄루츄루는 물론 양변기에서 하수구로 물이 밀려 나가는 것도 사이펀 원리가 적용된 물건들이다. [사진 출처=Tomia, 위키피디아]
닥터 나카마츠(본명 나카마츠 요시로 中松義朗·1928~)의 행적 또한 비범하다. 닥터나카마츠창조연구소(ドクター中松創研)의 대표이사이자 세계천재회의 전 의장인 그는 3800개가 넘는 발명품을 내놓고 도쿄 도지사·참의원 선거에 16차례나 도전한(그리고 모두 낙선한) 괴짜 발명가다.

그는 1942년 중학생 시절 큰 병에 있는 간장을 옮겨 담기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고안한 수동 펌프(그때 만든 이름이 ‘간장 츄루츄루’)를 5년 뒤 ‘사이펀’(サイフォン·사이펀 원리의 그 사이)이란 이름으로 실용신안에 출원, 등록했다.

이 밖에도 그는 자신이 발명한 스프링 신발(플라잉 슈즈)을 신고 선거 유세를 다닌다든지(낙선), 강력한 전파 신호로 유권자의 두뇌에 영향을 끼쳐 투표장에 들어서면 저절로 ‘닥터 나카마츠’를 쓰게 만드는 기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든지(물론 낙선), 80대의 나이에도 도지사의 격무를 견딜 수 있도록 근육 훈련을 통해 50t(㎏ 아님)을 들어올 수 있다든지(역시나 낙선), “북한의 미사일을 유턴시킬 수 있다”며 독자 개발한 미사일 방어체계 ‘닥터 나카마츠 디펜스’(DND)를 공개하는 등(물론 입증불가) 기행으로 유명해졌다. 그야말로 ‘일본의 허경영’인 셈.

자신이 발명한 점핑 신발을 신고 선거 유세를 다닌 ‘기인’ 닥터 나카마츠(왼쪽). 유쾌하다. 오른쪽 사진 역시 닥터 나카마츠가 점핑 신발을 시연하는 모습이다. 허경영 국가혁명당 명예 대표도 그렇고 괴짜들은 왜 다들 이렇게 공중 부양을 하고 싶은 걸까. [사진 출처=닥터 나카마츠]
그는 2005년 황당무계하고 웃긴 연구에 수여되는 이그노벨상도 받았다. 34년간 자신이 먹은 모든 음식을 촬영하고 그 내용을 기록해 음식이 뇌의 기능이나 신체 컨디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 그는 이그노벨상 수상 이후 인터뷰를 통해 “난 144세까지 살 것”이라며 자신의 건강을 자신했지만, 2014년 전립선암 말기 진단과 함께 2년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암 치료 로봇을 발명했다고 밝혔는데 이쯤 되니 그의 ‘발명(=허언)본능’이 두려워질 정도.

닥터 나카마츠는 예상을 깨고 지금도 건강하게 활동 중이다(!?). 2018년 도쿄에서 열린 ‘이그노벨상 세계전’ 전시회에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그는 식이요법과 혈액 연구를 통해 전립선암을 극복했다고 발표했다. 이때 “수명은 길게, 연설은 짧게”라는 명대사를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 시한부 선고 마저 ‘허언의 큰 그림’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대단하다.

그는 2023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발명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발명의 마음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발명을 하면 결과적으로 돈도 따라 오는 법입니다.”

추운 부엌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간장 츄루츄루를 발명했던 소년, 사랑의 마음이 발명의 원동력이라는 닥터 나카마츠의 진심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라, 이 남자 멋있을지도?

2018년 이그노벨상 관련 전시회가 참석한 닥터 나카마츠. [사진 출처=スポーツ報知 스포츠보고]
  • 다음 편 예고 : 마트 계산대에서 앞사람하고 구분하는 막대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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