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국보 530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림 안에서

한겨레 2024. 1. 2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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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신지은의 옛날 문화재를 보러 갔다
포라스 김 개인전 ‘국보’
문화재 가치는 ’사회적 선택’
다른 체제로 관리된 보물들
3m 패널 4개 그림으로 담아
리움미술관 소장 실물도 공개
갈라 포라스김의 ‘국보 530점’(2023). 포라스김·코먼웰스 앤 카운슬 제공

“어떤 유물이 국보가 되는가?” 학창 시절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해 배우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일었다. 문화재보호법에서는 가치가 높은 유형문화재를 심사해 ‘보물’로, 보물 중에서도 특히 오래되고 가치 있다고 인정하는 것은 ‘국보’로 지정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만든 솜씨나 역사적인 의미를 가리킨다. ‘국보는 가장 훌륭한 문화재’라는 오랜 인식은 박물관·미술관을 찾는 이들의 기대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시를 보러 갔는데 국보·보물 등 지정문화재가 많이 나와 있으면 알찬 전시를 잘 찾아왔다는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오동나무함 보관 상태 그대로

리움미술관 고미술 상설전시 사이에 자리 잡은 한국계 콜롬비아인 현대미술작가 갈라 포라스-김의 개인전 ‘국보’(3월31일까지)는 오늘날 전하는 수많은 유물들 가운데 한 나라의 보물(국보)로 꼽히는 존재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 전시를 대표하는 ‘국보 530점’은 너비 3m 패널 4개에 남한과 북한에서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 530점을 모아 그린 대작이다. 고인돌이나 사찰 건물 등 특정한 장소를 떠날 수 없는 문화재는 배경을 포함한 사진으로, 도자기·불상 등 박물관 소장품이 된 문화재는 배경을 제거한 모습으로 표현했다. 각각의 문화재는 실제 크기와 무관하게 그려져 있지만, 이미지를 진열한 틀에는 투시도법을 적용해 실제 눈높이에서 그림 속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물건이 빼곡하게 든 선반 같기도 하고, 이미지 파일을 모은 탐색기 화면 같기도 하다.

‘국보 530점’의 일부. 포라스김·코먼웰스 앤 카운슬 제공

갈라 포라스김의 작품이 관람객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가 유물을 오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국보·보물처럼 문화유산을 분류하는 기준과 유물을 보존하고 전시에서 연출하는 방식 등 다양한 사회문화적 요소는 우리 시선에 영향을 미친다. 국보라는 이름은 같지만, 사실은 분단 이후 각각 다른 제도 안에서 관리되어온 그림 속 문화재들을 들여다보고 나면 자연스레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유물은 어떻게 국보가 되는가?”

박물관 전시실이나 역사책 속에서 접하는 국보는 왠지 처음 만들어질 적부터 국보였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의 물건이 국보가 되는 과정은 어린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다. 현대에 와서 전문가들의 판단과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되는 과정은 사회적인 선택과 결정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국보라고 부르는 문화재들은 우리 사회가 문화재에 어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들이기도 하다.

이 전시에는 포라스김이 그림으로 그린 유물 중 리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10여점도 함께 공개됐는데 진열된 방식이 각기 달라 눈길을 끈다. ‘일제 강점기에 해외로 반출된 한국 유물 37점’ 그림과 함께 배치된 3점의 국보 중 온전히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고려 불화인 ‘아미타여래삼존도’뿐이다. 나머지 두점은 오동나무로 만든 보관함에 들어 있는 상태로 진열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인 ‘백지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은 미술관에 입수될 당시의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서, 김홍도의 ‘군선도’는 최근 전시를 마쳐 휴식기에 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실물이 아닌 나무 상자를 마주하게 되는 낯선 상황은 관람객들이 박물관·미술관의 역할을 뚜렷하게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막연히 문화재를 보관·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보존과 연구를 통해 유물이 국보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적극적인 행위가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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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의 탄생부터 전시까지

포라스김의 ‘청자 동채 표형 연화문 주자의 연출된 그림자’(2023)가 진열된 모습. 리움미술관 제공(사진 양이언)

‘청자 동채 표형 연화문 주자의 연출된 그림자’는 진열장 하나에 유물 하나를 진열해 돋보이게 하고, 여러개의 조명이 유물 뒤로 겹겹이 그림자를 드리우는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20년 전 리움미술관 개관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전시 연출 기법이다. 작품 제목 속의 국보 청자 대신 낚싯줄로 연결한 종잇조각이 자리한 진열장 앞에서, 관람객은 전시에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실제 유물뿐만이 아닌 섬세한 연출의 몫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어떤 틀 안에서 유물을 바라보는지, 그 틀을 한발짝 밖에서 바라보는 순간이다.

이렇게 전시는 실제 국보와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통해 국보란 것이 어떻게 탄생해서 관람객 앞에 도달하는지를 두루 비춘다. 이로써 사람들이 평소에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문화재를 보는 전시라는 일 자체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전시에서 전달하는 이야기나 의미만을 기억하던 관람객에겐, 알고는 있었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 전달 과정과 수단을 자세히 바라보게 되는 기회가 된다. 전시에 나온 유물을 보고 왔다는 사실만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전시라는 계기와 전시 장소, 진열과 설명 등의 방식이 제시해주는 정보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전시는 샤프의 ‘연극이 끝난 후’라는 오래된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객석에 앉아 연극이 끝난 텅 빈 무대를 둘러보듯, 먼 옛날의 삶과 이야기를 훌쩍 눈앞으로 끌어당겨오는 환상에서 아름다운 불빛과 아우라를 한겹 한겹 벗겨내고 남은 바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연극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가 끝난 후에도 객석에 머물다 가듯, 문화재 전시의 맨얼굴을 마주 보게 하는 이 전시도 옛날 문화재를 보러 가는 이유가 결국 깊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문화재 칼럼니스트

박물관과 미술관의 문화재 전시나 전통문화를 주제로 한 전시를 소개합니다. 우리 문화재를 사회 이슈나 일상과 연결하여 바라보며, 보도자료에는 나오지 않는 관람 포인트를 짚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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