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길 위에 김대중> 민환기 감독 "민주주의를 위해 거쳐온 DJ의 시간에 주목해주길"
[인터뷰] <길 위에 김대중> 민환기 감독
지난 10일, DJ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이 개봉했습니다.
청년 사업가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계에 입문해 1987년 대선 후보로 나서기까지의 여정이 담겼는데요.
총선을 앞두고 정쟁과 혐오정치로 어지운 시국.
늘 길 위에서 시민들과 소통하며 살아있는 정치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 <길 위에 김대중>을 제작한 민환기 감독은 "한 정치인이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시간들을 거쳐왔는지, 또 그 시간 속에서 한국의 평범한 수많은 국민들이 어떻게 변화해가는 지를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 <길 위에 김대중>, 극찬이 이어지고 있는데.
"감사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한 것 같습니다. 2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가는 것 자체도 쉽지가 않을 텐데, 관객분들이 한국 근현대사라는 긴 역사의 흐름과 시간을 보는 것에 생각보다 더 흥미를 느끼는 것 같고, 또 영화 속에서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계속 함께하는 김대중이라는 주인공에 더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또 영화가 끝나면 각자의 생각으로 그 긴 시간과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한 번씩 정리하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 감독으로서는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서울의 봄' 흥행에 이어 2030의 반응도 뜨거운데. 젊은 관객들과의 대화에서 기억에 남는 목소리가 있다면.
"영화를 본 젊은 층들은 이 영화를 현재의 시대와 겹쳐서 보기도 하면서 분노하기도 하고, 또 이 시대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의 인물 자체에 대한 경이를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가 각자 어떻게 살아가는 게 바람직 한 건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 건지를 물어보곤 합니다. 물론 제가 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확실히 젊은 관객의 경우 현실 정치가 반복해오는 잦은 정쟁에 피곤함을 많이 느끼기도 하고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회의감을 많이 느끼는 세대라고 생각이 드는데. 그런 이유인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현실에서의 어떤 답답함이 생기기도 하고, 삶이나 사회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나 고민 같은 게 실제로 많이 생기시는 것 같아요. 결코 가벼운 질문이 아니어서 감독으로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그런 질문이 생기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DJ의 삶 자체가 대한민국의 현대사이다 보니 부담도 적지 않았을 텐데, 영화 제작 당시 가장 고심했던 부분이 있다면.
"긴 시간을 압축하는 것에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김대중이라는 인물 자체가 워낙 고난을 많이 겪은 인물이어서 이런 험난했던 고비들을 영화 속에 다 담았을 경우, 오히려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 멀리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김대중이라는 특출한 정치인의 이야기는 조금 줄이면서, 대신 그를 지지했던 보통 사람들과 그의 관계에 조명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에게 희망과 동력이 되었는지 그려보려고 했습니다."
△ DJ의 삶을 스크린으로 옮기기 위해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자료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아카이브 자체는 김대중 평화센터 측에서 많은 양을 제공해주신 덕분에 부족함 없이 볼 수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본인의 인터뷰만 40회차가 넘고, 그 주변의 측근과 당시의 재야인사, 정치인, 가족 등 수많은 분들의 인터뷰가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많아져서 선택에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덕분에 흔히 볼 수 없는 작은 일화나 사건들도 많이 접할 수 있어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면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 자료 또한 예전 자료가 가지고 있는 화질의 결함 같은 것들이 자료를 선택하는데 제약이 좀 있었지만, 오히려 관객분들이 자료 자체가 지닌 희소성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양을 검토하는 게 물리적으론 힘들긴 했지만 연출하는 입장에서 그만큼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건 작업하면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 관객들은 DJ가 사형선고를 받고 옥중에서 아내 이희호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을 명장면으로 꼽던데. 민 감독이 생각하는 명장면이 있다면.
"1987년에 광주를 방문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제가 김대중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 한 번 알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줄 만큼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김대중이라는 사람의 인기가 저렇게 엄청났다는 것에 있어서의 충격이 아니라, 광주에 도착한 김대중을 바라보는 광주 사람들의 표정이나 눈빛 같은 것들이 크게 인상 깊었습니다. 한 명의 정치인을 각자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간절함이 광주시민들의 얼굴에서 보였고, 또 그렇게 자신을 환영해주는 광주시민들을 바라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표정의 변화도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에는 놀라고, 반가워하다가 그것이 슬픔으로 변하고 또 마지막에 가서는 어떤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과 결심을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 김대중이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면의 감정들과 함께 정치인으로서의 면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 영화엔 담지 못했지만 의미있다고 생각한 자료가 있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죄로 청주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에 찍힌 교도소 장면 중, 미래의 개인 컴퓨터 시대에 대한 이야기와 또 그로 인해 변화할 노동 환경에 대해 예언하듯 하는 긴 장면이 있습니다. 수사 주무관과의 면담 중에서 마치 강연하듯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주무관은 이 얘기를 거의 믿지 않아요. 당시에 컴퓨터나 인공지능(AI) 같은 제대로 된 단어조차 없던 시절에 그런 이야기를 하신 거니까요. 이 영상은 개인적으로 신기하고 귀하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감옥에서의 긴 고난의 시간을 집중해서 다루는 것에 있어서 어떤 장면과 이야기를 넣을지를 선택해야 했고, 결국 전체적인 장면에 있어 적절하지 않아서 빼게 됐습니다."
△ <길 위에 김대중>을 더 풍성하게 보기 위한 팁이 있다면.
"첫 관람 때는 상대적으로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겪어내야 했던 아픔과 상처에 몰입해서 감정적으로 많이 우는 분들이 계신 것 같습니다. N차 관람을 하게 된다면, 정치인으로서 김대중이 했던 선택들을 중심으로 보게 된다면 아마도 그의 행동이나 연설, 말들이 처음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더 풍성하게 느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길 위에 김대중>이 어떻게 비춰지길 바라는지.
"영화를 실제로 보고 오신 관객분들은 공통적으로 이 영화가 정치적인 영화가 아닌 역사 영화라는 면에 더 동의를 하게 되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작업하면서도 어떤 특정 정치적 편향성을 둔 채로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한 정치인이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시간들을 거쳐왔는지, 또 그 시간 속에서 한국의 평범한 수많은 국민들이 어떻게 변화해가는 지를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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