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가 된 현종? KBS '고려거란전쟁' 혹평 쏟아지는 이유

금준경 기자 2024. 1. 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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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출 등 진일보한 사극 보여준 '고려거란전쟁'
부족한 스케일·단순 선악구도·원작과 역사 무시한 흐름에 부정적 평가 커져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 KBS '고려거란전쟁' 포스터

32부작 대하사극 KBS '고려거란전쟁'이 지난 주 18회를 방영하면서 반환점을 돌았다. 개선된 고증과 뛰어난 연출, 역사 속 숨은 영웅 양규 장군 조명 등 여러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열성 팬들조차도 아쉽다는 반응을 나타내는 대목이 적지 않다.

'고려궐안전쟁' '서북면산악회' 수식어 붙어

'고려거란전쟁'의 1화 첫 장면은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귀주대첩이었다. 영화와 비교하면 아쉽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높아진 전투고증 수준과 함께 대규모 전투씬이 이어지면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후 전투는 대부분 생략되거나 작은 스케일로 그려지면서 몰입감을 떨어뜨렸다. KBS가 처한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도 '전쟁'을 소재로 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KBS 스스로 스케일을 강조했다는 점에선 실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 양규 장군이 기습을 하는 모습. '고려거란전쟁' 캡처.

특히 삼수채 전투는 거란 기병의 고려 검차진 돌파 과정이 생략되면서 강조가 생포되는 개연성이 사라지게 됐다. 퇴각하는 거란군을 맞아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가 6차례 기습을 벌여 적을 섬멸하고 포로 3만 명을 구해내는 전투에선 고작 수십명만 보였다. 양규의 최후 전투에선 갑옷이 깨지는 장면 등 연출력이 돋보였기에 부족한 스케일이 더욱 아쉬움을 샀다.

이 장면을 다룬 '고려거란전쟁' 유튜브 콘텐츠 댓글에는 “제작비 부족이 아쉬운 드라마” “연출하는 거 보면 능력 있는 것 같은데 제작비가 아쉽다” “스케일은 소꿉장난 같은데 연기력이랑 연출로 캐리중”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서북면 산악회', '고려궐안전쟁'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개선됐지만 여전히 포악하고 단순한 적

역사학자인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고려거란전쟁' 방영 전 제작한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적도 나름대로 교육 받았고 전략도 있고 큰 그림도 있는 상태에서 고려에 쳐들어 온 거다. 거란 성종을 유능한 황제로 그리면 좋겠다”며 “전쟁을 우리편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 시대 고려와 거란의 관계를 이해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하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희망을 품어본다”고 했다.

▲ 거란 성종 야율융서. 사진='고려거란전쟁' 캡처

'고려거란전쟁'의 악역 묘사는 전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과거 사극이 보여준 고정관념을 답습한 대목도 적지 않다.

KBS '천추태후'와 달리 거란을 야만족처럼 그리는 장면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한족 복식과 전통 복식이 혼재된 거란 조정의 모습, 현명하게 그려지는 소배압 인물 묘사 등은 전보다 나아졌다.

그러나 짐승이 연상될 정도로 야만스럽고 기괴한 소리를 내는 거란 병사들의 모습에선 여전히 선과 악, 문명과 야만의 구도가 남아 있었다. 거란 성종 야율융서의 인물 묘사 역시 강조를 직접 때려 죽일 정도로 잔인하고, 강감찬의 계략에 늘 휘둘리며, 쉽게 분노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거란에 투항한 이현운이 대놓고 강감찬의 아내를 붙잡아 거란의 재상이 되겠다며 소리치다가 죽는 장면 역시 인물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묘사한 대목 중 하나다.

역사적 사실과 맥락을 지나치게 비껴나가

대하사극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되 '극'의 요소를 더한 창작물이다. KBS는 스스로 대하사극의 '공익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될 정도로 역사적 기반에 무게를 둔다는 점을 전제한 것이다.

당대 사료가 부족하다고 해도 '고려거란전쟁'의 일부 인물과 사건 묘사는 당시 상황을 지나치게 비껴가고 개연성도 떨어져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는 작가 교체 이후 전투장면 이외엔 원작자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역사적 맥락을 비껴가지 않은 원작과 비교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강감찬의 역할과 거란의 2차 침공 이후 현종의 행보다. 드라마에서 강감찬은 2차 침공 당시 거란에 사신으로 가 목숨을 걸고, 왕을 설득해 피신시키고, 왕으로 위장해 적을 기만하고, 갑자기 서경에 나타나 거란의 거짓정보 유포를 막아내고, 살점이 뜯겨나가는 모진 고문까지 당한다. 거란 성종 야율융서가 강감찬 한 명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는 대사를 직접적으로 내뱉기도 한다.

그러나 2차 침공 당시 강감찬은 현종이 개경을 떠나 피신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외엔 역사적 기록이 없다. 강감찬은 3차 침공 때 활약하는 인물이다. 강감찬의 역할을 지나치게 키우면서 목숨을 걸고 적을 기만한 하공진의 비중이 역사와 원작에 비해 대폭 축소된다. 이 드라마와 원작 제목이 '강감찬'이 아닌 '고려거란전쟁'인 것은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허구로 더한 내용이 탁월하고 수준 높은 외교전을 그려냈는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따라 붙는다.

▲ 현종의 모습. 사진=
▲ KBS '고려거란전쟁' 유튜브 콘텐츠에 달린 댓글들

거란의 2차 침공 이후 내용은 논란이 불거질 정도다. 역사에는 별다른 반발이 언급되지 않은 지방제도 정비 과정이 극한 대립으로 묘사돼 극의 핵심 줄거리로 떠올랐다. 실제론 지방호족은 물론 절도사의 횡포에도 당했던 현종이 드라마에선 절도사와 연대해 지방호족과 극한 대립을 한다. 현종이 분노하며 말을 달리다 낙마하는 장면은 황당함을 줄 정도다.

드라마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지만 설득력 없이 소리만 지르는 현종에게 '금쪽이'라는 별칭이 붙은 점은 수준 높은 정치극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원작자가 드라마를 보고선 “한국 역사상 가장 명군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고 평가한 대목 역시 곱씹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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