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반도체 갑? 생각 버려” 곳곳서 쏟아진 경고…올해 ‘초격차’ 생사 가른다[김민지의 칩만사!]

2024. 1. 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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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초격차 어디갔나” 쓴소리
지난해 SK에 HBM 밀려…매출 1위도 인텔에 내줘
AI 광풍 본격 열리는 올해
반도체 1위 생사 기로 놓인 삼성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삼성전자가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하는 것은, 적어도 AI 반도체에 대해서는 ‘갑’의 위치를 다 잊어버리고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자신의 단점과 강점을 냉철하게 정리해 쳐낼 것은 쳐내고, ‘갑’의 의식에 푹 젖어 있던 임직원들 정신 교육을 다시 시켜야 할 것이다.”(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

삼성전자 반도체를 향한 외부 전문가들의 쓴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성공 전략으로 꼽히던 ‘초격차’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지난해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 선두를 ‘만년 2위’ SK하이닉스에 뺏긴 데 이어, 인텔에게 연간 반도체 매출 1위 자리도 내주고 말았습니다.

10년 이상 ‘메모리 1위’만 하던 삼성전자에 지난해의 실패들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조직 내부 사기가 뚝 떨어진 건 물론, 임원들도 ‘정신 재무장’을 하며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올해 당장, 삼성전자가 근본적인 변화에 착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현재의 위치를 냉정하게 파악하고 오너의 신속한 결단과 투자, 임직원들의 정신 재교육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오는 26일 이재용 회장의 1심 선고 공판 결과에 따라, 오너의 운신의 폭도 달라질 전망입니다. 총체적 위기를 맞은 삼성이 올해 생사의 기로에서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칩만사에서 알아보겠습니다.

“삼성, ‘세계 1등’ 안주하다 위기…‘을’ 위치서 다시 시작해야”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올리며 삼성전자 반도체를 향한 경고를 날렸습니다.

삼성전자 HBM3E D램. [삼성전자 제공]

권 교수는 “메모리도 권불십년이고, AI 반도체도 권불십년일 것이다. 누가 승자가 돼도 이상하지 않은 시장이고, 10년 후에 지금 유명 회사들이 일본 반도체 회사 꼴이 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며 “과거의 교훈도 있고, 최근에 직접 겪은 실패라는 데이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배우는 것이 없다면 패자가 돼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삼성전자가 HBM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 밀리게 된 것을 ‘세계 1등이라는 포지션이 주는 안정감’ 때문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D램에서 삼성 대비 후발 주자이자 2인자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삼성이 잘 안 하는 영역에 대한 탐색을 할 수 있었다고 봤습니다. 때문에 10년 전부터 불확실하던 HBM 시장을 겨냥해 기존 물량을 희생해 가며 HBM 개발에 매진했고, 지난해 시작된 AI 광풍이 엔비디아 맞춤형 최적화와 맞물리며 엄청난 수혜를 입었다는 겁니다.

권 교수는 삼성전자가 HBM 2인자 자리를 미국 마이크론에게 빼앗길 수 있다는 경고도 했습니다.

그는 “현재로서는 삼성전자보다는 오히려 업계 만년 3위 마이크론이 엔비디아의 세컨드 벤더(보조 공급사) 자리를 물려받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그 이유로 대만에 있는 팹(반도체 생산시설)의 공정 기술을 꼽았습니다. 또한, “엔비디아도 어쨌든 미국 기업이므로 마이크론과 거래하게 되면 미국 정부로부터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며 “마이크론의 품질이 괜찮다면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이제 품질이 여전히 의문인 삼성전자 HBM 보다는 마이크론 제품을 쓰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권 교수는 삼성전자가 ‘갑의 위치’를 잊어버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적어도 AI 반도체에서만큼은 철저하게 을의 위치에서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겁니다. 패키징을 소홀히 하던 습관을 버리고, HBM의 설계 문법을 다양화해 새로운 파트너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등 여러 변화가 필요하다고도 했습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 제공]

또한 “여전히 AI를 소프트웨어로만 보던 옛 시절의 인물들은 정신교육을 정신 개조하다시피 다시 시켜야 할 것이고, 연산 과정에서 무엇이 시간을 잡아먹고 있는 지를 숫자 단위로 파악하지 못하는 엔지니어들 역시 재교육시켜야 할 것”이라며 “패키징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필요하다면 더 많은 업체를 인수해야 할 것이고, ‘메모리 파운드리’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동탄 선언’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인텔에 뺏긴 매출 1위…“올해 달라진 모습 보여줘야” 압박감

오랫동안 유지되던 삼성전자의 반도체 ‘초격차’는 지난해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지난해 인텔의 반도체 매출은 487억달러, 삼성은 399억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인텔은 2년만에 다시 삼성을 제치고 반도체 매출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물론,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불황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HBM 시장에서 한번 삐끗하고, 지금까지 엔비디아에 HBM3, HBM3E 납품 통로를 뚫지 못한 것은 예전의 삼성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큽니다.

삼성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를 겪으면서 DS부문도 확실히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내부에서도 위기의식이 팽배해지고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며 “올해 HBM을 포함한 차세대 제품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내 제조라인 모습[삼성전자 영상 캡처]

최근 DS부문 임원들은 긴급임원회의를 열고 올해 연봉동결을 결정했습니다. 윗급부터 솔선수범해 ‘정신 재무장’을 하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올해 삼성전자가 꼭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본격적으로 ‘AI 반도체 붐’이 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자만이 가진 차별화 포인트를 내세워 한발 먼저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권 교수는 “삼성전자의 가장 큰 장점은 파운드리와 메모리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모바일이든, 랩탑이든, 가전이든, 전장이든, 애플리케이션 다변화에 대해 다양한 소비자 요구 조건을 테스트할 수 있는 플랫폼 자체가 많다”고 꼽았습니다.

삼성전자도 이 부분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진만 삼성전자 DS부문 미주총괄(DSA) 부사장은 지난 ‘CES 2024’에서 기자들과 만나 “고성능 컴퓨팅 생성형 AI 시대에 삼성전자가 정말 파운드리와 메모리의 융합을 통해 큰 강자가 되지 않을까 자신하고 있다”며 “올해 메모리와 파운드리의 시너지가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시너지의 파급력은 향후 삼성전자만의 강점을 보여줄 수 있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면 드러날 것”이라며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융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곳은 삼성전자밖에 없다고 여러 기업 CEO들이 평가한다”고 했습니다.

“PIM·CXL는 우리가 선도”…‘초격차’ 투자 위한 JY 재판도 초관심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 개발한 'CXL 2.0 D램'[삼성전자 제공]

‘제2의 HBM’ 시장으로 꼽히는 차세대 먹거리에서 승기를 잡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표적으로, CXL(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이 반도체 ‘초격차’를 가를 승부처로 여겨집니다. CXL은 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하나로 통합해 ‘확장성’을 무기로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이는 기술입니다. 서버 구조를 바꾸지 않고, HBM보다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메모리 용량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CXL 2.0 규격에 맞는 CPU가 없었는데 올해 인텔이 이를 지원하는 CPU 5세대 ‘제온’ 프로세서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 CXL 기반 D램 기술 개발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에 큰 수혜가 예상됩니다.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도 각광 받습니다. 메모리 내에서 자체적으로 데이터 연산 기능을 처리할 수 있는 차세대 반도체입니다. 전력 효율성을 높이는 데 탁월해 온디바이스 AI에 활발히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는 HBM-PIM, LPDDR(저전력 더블데이터레이트)-PIM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이재용 회장 [삼성전자 제공]

오는 26일 열리는 이재용 회장의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1심 선고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이 회장은 햇수로만 9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을 잡혀 있습니다. 최소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사업에서는 총수의 신속한 결단과 판단이 중요합니다. 선고 결과에 따라 운신의 폭도 달라질 전망이어서, 반도체 사업 로드맵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입니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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