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겐 삶의 버팀목이 되어준 단어가 있나요?”
밀리언셀러 ‘언어의 온도’와 ‘말의 품격’ 등으로 두터운 팬층을 지닌 이기주 작가가 신작을 냈다. 새 산문집의 제목은 ‘보편의 단어’.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평범한 단어들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사랑과 미움, 행복과 불행, 희망과 후회, 생명과 죽음 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최근 서면으로 만난 이 작가는 "이번 신간은 ‘일상 산책’의 결과물"이라며 "‘보편의 단어’에 깃든 활자의 길을 거니는 동안 세상살이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마음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아래는 이 작가와의 일문일답.
―오랜만의 신간입니다.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면서 글감을 끌어모으며 지냈습니다. 전 발품을 팔아 다양한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글감과 문장을 수집하는 편입니다. 평일 오후엔 한 두 시간 정도 서점을 배회하다가 이거다 싶은 책을 집어 들어 무작정 읽습니다. 그런 다음 서점 주변을 산책하면서 행인을 관찰하거나 일상의 풍경을 새롭게 들여다봅니다. 그러다 보면 머릿속 모니터에 이런저런 문장이 새겨집니다. 그걸 재빨리 낚아채 메모지에 옮기거나 노트북에 밀어넣곤 하죠. 그렇게 바지런히 끌어모은 생각과 감정을 ‘보편의 단어’에 담아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신간은 ‘일상 산책’의 결과물입니다."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 에 이어 새 책의 제목은 ‘보편의 단어’입니다. 말과 글, 단어에 천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귀고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컷 듣고 싶다는 뜻이죠. 인간은 귀가 고픈 존재입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듯 남의 말로 귀를 채우며 살아갑니다. 때론 타인이 던진 뾰족한 단어 하나 때문에 상념에 잠기기도 하고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기도 합니다. 다만 타인이 쏟아낸 비루한 언어에 휩쓸려 기우뚱대는 마음을 다시 붙잡아주는 것 역시 또 다른 타인의 언어입니다. 때론 칼이 되기도 하고 때론 꽃이 되기도 하는 말과 글, 거기에 깃든 이중성과 복잡성은 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그 호기심을 좇는 과정에서 느끼고 깨달은 것을 꾸준히 문장으로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책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보편의 단어가 가진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단어가 갖는 힘은 무엇일까요.
"사실 말이라는 건, 폐에서 올라온 공기가 목구멍과 혀끝을 따라 걷다가 입술이 오므라들고 닫히는 사이를 틈타 입술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입니다. 애당초 우리 안에서 태어나는 것이죠. 따라서 그 중 일부는 입술에 흔적을 남기거나 마음에 쌓이고 머리에 각인되면서, 우리의 삶과 한데 포개지기 마련입니다. 삶과 단어 사이에 일종의 밀착성이 생겨난다고 할까요. 이는 우리가 삶의 무게에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순간 마음을 지탱하는 버팀목으로 작용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린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평소 어떤 단어를 자주 사용하나요.
"전 일상에서 ‘결’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나름의 결을 가지고 있잖아요. 어쩌면 살아가는 일은 자신의 결을 가다듬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 더 꼽으라면, ‘숲’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 중엔 유독 아름다운 단어가 많은데요. 숨결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특히 단음절 단어 숲이 그렇죠. 숲에선 바람 소리가 들린다고 할까요. ‘숲~’ 하고 소리를 내면 느껴지는 잔류감 같은 것이 마음이 듭니다. 무엇보다 숲을 읽거나 발음하면 숲길을 걷고 있는 상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이번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가 되면 좋을까요.
"여러모로 소란스러운 세상입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이 우릴 가만히 두지 않죠. 도둑이 침입해 물건을 뒤지듯,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불협화음이 우리 마음을 틈입해 리듬을 헝클어놓습니다. 각자의 리듬을 되찾고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때론 마음의 속도를 늦추거나 나만의 속도로 세상에 천천히 반응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보편의 단어’에 깃든 활자의 길을 거니는 동안 책의 낱장을 하나하나 넘기면서 세상살이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마음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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