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 만족해요, 국적: ○○○” 각서가 벽에 나부끼지만…
겨울철 이주노동자 숙소 르포
농장에 딸린 불법숙소, 비좁고 동사·화재 위험 있지만 20만원 이상 떼어가
임차농 고용주, 건축물 함부로 못 짓고 숙소 제공 의무도 없는 현실적 허점
2020년 12월 속헹 사망 뒤 빌라 임대·지자체 기숙사 건립 등 변화 조짐도
지난 16일, 경기 포천시의 아침 최저 기온은 영하 7도까지 떨어졌다. 시설채소 농장이 밀집한 가산면의 들판은 한낮에도 바람 끝이 매서워 훨씬 춥게 느껴졌다. 한겨레는 포천 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의 안내로 한국 정부의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로 취업한 이주노동자들의 숙소 실태를 살펴봤다.
월급 130만원, 비닐하우스 숙소 25만원
오후 3시30분께, 타이 출신의 한 노동자가 비닐하우스들의 출입구 위쪽에 말아 올린 방한용 천을 풀어 내리고 문을 닫고 있었다. “날씨 추워요. 지금 문 닫아(야 해)요.” 혹한기에는 작물의 냉해를 막기 위해 실내 작업은 오후 4시까지만 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일이 끝난 건 아니다. “친구(동료 이주노동자)한테 가서 (수확한) 채소를 박스에 다 담아(야 해)요.” 그는 평소 농약 살포, 채소 수확, 트랙터와 지게차 운전, 비닐하우스 시설 정비까지 온갖 일을 한다고 했다. 월급은 130만원. 법정 최저임금(월 206만원)에도 한참 못 미친다. 겨울에는 일이 적다는 이유로 월급을 깎는 게 관행이다. 그는 농장의 ‘비닐하우스 기숙사’에 산다. 비닐하우스 겉에 검정 차양막을 씌우고 안에는 컨테이너나 조립식 패널에 좁다란 방들을 만들었다. 화장실은 비닐하우스 바깥의 조립식 간이화장실을 쓴다. 형편없는 불법 가건물이지만 기숙사 비용으로 매달 25만원을 낸다.
캄보디아 출신 뚜잇(가명)도 비닐하우스 숙소의 2평(약 6.6㎡) 남짓한 좁은 방에 산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방바닥에 냉기가 흘렀다. 난방시설은 벽걸이형 전기 히터 하나뿐인데, 화재 위험 탓에 밤새 켜둘 수도 없다. 새벽에는 싸늘한 웃풍 탓에 너무 춥다고 했다. 주방이 따로 없어, 방문 바깥 수도꼭지 앞에 쪼그려 앉아 맨바닥에서 하루 세끼 음식을 만들고 찬물로 설거지를 한다. 수도가 얼지 않도록 방문 바깥에도 전기 히터를 켜놨다. 한파가 닥치면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놓기도 한다. 수도 아래쪽 바닥엔 실내인데도 얼음이 얼어붙었다. 화장실은 옆방 동료의 방에 딸린 간이화장실을 함께 사용한다. 한달에 이틀 쉬고 일하는 월급이 200만원 안팎, 거기서 기숙사비 20만원을 뗀다.
농업 이주노동자 대다수는 여전히 이런 비닐하우스 가건물에 산다. 농지법과 건축법을 어긴 불법 시설이다. 농지에는 정화조나 하수 시설을 설치할 수 없어, 밭 옆에 나무나 철골로 얼기설기 뼈대를 만들고 부직포 따위로 사방을 가린 재래식 화장실도 곳곳에 있었다. 밤중에 화장실 가기가 꺼려질 정도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컴컴한 재래식 화장실은 최악이다.
‘비닐하우스 만족한다’는 각서
올해는 2004년 한국 정부가 고용허가제를 실시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앞서 2020년 12월20일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선 체류 기한 만료를 앞두고 귀국 항공권까지 예매해놨던 캄보디아 출신 여성 노동자 속헹이 갑자기 닥친 한파를 이기지 못하고 싸늘히 숨졌다. 사건이 국내외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파장이 커졌다. 고용노동부는 채 한달이 되기도 전인 2021년 1월 초 ‘고용허가제 외국인 근로자 주거환경 개선 지침’을 내놨다.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주에게는 신규 고용 허가를 불허하고, 그런 곳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희망할 경우 자유롭게 사업장(일터) 변경을 허용”한다는 게 뼈대다. 주거 환경 실태를 점검해 ‘지침’을 위반한 사업주에게 ‘시정 명령’을 하고, 시정하지 않을 경우 고용 허가를 취소하겠다고도 했다. 취소 건수는 집계되지 않았다. 그 넉달 전인 8월에 고용노동부가 7천여명의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실시한 주거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의 99.1%가 사업주가 제공하는 숙소를 이용 중이었고, 그중 74%가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비닐하우스 기숙사 등 가설건축물에서 살고 있었다.
농장주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도시의 주거지역에 근접한 중소기업 공장들과 달리, 농축산업 사업장은 근린생활지역과 떨어진 들판에 있다. 농장은 여름에는 더위를 피해 이른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겨울에는 비닐하우스 동파를 막기 위해 밤에 온도 조절을 해야 하는 등 가욋일이 많다. 그런데 농지에는 농업 종사자가 직접 거주하는 농가주택 말고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기숙사를 지어주자니 돈이 많이 들고, 그렇다고 농장에서 먼 곳에 숙소를 얻어주면 퇴근한 노동자를 다시 불러 일을 시키기도 어렵다. 대다수 농축산업 사업자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농장에 딸린 가건물 숙소에 거주하기를 원하는 이유다.
김달성 목사는 불법 기숙사 제공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 이유로 법과 제도의 허점을 꼽았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기숙사를 제공할 의무가 없고, 제공할 경우 유형만 표시하면 됩니다. 그런데 많은 농장주가 임차농들이어서 남의 땅에 함부로 시설물을 지을 수 없는데다, 토지 임대자가 동의한다 해도 자기 돈을 들여 투자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또 농장주가 노동자들을 항상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일을 시키려다 보니 (그들이) 농장에 기거하기를 원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근로기준법 63조는 농림·축산·수산업 분야를 근로시간과 휴게·휴일에 관한 규정의 예외로 지정했는데, 사업주들이 그걸 악용하기 때문에 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한겨레21은 2022년 12월에도 포천시 가산면 농장들의 숙소 실태를 보도한 바 있다. 이번에 다시 찾아간 그곳에는 불과 1년여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눈에 띄었다. 비닐하우스 기숙사들이 폐쇄돼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거기 살던 노동자들은 고용주들이 마련해준 새로운 숙소로 옮겨갔다. 2022년 여름 한국에 처음 들어온 네팔 출신 여성 노동자 샤르마(가명)는 운이 좋았다. 농장주가 여성 노동자 11명에게 방 세칸에 세면장·화장실·주방이 딸린 연립주택(빌라) 2채를 임차해 유료 숙소로 제공한 것이다. 1채당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60만원을 5~6명이 나눠 낸다. 비닐하우스 기숙사보다 훨씬 저렴한데다, 농장에서 걸어서 약 10분 거리의 주택가에 위치해 출퇴근도 편하다.
포천시의 ㅁ부동산중개업소 대표는 “1~2년 전쯤부터 원룸이나 빌라 기숙사를 구하는 농장주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이제는 합법 숙소가 아니면 외국인(노동자)을 못 받으니까. 집을 사기도 하고 월세를 구하기도 하는데, 방 3개짜리 빌리는 경우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 정도입니다. 지금은 (의향이 있는 농장주들은) 거의 다 구한 상태라고 보면 돼요.”
그러나 불법 가건물 기숙사에 대한 비판 여론과 정부의 규제가 심해지자 사업자들은 편법을 쓰기도 한다. 고용 허가를 신청할 때 숙소를 ‘미제공’으로 표시한 뒤, 정작 외국인 노동자를 받으면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숙소를 제공하고 ‘여기서 살든지, 알아서 구하든지’ 하는 식이다. 한 비닐하우스 안 조립식 패널 겉벽에는 이주노동자 스스로 비닐하우스 숙소를 원한다는 ‘각서’가 한국말과 출신국 언어로 붙어 있었다. “저는 지금 농막 기숙사에 지내는 것에 불편함이 없고 충분히 만족합니다. (…) 앞으로도 농막에서 거주할 수 있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국적: ○○○, 성명: ○○○○○○○. 위 서명은 외국인 근로자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하여 (…), 추후 숙소 문제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이 노동자의 진짜 ‘자유의사’는 확인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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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기숙사’ 이유 사업장 변경 허용도
불법 기숙사를 이유로 사업장 변경이 허용된 사례도 제법 나오고 있다. 고용노동부 집계를 보면, 2021년 40건, 2022년 44건, 2023년 8월까지 31건이다. 방글라데시 출신 압둘(가명)은 직물공장에서 일하다가 외국계 알루미늄 창호 공장으로 옮겼다. 공장 바로 옆에 식당을 갖춘 현대식 직원 기숙사에서 이주 노동자 20여명이 함께 생활한다. “퍼스트 콤파니(첫번째 회사)는 한국 사람(관리자)들이 배드 토킹(욕설) 많이 했어요. 월급 180만원인데 돈 많이 잘랐어요(월급에서 공제했어요). 방값 20만원, 가스비 3만원, 와이파이 2만원…. 지금 회사는 기숙사 너무 좋고 기숙사비도 없어요. 식당에서 밥(점심) 먹으면 10만원, 안 먹으면 20만원(을 식대로) 줘요.”
포천시 영중면 야산 자락의 석재공장에서 일했던 샤리프(가명)도 지난해 7월 김포의 알루미늄 창호 공장으로 옮겼다. 그 한달 전에 한겨레가 토요판 커버스토리에 그의 사연을 보도(‘시민권에 앞선 인권…이주노동자 밥상 코이노니아’)했을 때만 해도 그는 고용주에게 사업장 변경 신청을 했으나 묵살당하고 있었다. 앞서 2022년 12월, 그는 추락 사고로 갈비뼈 8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는데, 회사 쪽은 완치되기도 전에 업무 복귀를 재촉했다. 기숙사는 컨테이너 2개를 2층으로 포개놓은 불법 가건물이었다. 컨테이너의 공간을 잘게 쪼개고 가벽을 만든 여러 개의 ‘방’은 성인 한 사람이 눕기도 힘들 만큼 비좁았다. 2층의 공동주방은 천장 마감재가 떨어져 빗물이 새고, 벽면과 바닥 곳곳에 새까맣게 곰팡이가 슬었다. 회사는 이런 기숙사를 제공하고 월 20만원을 떼었다. 포천 이주노동자센터가 개입하고 나서야 샤리프 등 2명의 일터 변경을 허용했다. 김달성 목사는 “값싼 외국인 노동력으로 근근이 유지하는 인력 착취형 영세 사업장의 현실”이라며 “이제 변화의 시동이 걸렸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샤리프가 새로 옮겨간 알루미늄 창호 공장은 노동 조건이 훨씬 좋다. 가장 큰 변화는 숙소였다. 2인 1실의 현대식 기숙사는 방의 위쪽 공간에 침실을 따로 만들고 아래쪽에 주방과 화장실이 있는 복층 구조다. 기숙사비는 없고, 와이파이·전기·수도 요금으로 한달에 3만원만 낸다고 했다. 샤리프는 “화장실과 휴게실도 좋고, 주방·욕실 같은 편의시설이 다 있어 매우 좋다. 모든 사장님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온종일 힘들게 일한 뒤 방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좋은 기숙사를 마련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0~12월 전국 4600여개 농업 사업장의 주거 실태를 조사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장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우수 기숙사 인증 농가에 향후 신규 고용 허가 때 인센티브를 주는 등 농업 분야 주거 환경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국비와 지방비를 50%씩 들인 168억원의 예산으로 전국 지자체 10곳에 농업 노동자 기숙사 10곳을 착공해 올해 준공할 예정이다. 농림부 농업경영정책과 관계자는 “애초 ‘외국인 근로자 기숙사 사업’으로 추진했다가 내외국인을 포괄하는 ‘농업 근로자 기숙사 사업’으로 확대했는데, 아무래도 외국인 근로자들이 주로 사용하게 될 것 같다”며 “올해에도 2024~2026년 3개년 계획으로 같은 금액의 예산을 확보해 기숙사 10곳을 추가 건설하기로 하고 공모를 거쳐 대상 지역을 선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한겨레S] 커버스토리 인터뷰
‘이주노동 주거권 논문’ 이기호씨 “이주노동자 착취 당연시…사업주 우위 구조 바꿔야”
이주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권리는 단순히 주거 관련 법령의 개선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권 꾸러미’의 개념에서 접근해야 보장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주노동 연구·활동가인 이기호(43)씨는 박사 학위 논문 ‘이주노동자 주거 문제의 인권적 접근―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를 중심으로’에서 이런 주장을 했다. 이 논문은 학위 심사에 앞서 한국인권학회와 인권법학회가 공동 발행하는 학술 저널 ‘인권 연구’ 최신호(2023년 12월)에 등재됐다. 지난 14일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15년간 이주노동자 법률상담”
―이주노동자 주거 문제를 박사 논문 주제로 쓴 이유는?
“고용노동부 위탁기관인 의정부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에서 2021년까지 15년 동안 이주노동자들의 권리 구제 법률 상담을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알게 됐고, 구조적 이유와 해법을 찾아보려 했다.”
―이 논문이 선행연구들과 구별되는 특징은?
“이전까지 관련 연구는 크게 두 부류다. 첫째, 주거 유형의 통계적 조사로 실태를 드러낸 것, 둘째는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법·제도적 개선책에 초점이 맞춰졌다. 저는 풍부한 현장 상담 경험과 심층인터뷰로 실증적 연구를 시도했다. 고용허가제 시행 20년 동안 주거권 운동의 전개 과정을 3개 시기로 나눠 분석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사업장(일터)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고용연장·재고용·해고도 사업주가 전적인 권한을 갖는다. 그렇게 설계된 제도에서는 개별 법령을 아무리 바꾼다고 해도 이주노동자 주거권은 보장되기 어렵다. 이주노동자 스스로 노동조건을 향상하기 위한 여러 권리가 함께 보장돼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이주노동자 주거권 운동의 시기별 특징은?
“제1기(2004~2013년) 때만 해도 고용허가제에 주거 기준에 대한 아무런 규정이 없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자 사업주들은 비용을 절감하려고 정부에 이주노동자 숙식비의 임금 공제를 요구했고, 이듬해 이명박 정부가 표준근로계약서에 그 근거를 만들어줬다. 이주노동 활동가들의 상담 사례가 많이 쌓이면서 열악한 기숙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2013년에는 캄보디아 여성 농업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국회 국정감사에서 장시간 노동과 비닐하우스 숙소를 폭로했다.
제2기(2014~2019년)는 한국의 이주민 지원단체들이 최초로 이주노동자 주거권 운동을 시작했다. 2016년 국회에서 열린 ‘이주여성 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에서는 지구인의정류장(대표 김이찬)이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상영하고, 이후 그 제목이 주거권 운동의 상징적 구호가 됐다. 2017년부터는 인권 변호사들이 합류했다. 그래도 현실에선 달라진 게 거의 없던 참에 2020년 12월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속헹이 동사했다.
제3기(2020년~현재)는 속헹 사망 사건 이후 정부가 다급하게 정책을 쏟아내고, 갑자기 바뀐 기준을 맞추기 힘든 사업주들의 저항과 편법이 난무하고, 이주민 지원단체들이 협업해 한 단계 높은 주거권 운동을 하는 중이다. 2022년부터는 불법 기숙사를 이유로 사업장 변경 신청이 급증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들이 인권 침해나 부당노동행위 등 다른 이유로 사업장 변경을 하고 싶어도 그게 안 되니 기숙사 문제를 사유로 내세우는 사례도 생겼다. 고용주들이 지능화하고 이주노동자들도 불법 기숙사를 사업장 변경의 구실로 삼는 현상은 고용허가제의 설계가 잘못됐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주거권 보장 전제 ‘권리 꾸러미’
―근본적 해법이 있을까?
“주거권의 전제가 되는 다른 권리들이 먼저 보장돼야 한다. 그게 ‘권리 꾸러미’ 개념이다. 불법 기숙사 문제는 현행 고용허가제가 1차 원인이지만 한국 경제 구조도 봐야 한다. 대기업을 정점으로 한 하도급 체계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곳은 맨 밑바닥 사업장이 대부분이다. 노동자의 착취가 필연적이고 고용허가제가 그걸 뒷받침해준다.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 권리를 허용하고, ‘고용허가제’를 ‘노동허가제’로 바꿔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고용허가제는 사업주가 주체가 돼 국가한테 외국인 고용을 허가받는 제도다. 반면에 노동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한국에서 노동할 권리를 한국 정부에 허가받는다. 한국 사회는 갈수록 외국인 노동력이 필요한 만큼, 전면적이든 단계적이든 노동허가제 도입은 불가피할 거다. 이주노동자가 처음엔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더라도 일정 기간 2년 일한 뒤에는 단계적으로 노동허가제를 적용해 업종이나 일터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특별 노동허가를 부여하는 틀을 만들자는 거다.”
―고용허가제는 노동부와 법무부가 관련 부처인데, 업무 특성상 시각이 다르고 접근법도 상충하는 것 같다.
“법무부는 체류 허가, 고용노동부는 고용 허가를 한다. 그런데 체류가 보장되지 않는 고용은 불가능하니, 고용허가제 운용은 실질적으로 법무부가 우위에 있다. 단적인 예로, 2022년 12월 고용노동부가 ‘장기근속 특례제’ 도입을 발표했다. 외국인력의 숙련도 강화, 인력 활용 체계의 다양화·유연화, 노동시장 분석 강화, 적극적 체류 지원이 뼈대다. 노동부는 지난해까지 관련 법령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못 하고 있다.
반면에, 법무부가 추진한 ‘외국인 숙련기능인력 점수제’는 지난해에만 3만5천명까지 대상자를 늘렸다. 단순취업 비자로 5년 이상 일하는 외국인에게 자격 심사를 거쳐 장기 체류를 신청할 수 있게 한다는 거다. 고용허가제 주무 부처인 노동부의 개편안을 제쳐두고, 법무부가 체류 기간에만 초점을 맞춘다. 법무부의 이민청 신설 계획도 이주노동자와 난민의 관리·통제 수단이 될 가능성이 크다. 독립기구가 아니라 법무부 산하에 ‘출입국·이민관리청’을 두겠다는 거잖나.”
―주거권은 국적이나 체류 자격과 상관없는 보편적인 권리인가?
“그렇다. 세계 인권 선언, 유엔 규약이 규정했고 국제노동기구(ILO)도 그렇게 권고한다. 우리나라 헌법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며,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으로 그 지위가 보장된다’(제6조)고 명시했다. 한국이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 기준을 내국인과 동일하게 적용하는 건 당연한 책무이다. 또 고용허가제는 한국 정부가 노동자 송출국 정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그 나라 노동자를 데려오는 거다. 단순히 노동력이 아니라 사람이 오는 거고, 한국 정부는 그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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