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이 떠나며 언급한 '두 선거' 어땠길래?…민주당의 내리막길 전조 [와이즈픽]
명분 버리고 실리 챙긴 '180석 총선'
"(자유한국당 추진 비례정당은) 좋게 말해야 위성정당이지 실상은 위장정당" (2020년 1월 16일, 신년 기자간담회)
"당 대표로서 국민께 이런 탈법과 반칙을 미리 막지 못하고 부끄러운 정치 모습을 보이게 돼 매우 참담하고 송구합니다" (2020년 3월 13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21대 총선을 앞두고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당시 여당인 민주당 지도부 기류가 단 두 달 사이 확 바뀐 것입니다. 32년 만에 다당제 협치의 첫발을 내디딜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적용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위성정당 출현으로 새 선거제 취지는 빛이 바랬습니다. 시작은 지금의 국민의힘인 자유한국당이었고, 이를 비판하던 민주당이 뒤따라가는 모양새였습니다. 승자 독식 체제의 이점을 누렸던 거대 양당이 잇따라 새 선거제 취지를 대놓고 훼손한 것입니다.
한참 후에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당시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저쪽이 하니 우리도 한다''는 천벌 받을 짓을 이해찬(전 대표)이가 했다." "위성정당을 만든 것은 해선 안 될 짓이었다." (지난해 7월 21일 / '정치교체와 정치복원 원로·미래와의 대화') 보수 야당에 비해 도덕적 우월성을 중시하던 민주당 기득권에 대한 일침입니다.
21대 총선 결과는 '슈퍼 여당'의 탄생이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과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이 얻은 의석은 무려 180석. 역대 총선에서 한 정당이 정당한 투표를 통해 차지한 의석수 가운데 가장 많았습니다. 개헌 빼고는 다할 수 있었습니다. 당 안에선 "꿈의 숫자",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나왔습니다. 선거 이후 민주당은 정치적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위성정당을 먼저 띄운 미래통합당은(총선 전 자유한국당에서 변경) 미래한국당 의석수를 합해 103석,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으로 큰 피해를 본 정의당은 6석을 얻는 데 그쳤습니다. 민주당은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2020년 총선까지 '빅3 선거'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문재인 대통령 집권 기간 내내 승승장구했습니다. 이 기간에 나온 게 바로 민주당의 20년, 50년, 100년 집권론입니다.
명분 버리고 실리도 못 챙긴 '보궐선거 참패'
지난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반년 정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습니다.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는 판단에 이르게 됐습니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 2020년 10월)
이후 후보 공천 결정은 신속하게 이뤄졌습니다. 이를 위해 당헌·당규까지 바꿔야 했습니다. 당헌에는 '자당 귀책 사유로 치르는 재·보궐선거는 무공천한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를 전 당원 투표를 통해 고쳤습니다.
"후보 낼 것이냐 여부에 대해선 여러 논의가 있고 비판도 있습니다. 그것을 저도 알고…. (하지만) 당원들께서는 후보자를 내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게 옳다는 판단을 내려주셨습니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 2020년 11월)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 참패는 예견된 결과였습니다. 무엇보다 박원순·오거돈 두 전직 시장의 성추행 사건이라는 민주당 쪽 잘못으로 치러지는 선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를 대처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안에서 '피해 호소인'이란 2차 피해 논란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이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을 선거 캠프 핵심 요직에 앉히기도 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악재가 계속 쌓였습니다.
당시 민주당 지도부가 이런 결정을 한 이유는 뭘까? 이듬해 치러지는 대선 때문입니다. 지도부도 보궐선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건 선거 전부터 충분히 알았습니다. 하지만 차기 대선 주자였던 이낙연 당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와 핵심 지지층이 적극적으로 후보 공천을 독려했습니다. 보궐선거 참패에서 그친 게 아니라 계속해서 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의 큰 책임…"대선 도움이란 얕은 생각"
두 사안에 있어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게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는 21대 총선 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고 2021년 보궐선거 때는 당 대표로 선거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민주당을 탈당할 때 이를 언급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1년 앞둔 시기에 서울과 부산의 공조직을 가동하는 것이 대선 승리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얕은 생각을 제가 떨쳐 버리지 못했습니다."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일하면서 민주당 지도부의 위성정당 허용 결정에 제가 동의한 것도 부끄럽습니다. (이낙연 전 대표 / 지난 11일 민주당 탈당 기자회견)
다만 두 사안에 있어 미묘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2021년 보궐선거 공천과 관련해선 당 대표로서 큰 책임을 통감하지만 21대 총선 전 위성정당 추진에 있어선 이해찬 지도부 결정 동의에 대한 부끄러움을 담았습니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에 몸을 담으면서 국회의원 5선과 전남지사, 국무총리, 당 대표. 그리고 대선 경선 후보까지 지냈습니다. 그리고 민주당을 떠났습니다. 탈당 이후 제3지대 형성에 골몰하는 그에게 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는 절박한 과제입니다.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입장을 바꾼 이재명 대표를 향해선 본인의 공약으로 반드시 지키라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에게도 민주당의 2020년 총선과 2021년 보궐선거 경험은 정치적 부담입니다. 이 대표는 경기지사 시절 자신의 SNS에 "국민과 집단지성을 믿고 역사와 이치에 따르는 것이 더뎌 보여도 안전하고 확실하다"며 위성정당에 반대했습니다. 대선 때부터 줄곧 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입장을 이어오다가 지난해 말부터 입장이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선거는 승부인데 이상적인 주장, 멋있게 지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상적인 정치가 작동하는 사회라면 우리도 상식과 보편적 국민 정서를 고려해 타협과 대화를 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지난해 11월 28일 / 유튜브 라이브 방송)
민주당은 21대 총선에서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취해 180석 '슈퍼 여당'이 되었지만, 이듬해 보궐선거에선 명분과 실리 모두를 잃었습니다. 한순간이 아니라 이전부터 쌓여온 민심의 불만이 축적된 결과입니다. 조국 사태와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 사태로 인한 핵심 지지층인 2030 세대 이탈, 그리고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민심 이반이 한계점에 이르러 폭발한 것입니다. 이는 결국 정권 교체로 이어졌습니다. 20년, 50년, 100년 집권을 말하다 민주당은 이렇게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YTN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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