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없었으면 난 죽었을 것"…효도밥상 뭐길래
정말로 '밥상'이 할머니를 살렸다. "이거 없었으면…나는 죽었어요." 1942년생, 올해로 82살인 김인식 할머니는 이내 목이 메었다.
맞은편에서 식사를 마친 할머니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마주보며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눈이 픽 돌아가더니 쓰러지더라고. 그리고는 이렇게 구토를 하는데…" 당시 옆에 있던 연남동 주민센터 정환주 주무관이 급히 할머니를 주무르며 응급조치를 하는 동안 119가 달려왔다. 연초에 있었던 일이다.
"인근 대학병원으로 실려갔는데 당시 혈압이 70이었대요. 저혈압이 온거지" 김 할머니는 평소처럼 인근 수영장에서 아쿠아로빅을 마치고 매일 오전 10시30분에 문을 여는 효도밥상을 찾았다.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데 저혈압 쇼크가 왔던 것.
"효도밥상에 안 오고 그냥 집을 가서 혼자 밥을 먹었으면…아마 나는 죽었을거에요."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은 뒤늦게 발견될 것이라는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이다. 김 할머니는 연남동에 혼자 살고 있다. 두 아들이 있지만 가정을 이루고 분가해 나간 지 오래다.
"(자식들도) 자기 생활이 있고 직장도 가야하는데 맨날 들여다볼 수 있나요…" 만약 혼자 사는 집에서 저혈압 쇼크가 왔다면…김 할머니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얽혔다.
"혼자 살면 잘 안 챙겨 드세요"
효도밥상은 마포구가 지난해 4월 관내 홀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주민참여형 급식사업이다. 마포구 관내 식당들이 장소를 내 주고, 구청은 1인당 5천원의 식비를 지원한다. 식자재와 쌀 등은 주민들의 기부로 조달하고 운영은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탠다.
현재 마포구 16개 동 전체에 17개 효도밥상이 운영 중이고, 474명의 홀로 어르신들이 한 곳당 20~50명씩 함께 모여 주 6일 식사를 한다.
김 할머니를 만난 곳은 연남동 1호 효도밥상인 '송가네 감자탕'이었다. 이곳에서는 오전 10시 30분부터 한 시간 동안 25명의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식판에는 밥과 국을 빼고 반찬이 6가지, 후식으로 귤과 요구르트도 나왔다.
식당을 운영하는 송요섭 대표는 "재산이 있거나 없거나 상관없이 어르신들이 혼자 사시면 귀찮다면서 끼니를 제대로 안 챙겨드신다"며 "어르신들이 하루에 한 끼라도 제대로 챙겨드시면 건강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반찬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지금은 75세 이상 홀로 어르신들만 모시는데 72세 정도로 연령을 낮추면 좋겠다"며 더 많은 어르신들을 모시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직원들도 식사 준비와 서빙에 참여하며 자원봉사자를 자처했다. 그만큼 보람이 크다는 얘기다.
기자가 찾아왔다고 하자 식사를 함께하던 어르신들이 한둘씩 모였다."너무 좋은 일이다. 많이 알려서 다른데도 이런 효도밥상이 생기게 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나들이하는 마음으로"…외로움 걷어내는 효도밥상
1943년생이라고 밝힌 김미자 할머니는 "다들 동네에 오래 사신 분들인데도 집에 들어앉았다가 나오시면 누군지도 몰랐는데 한 6개월 같이 효도밥상에 모이다보니까 말 그대로 한 식구가 됐다. 길에서 만나면 반갑고 차 한 잔 같이하기도 하고 정말 좋다"고 웃었다.
밥상을 함께하며 외로움이라는 그늘이 많이 지워졌다는 점에서 어르신들의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김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면서 "효도밥상에 나오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인네들이 돈 주고 이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정말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사업"이라고 칭찬을 이어갔다.
"어르신들이 올 때 그냥 나오시지 않아요. 할머니들은 화장도 하고 모자도 예쁜걸 쓰고 오세요. 마치 나들이하는 마음으로…" 성산1동 효도밥상에서 만난 송희옥 성산1동장의 말이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삶의 활력도 되찾는다는 것이다.
효도밥상 식당까지 매일 걸어오면서 운동이 되고, 또 매주 한 번씩 방문간호사가 효도밥상에 찾아와 당뇨와 혈압을 관리한다. 당뇨가 있던 한 할아버지는 영양가 있는 밥상을 꾸준히 받으면서 혈당도 많이 개선됐다.
부족한 예산, 주민들이 나섰다
단순한 급식 사업이 아니라 홀로 어르신의 몸과 마음 건강을 관리하고 고독사를 예방하는 등 다양한 효과가 나타나자 주민들의 호응도 커졌다.
효도밥상 사업을 제안한 박강수 마포구청장은 "처음에는 구청 직원들도 반신반의했고 서울시와 구의회에서도 예산 지원을 거부해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지난해 4월 시범사업을 시행하면서 '주민참여형' 사업으로 방향을 잡았다.
구청에서는 한 끼 밥값 5천원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주민들의 기부로 운영하는 형태가 자리 잡게 된 계기다. 실제로 지난해 효도밥상 운영에 마포구청이 쓴 예산은 3억원 정도인데, 주민 기부와 후원 금액은 6억8천만원으로 구청 예산의 두 배가 넘는다.
1구좌 1만원의 정기 후원을 하는 이들도 있고, 한 신혼부부는 결혼식 때 받은 쌀 화환을 기부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효도밥상에 나오던 변문희 할머니(79)가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기자와 만난 변 할머니는 "기부금액이 너무 적어 부끄럽다"며 외려 손사래를 쳤다. 어린 시절 밥 굶기를 수없이 했다는 할머니는 "굶는 것이 한이 돼서 주변 사람들이 밥 굶는 것도 못 본다"며 전 재산 기부가 큰 일이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말했다.
돈 없는게 아니라 사람 그리워 오는 것
그는 재산 뿐 아니라 자신의 육체도 이미 서울의 한 의과대학 병원에 기증하기로 서약했다. 가장 큰 걱정은 홀로 사는 당신이 뒤늦게 뱔견돼 시신 기증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송 동장은 "시신을 기증하기로 했으니 빨리 119에 실어 00대학 병원으로 보내달라는 글을 할머니가 거실 벽 한 가운데 크게 써 놓았다"고 전했다. 그만큼 할머니의 고독사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는 뜻이다. 할머니는 효도밥상에 나오면서 그런 걱정을 많이 덜었다고 했다.
박 구청장은 "효도밥상에 배식을 나갈 때마다 할머니들이 저를 붙잡고 '내년에 이거 짤리는거 아니냐'고 걱정을 하신다"며 "그만큼 어르신들에게는 의미가 큰 사업이라 제가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이어나갈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
마포구는 현재 500여명 남짓한 어르신들이 받고 있는 효도밥상을 올해는 1500명 규모까지 더 늘릴 방침이다. 오는 3월 망원동에 짓고 있는 반찬공장이 설립되면 효도밥상 식당도 17곳에서 49곳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박 구청장은 "어르신들이 돈 없어서 밥 먹으러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그리워서 오는 것"이라며 "전국에 효도밥상이 생기기를 바라고 누구든지 찾아오면 효도밥상 운영 노하우를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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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장규석 기자 2580@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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