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새우 같아’가 칭찬인 곳…매트 위에서 아이처럼 [ESC]

한겨레 2024. 1. 20.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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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하루운동 주짓수
‘애니멀 워킹’ 등은 기본 훈련법
몸 부대끼는데 시간 가는 줄 몰라
못 놀아본 어른들의 본능 깨우기
양민영 작가(아래)가 상위에 있는 상대를 뒤집어서 상위 포지션을 차지하는 기술인 ‘오버헤드 스윕’을 시도하고 있다. 박종혁 제공

멀쩡한 성인 열댓명이 바닥을 기고 있었다. 고릴라·게·새우·악어를 흉내 내면서. 동물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훈련법인 ‘애니멀 워킹’은 주짓수를 잘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이 독특한 훈련 하나에만 충실해도 부상을 예방하고 협응력·민첩성·유연성 등 온갖 신체 능력을 기를 수 있다.

그러나 미처 의식하지 못한 부작용도 있다. 주짓수 도장에 다녀본 사람만이 아는, 오묘하고 퇴행적인 분위기의 상당 부분이 동물 흉내에서 비롯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주짓수 기술에서 자주 쓰이는 움직임은 대부분 동물적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 엄청 동물적이야!”라는 말이 사회에서는 부정적으로 통용되는 반면 주짓수 도장에서는 그만한 칭찬이 없다. 예를 들어, 상대의 상체를 압박하면서 머리로 밀고 들어갈 때(팔다리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바쁘다.) 마치 박치기로 서열을 결정하는 수사슴이나 소싸움 대회에서 우승한 챔피언 소처럼 움직여야 한다.

 의사가 “주짓수 그만두라” 했지만

나 같은 ‘자의식 덩어리’는 그 광경을 보자마자 ‘저런 건 따라 하고 싶지 않아….’라며 시선을 돌리지만 천만에! 그건 하고 싶다고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동작이 아니다. 짐승처럼 들이받는 건 중수 이상이나 돼야 몸에 익는 고차원적인 기술이다.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주짓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서서 ‘도대체 주짓수 도장은 뭘 하는 곳이냐’고 묻는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곳의 본질은 체육관이라기보다 성인을 위한 ‘키즈 카페’에 더 가깝다. 밖에서는 절대로 입지 않을 이상한 옷을 입고 맨발로 정신없이 뛰어노는 곳이 키즈 카페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심지어 도장 내부에는 사다리나 볼풀 같은 조형물도 없이 매트만 덜렁 깔려 있다. 그 위에서 오직 몸으로만 부대끼는데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여기에 혈당이 급격히 떨어질까 봐 구비해놓은 과일 맛 사탕이나 젤리를 입안 가득 물고 있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방과 후 교실에 갇힌 것 같다.

이렇게 주짓수를 배우며 마음껏 퇴행하다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평생 진정으로 놀지 못했구나!’ 물론 아이였을 때는 똑같이 작고 어린아이들과 새끼 고양이들처럼 엉켜 놀았다. 무거운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이 막히도록 가슴이 짓눌리는데도 자지러지게 웃기도 했다. 놀이인지 사고인지, 경계가 불분명했던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왜 항상 놀이에는 끝이 있고 해가 기울면 집으로 가야 하는가?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강한 허기와 갈망에 시달렸던 나는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직 가슴이 두근거리고 놀고 싶은 열망은 꺼지지 않았는데 왜 어두운 곳으로 가서 눈을 감아야 하는가? 무한정 쾌락을 좇으면 쾌락이 남지만 절제를 배워서 얻는 건 대체 뭔가?

결국 나는 이루지 못한 갈망 때문에 다치고도 주짓수를 그만두지 않는 어른이 됐다. 물론 담당 의사에게는 그만뒀다고 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게 거짓말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습관성 탈골로 인해서 다친 곳이 덧나기라도 하면 그때는 정말 주짓수를 할 수 없으니까 그만두는 게 옳다고 봤고 의사의 권유에 따랐다. 그저 의사와 나 사이엔 ‘그만둔다’는 개념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는 기술 연습만 하고 스파링은 하지 않은 걸 주짓수를 그만둔 걸로 봤고(당연하다. 주짓수의 꽃은 스파링이니까.) 의사는 주짓수 도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는 걸 그만둔 거라고 봤다. 결과적으로 둘 다 그만둔 걸로 인식했으니까 갈등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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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과 중독이 동시에

이렇게 주짓수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숨긴다. 가장 확실한 중독의 징후를 발견한 것이다. 중독과 퇴행이 동시에 나타나는 게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에 속한다. 중독자와 어린아이의 공통점은 둘 다 끝 간 데 없이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는 거다. 쾌락을 위해서라면 남은 물론 자신이 파괴되어도 개의치 않는다. 또 중독에는 강한 전염성이 있어서 주변에 나 말고도 중독자가 넘쳐난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영향을 주고받으며 집단적인 중독 현상을 만드는 거다.

중독은 수련의 단계가 올라갈수록 더 심해진다. 상급자들이야말로 가장 못 말리는 유아라서 미숙한 초보들을 괴롭히며 희열과 함께 우월감까지 알뜰하게 챙긴다. 어떤 상급자는 그런 자신을 니체의 철학에 빗대기도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그 유명한, 인간의 정신 발달 단계인 낙타·사자·어린아이를 언급하면서 자신이 순수하게 몰입하는 어린아이의 경지에 올랐다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데 내가 봤을 때는 그냥 심각한 중독 상태일 뿐이다.

그렇다면 주짓수를 둘러싼 퇴행과 중독은 미성숙한 어른의 집착적인 쾌락 추구일 뿐인가? 그렇게만 보기에는 이면에 숨은 알리바이가 너무 흥미롭다. 첫째 알리바이는 퇴행이 퇴행인 동시에 회복이기도 하다는 거다. 우리는 걷지도 못할 때조차 기고 부드럽게 구르는 동작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자의식이 커지고 점잔을 빼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본능적인 움직임을 잊어버린 거다. 그러므로 주짓수 도장의 퇴행은 잃어버린 본능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알리바이는 정신없이 놀다가 인생의 수수께끼와 맞닥뜨린다는 거다. 우리는 왜 놀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건 놀이만의 독보적인 특수성 때문이다. 현대인은 모두가 정신과 육체의 평화를 갈구하지만 사실 인간은 죽어야 평화를 얻는다. 세상에서 무엇을 소유하고 성취하기로 했다면 평화는 단념해야 한다. 그러나 놀 때만큼은 평화와 성취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주짓수를 하면 할수록 그것이 대단히 중요한 동시에 하찮다고 느낀다. 그런데 주짓수가 하찮다면 내가 그토록 중요하게 여겨 어떻게든 갖고 싶었던 것들, 성취하려는 목표도 그렇게 하찮아 보일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은 적 없는 것처럼”이라는 말은 틀렸다. 그보다 “놀아라, 한 번도 놀아본 적 없는 것처럼”이 더 적절하다. 우리 인생에서 남는 장사라고 할 만한 건 이것뿐이다.

양민영 작가

사회적기업 운동친구의 대표이며 ‘운동하는 여자’를 썼다. 페미니즘과 여성의 운동에 관한 콘텐츠를 만들고, 못 하는 일에 도전하기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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