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연설엔 ‘스토리’가 있다…‘개인사 스피치’ 득 될까, 독 될까 [심층기획-한동훈표 ‘감성 정치’]
“IMF 때 금 모으기 운동 굉장한 경험”
“5·18 민주화운동 당시 저는 유치원생”
틀에 박힌 표현 대신 서정적으로 자극
전문가 “중도층 공략 위한 전략” 분석
일각선 “작위적이고 자기중심적” 비판
반문으로 맞대응 ‘공격수 기질’도 보여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DJ(김대중 전 대통령) 기념식에서 금 모으기 운동을 말할 줄 몰랐다. 나였다면 통합, 평화 같은 틀에 박힌 이야기를 했을 텐데… 한 위원장이 기존 정치인들보다 확실히 재기발랄하다.” DJ계와 인연이 있는 한 여권 인사는 한 위원장이 지난 6일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한 축사를 이같이 평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19일 통화에서 “한 위원장이 메시지를 직접 써서 본인의 색깔이 확 드러난 것”이라며 “특히 한 위원장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임팩트 있고 감동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포인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고 했다.
개인적 이야기를 토대로 정치적 메시지를 밝히는 구성은 한 위원장의 다른 발언들에서도 엿보인다. 한 위원장은 지난 4일 광주시당 신년인사회에서 “광주를 상징하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에 저는 유치원생이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저나 저 이후의 세대들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나 광주시민들에 대해서 부채의식이나 죄책감 대신에 내 나라의 민주주의를 어려움에서 지켜주고 물려줬다는 깊은 고마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한 위원장은 자신의 경험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서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부분을 톡 건드리면서 과거를 이야기한다”며 “금 모으기 운동을 떠올리게 하고, 유치원생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면서 훨씬 더 강렬한 메시지가 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평론가는 “시각적인 이미지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고, 정서적으로도 잔상을 많이 남긴다. 중도층 공략을 위한 전략”이라고 했다.
그러나 연설에 언급한 개인사의 맥락이 단편적이고, 과다할 경우 되레 공감을 얻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한 위원장은 지난 10일 부산시당 당직자 간담회에서 검사 시절 부산으로 좌천당했다면서 “저는 그때 저녁마다 송정 바닷길을 산책했고, 서면 기타학원에서 기타 배웠고, 사직에서 롯데 야구를 봤다”며 “저는 부산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했다.
비대위원장 취임 3주째를 기점으로 한 위원장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줄이고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한 정책 이슈에 집중하는 변화가 엿보이기도 한다. 한 위원장은 지난 14일 충남도당 신년인사회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와 금고 이상 유죄 확정 시 재판 기간 세비 반납을 약속하며 “이재명 대표를 보호해야 하는 민주당은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16일 인천시당 신년인사회에서는 의원정수 50명 감축 공약을 밝히며 “민주당에게 반대할 것인지 묻겠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특유의 반문 화법으로 맞대응한 법무부 장관 시절의 공격수 기질이 다시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한 위원장은 지난 17일 이 대표가 흉기 피습 이후 당무에 복귀해 “칼로 죽이려고 하지만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자, “그 정도면 망상 아닌가. 칼로 죽여본다니, 누가 죽여본다는 것인가. 내가? 국민의힘이? 아니면 국민들이?”라고 했다.
한 위원장이 민생, 경제 등 현안에 대한 정책 메시지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관옥 정치경제연구소 민의 소장은 “한 위원장이 사회 통합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금 모으기 운동을 이야기한 것이라면,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방책을 내놓았어야 했다”며 “집권여당 대표가 민생, 경제와 같은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발언은 안 하고, ‘멋 내기’에 집중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앞으로 깊이 있는 정책 메시지를 세밀하게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관 기자 gwan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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