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구급차의 ‘Pre-KTAS’, ‘응급실 뺑뺑이’ 해소할까[주말N]

박용필 기자 2024. 1. 2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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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 제공

현재 119구급대와 병원의 환자 중증도 분류 체계가 서로 다르다. 구급대원이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다고 판단해 병원으로 이송해도 병원은 그 판단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과연 응급진료가 필요하냐는 두고 의료진과 구급대원 사이의 이견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물론 다른 병원을 찾아 떠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소위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는 이유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소방청은 오는 2월부터 Pre-KTAS(병원 전 중증도 분류 체계)를 전국적으로 시행한다. Pre-KTAS는 119구급대가 환자의 중증도를 분류하는 체계로, 병원이 사용하는 분류 체계인 KTAS(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와 호환된다. 이에 따라 이 체계가 ‘중증도’에 대한 소방과 병원의 판단이 갈려 수용이 거부되는 사례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문제는 병원 역시 중증환자라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수용을 거부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환자 골라받기’ 차단 추진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병원이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의 수용 거부를 고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병원들은 ‘시설 부족’, ‘의료진 과로’, ‘대기 중인 다수의 환자’ 등을 제시하며 수용을 거부하곤 한다. 한 구급업무 관계자는 “사실상 병원이 환자를 골라 받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고 했다.

병원이 수용을 거부하면 ‘뺑뺑이’를 돌게 되고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생긴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응급의료센터로 이송된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등 중증질환이나 중증외상 환자 28만1036명 중 52.1%인 14만6543명이 골든타임(심근경색: 발병 후 2시간, 뇌졸중: 발병 후 3시간, 중증외상: 발병 후 1시간) 을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통계. 강병원 의원실 제공

병원의 이같은 이송 거부를 예방하기 위해 현재 국회에는 시도응급의료위원회를 거쳐 119가 환자를 이송할 병원을 결정하면 해당 병원이 환자를 의무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보건복지부도 병원의 이송거부 요건을 보다 구체화·명확화하는 시행규칙 개정을 지난해 초 입법예고한 바 있다. 또 이송 거부 사유를 ‘구두’가 아닌 문서나 시스템 등을 통해 통보하도록 하는 지침 마련도 검토하고 있다.

실제 소방청이 지난해 이와 유사한 체계를 대구지역에서 시범 운영한 결과 응급환자의 이송 지연 사례가 이전에 비해 26% 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단체 등과의 이견 조율 등으로 개정까지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또한 이 대책들은 ‘병원이 정말로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별 효과가 없다. 병원 입장에서는 경증 환자들이 응급실에 오는 것을 막을 근거가 없어 정작 중요한 중증 환자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119구급차가 사경을 헤매는 환자를 이송해와도 이미 진료 대기 중인 경증환자를 쫓아낼 법적 근거도 없다. 의료법은 병원에 ‘진료거부권’을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 앞에 중증환자 진료를 우선한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이준헌 기자

이 때문에 응급실 만이라도 ‘선착순’이 아닌 ‘중증도’를 기준으로 진료 우선 순위를 결정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도 일부 종합병원에선 중증환자가 올 경우 앞서 대기 중이던 경증환자의 진료 순위를 뒤로 미루는 지침을 자체적으로 운용한다.

그러나 기존에 진료 대기 중인 환자들의 반발, 그에 따른 병원·환자·구급대 간의 법적분쟁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래서 법적으로 중증도에 따라 진료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를 병원에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필수의료 인력’

전문가들은 이같은 대책들이 ‘응급실 뺑뺑이’를 줄이는데 어느정도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필수의료 인력의 확충’ 없이는 모두 ‘임시방편’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대한응급의학과의사회에 따르면 전국 400여개의 응급의료기관 중 응급의학 전문의가 없는 곳이 40%에 달한다. 권역센터도 타과 전문의가 운영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

지난해 3월 서울아산병원에 근무하다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의 경우, 사고 현장이 ‘뇌졸중 적정성 평가 1등급 병원’인 아산병원이었음에도 제대로 된 치료 한번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당시 병원에 개두술(두개골을 열어 뇌를 노출시켜 진행하는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 의사가 2명 있었지만 모두 비번이었다.

2018년 8월 119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를 구급대원이 의료진에게 인계하고 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제공

조항주 경기북부 권역외상센터장은 “전문의 분야가 지나치게 세분화되면서 신경외과 전문의라도 ‘척추’ 전문의는 개두술 경험이 없고, ‘뇌출혈’ 전문의는 척추 진료 관련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특히 중증외상 전문의가 적어 분야별 전문의를 모두 확보할 수 있는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했다. 또 “그런 병원이라도 각 분야의 전문의들을 24시간 대기시킬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곳은 사실상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필수의료 인력의 확충 없이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대 정원을 늘려 인력풀을 확충하고, 그 인력풀이 미용성형이 아닌 중증외상이나 응급의료 분야에 수혈될 수 있도록 관련 유인체계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분야를 아우르는 진료 역량을 갖춘 ‘통합진료 전문가’의 육성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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