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는 이유
내가 사는 곳 근처에서 몇 년 째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길에 한정되었던 것이 차도로 넘어오더니 근처 길을 전부 갈아 엎기 시작했고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분명 처음에는 1년 안에 끝날 거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벌써 수 년 째 진행중이다.
모든 일에는 ‘예상치 못했던 변수’라는 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처음의 계획이 틀어지고 일이 점점 길어지는 현상은 흔히 관찰된다. 몇 시간 정도면 집안 일을 다 마무리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거나 시간 맞춰서 과제를 제출하는 사소한 일부터 다리를 만들고 빌딩을 세우는 큰 일까지 인간이 하는 거의 대부분의 일들이 처음의 예상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이 마무리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늘 과소평가 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계획 오류라 부른다.
우리가 늘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마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한 가지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나타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을 처음 계획할 때 많은 이들이 지나치게 긍정적인 시각을 갖는 것이다.
어떤 일이든지 (특히 새 해 맞이 결심처럼) 처음 계획 할 때는 원대한 포부와 열정, 기대감 같은 감정들이 끼어들곤 한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과거에 비슷한 일을 할 때 반복해서 실패하고 예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와 완전히 단절된 존재인 것 마냥 다 잘 될 거라는 장밋빛 예상을 하고 만다.
12월 31일에서 하루 지났을 뿐인데 새 해의 나는 갑자기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어 모든 일을 어떤 유혹이나 방해, 어려움, 미루기, 피로, 실수도 없이 착착 해낼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과거의 경험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착오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나는 올해에도 유혹에 약하고 방해를 받을 것이며 여러 어려움을 겪고 가끔은 미루기도 할 것이다. 피로와 실수도 어김없이 나를 찾아올 것이다. 따라서 비슷한 일을 이미 해 본 적이 있다면 이전에 겪었던 어려움을 이번에도 그대로, 또는 더 심하게 겪을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번에도 분명 쉽지 않을 것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현실적인 시각을 갖기 어렵다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내 동생이나 친구 또는 직장 동료가 나와 비슷한 목표를 가졌다고 생각해보고 그 사람이 이 계획을 실현하는 데 어떤 어려움들이 있을지 현실적으로 얼마나 걸리겠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흔히 미래의 타인에 대한 기대보다는 ‘미래의 새로운 나’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장밋빛이기 때문이다. (내 동생이나 친구, 직장 동료는 새 해가 되더라도 생활 습관 등에 있어 꽤 큰 관성을 유지할 것 같지 않은가. 나는 예외일 것 같지만 나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목표와 각 목표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을 최대한 세분화하는 것도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막연히 독서하기, 운동하기 같은 목표를 갖는 것보다 달력에 날짜와 시간을 명시해서 이 날 몇 시부터 무슨 책을 무슨 운동을 할 것인지 적어 두는 것이 좋다. 꾸준히 시간을 써야 하는 일을 할 때 ‘두 달 후 완성’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단계를 나눠서 데드라인을 여러 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하루는 24시간임을 기억하자. 열정에 휘말려 지나치게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달성하려고 덤비는 경우 마치 하루가 48시간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 일상의 상당히 많은 시간이 ‘현상 유지’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은 많아야 서너 시간이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동시 다발적으로 여러 개를 다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작은 것이라도 제대로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자.
어떤 날의 나는 피로에 발목을 붙잡힐 것이고 따라서 가급적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는 시간 또한 분명히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자. 최소한의 정신 건강과 생명 유지에 필요한 시간들까지 전부 써버리겠다고 생각하는 경우 그 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무리해서 해내더라도 이후 몸과 마음에 청구되는 비용이 더 클 수도 있다. 꼭 이루고 싶은 작은 목표 하나를 나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해내는 것을 목표로 해보자.
Buehler, R., Griffin, D., & Peetz, J. (2010). The planning fallacy: Cognitive, motivational, and social origins. In M. P. Zanna & J. M. Olson (Eds.), Advances in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Vol. 43, pp. 1-62). San Diego, CA: Academic Press.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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