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위기의 1000만 어르신...정년연장? 연금개혁?
[편집자주] 1958년에 태어난 신생아는 무려 100만 명.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이들이 의학에서 노인의 기준으로 삼는 '만 65세'에 지난해 대거 합류했다. 숨 쉬는 모든 순간 건강과 행복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58년생 개띠들은 사회에서 은퇴 없이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신의 건강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첫 세대로 꼽힌다. 나보다 가족의 건강을 우선시한 이전 세대와는 사뭇 다르다. 살아있는 동안 '건강한 장수'를 꿈꾸는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웰니스(Wellness)'다. 의료계에서도 시니어 세대의 길어진 평균수명과 이들의 건강관리 수요를 반영해 치료법마저 바꾸고 있다.
이렇다보니 정치권에서는 우선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 군인 등 직역을 중심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산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일할 수 있는 노인들에게 일자리를 줘 빈곤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다. 국민연금 개혁 관련 논의도 한창이다.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안과 '더 내고 더 받는' 모수개혁 방안을 두고 논쟁이 치열하다. 정부·여당에서는 국민연금 등 연금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나 총선을 앞두고 결론을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사회복지 관련 종사인력의 정년을 5년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대표발의), 자녀가 있는 근로자의 정년을 상향하는 내용이 담긴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 개정안(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속한 연구자들의 정년을 만 65세로 늘리는 내용의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이상민 의원 대표발의) 등 일부 직역의 정년을 연장하는 내용이 담긴 10여개 법안이 현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으나 종합적인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관심이 선거에 집중된 상황이라 한동안 실질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해당 법안들은 기간의 차이는 있으나 상대적으로 정년이 보장되는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 △군인 △경호공무원 △지방공무원 △국가정보원 등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정년을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자칫 청년 일자리를 구축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 매우 민감한 주제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이 관련 법안을 낸 것은 노인에게 일자리를 줘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노인빈곤율이 2022년 처분가능소득 기준 38.1%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고수준이고 상당수의 노인이 노후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정년 연장은 경제활동인구(만 15~64세) 감소로 불거질 수 있는 일손부족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한국은 내년부터 유엔(UN, 국제연합) 기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장래인구추계(2022~2072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898만명이었던 만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내년 사상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게 된다. 고령인구 구성비는 2022년 17.4%에서 2025년 20%, 2036년 30%, 2050년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회는 국민연금 개혁 관련 논의도 민감하긴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63세이나 2033년에는 65세로 높이도록 돼 있다. 앞으로 오랫동안 연금보험료를 낼 젊은 연령대와 연금을 받을 시기가 가까워진 장년층 간 갈등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는 지난해 11월16일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안과 '더 내고 더 받는' 안이 담긴 활동보고서를 보고했다. 자문위는 크게 △보험료율 13%와 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5%와 소득대체율 40% 등 두 가지 모수개혁안을 제시했다. 현재 기준 보험료율은 9%, 소득대체율은 42.5%다.
연금특위는 연금개혁을 위한 공론화위원회도 꾸려 약 3개월간 연금개혁 방안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로 했다. 공론화위원장으로는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를 위촉하고, 위원은 총 15인 이내로 구성키로 했다. 특위 간사인 김성주 위원(더불어민주당)· 유경준 위원(국민의힘)과 김용하·김연명 특위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도 포함된다. 그 외 숙의·조사·소통 분과별 위원 구성은 간사간 협의 중이다.
전문가로 구성된 '의제숙의단'에서 구체적 의제를 도출하면 시민 대표단이 참여해 도출된 의제를 논의하는 방식이다. 연금개혁 공론화 의제에는 소득대체율·보험료율과 같은 '모수개혁'과 기초연금·국민연금 관계 설정 등 '구조개혁'이 모두 포함됐다.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된 두 방안은 공론화위원회에서도 유력한 안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노인빈곤과 관련 일장일단이 있어 어떤 방향으로 국민연금이 개편될 지 주목된다.
'더 내고 덜 받는' 안의 경우 연금소득에 의지해 노년을 보내야 하는 노인들에게는 소득감소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기는 늦춘다는 점에서 안정성 측면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머니투데이 더300과의 통화에서 "연금을 개혁해 노후소득에 대한 비전이 분명해지면 그만큼 국민들이 노후에 대한 근심이 줄어들 수 있다"며 "국민연금에 기반해 2중 3중의 소득보장 대책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 (수급액)이 현재보다 높아지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확실히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만드는 것도 안정성 측면에서는 중요하다"고 했다.
반면 '더 내고 더 받는' 안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소득대체율을 올려 최소생활비를 보장해 주더라도, GDP(국내총생산) 대비 연금수급액 비중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 공동위원장을 맡은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공적연금제도가 노후를 어느정도 보장해 주면 사적인 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계층간 불평등이 줄어들게 된다"며 "국민연금을 좀 올리고 기초연금을 합쳐서 최소생활비는 보장해주자는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연금) 부담을 측정하는 방식을 연금으로 나가는 돈의 총량을 GDP 대비로 보는 것으로 측정하면 2021년 기준 한국이 GDP 대비 3.2%, 유럽은 약 10%가 된다"며 "2060년쯤 되면 한국이 GDP 대비 11~12%정도 될텐데 유럽수준으로 가는 것이고 부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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