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업고…'40도 급경사' 북한산 100m 올랐다[인류애 충전소]

남형도 기자 2024. 1.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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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흠 고양소방서 119구조대 소방장(36)
쉬던 날에도 다친 30대 여성 업고, 급경사 북한산 암벽 100m 오르며 구조
지난해 가을 할아버지 투신, '3m 깊이' 한강 수색해 인양, 유가족들에게 데려와
"화재로 소사된 분 보며 부모님 앞에서 울기도, 고맙단 말 한 마디에 힘나지요"
[편집자주] 세상도 사람도 다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날은 소소한 무언가에 위로받지요. 구석구석 숨은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좋은 일들도 여전하다고 말이지요.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쉬는 날에도 북한산 정상에서 다친 30대 여성을 등에 업고, 급경사 구간 100미터를 올라간 '열혈 소방관' 박 소방장. 헬기에 무사히 탈 때까지 도왔다. 한 사람을 안전하게 살렸다./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지난해 8월 말, 한여름이었다. 경기 고양소방서 119 구조대박준흠 소방장(36)쉬는 날이었다. 같은 고양소방서 소속 '구급대'인 아내 양주경 소방장(33)과 북한산에 오를 때였다. 걸음이 좀 더 빠른 박 소방장이 정상 근처에 도달했을 때였다. 부축받으며 내려오는 30대 여성을 봤다.

거동이 거의 안 되는 상태로, 양쪽에서 부축받고 내려가고 있었다. 여성의 아버지, 어머니, 예비 남편, 남동생이 함께 있었다. 통증을 많이 호소하고 있었다. 내려가는 게 만만찮을 것 같았다.

800m 고지에 가까운 높이. 백운봉암문이란 곳. 양쪽 다릴 거의 못 쓰는 상태로면 3시간 이상은 내려가야 했다. 구급대인 아내가 급히 상태를 확인하고 응급 처치를 했다.

박 소방장이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렇게 내려가다간 '2차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119에 신고하셔야 합니다."

그랬더니 놀란 대답이 돌아왔다.

"여긴 높은 산인데, 119에서 뭘 해줄 수 있나요?"

쉬는 날에도 '소방관'…북한산에서 다친 여성, 등에 업고 100m 올라

고양소방서 119 상황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부상자 곁을 지키는 박 소방장./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형도 : 다치신 분은 어떻게 구조해야 했을까요.
준흠 : 헬기 포인트까지 가야 하는데, 이제 업고 올라가기 힘드신 것 같더라고요. 결국 제가 등에 업고 한 100m 정도, 상황실과 얘기하면서 올라왔어요.
부상자를 헬기 포인트까지 옮기기 위해 함께 애쓰던 이들./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형도 : 평지 100m도 다친 분을, 업고 가기가 쉽지 않은데 그 급경사 구간을요. 경사가 어느 정도일까요.
준흠 : 암벽 구간인데, 한 40도 이상은 될 것 같아요. 저희가 업고 내려가는 일은 많은데, 올라가 본 건 처음이었어요. 나중엔 제 숨소리가 너무 거칠어서 들리실까 봐 민망하더라고요(웃음). 등에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죄송했고요.

짐작이 갔다. 때는 한여름. 정상에 가까운 북한산 급경사 구간. 성인 여성을 등에 업고 100m를 오르는 것.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고양소방서에서 2년쯤 근무하며 북한산을 50~60번씩 오르내리며 구조해왔던 그로서도 쉽잖은 일. 중간에 한 번 쉬면서, 헬기 포인트까지 올랐다. 거기서 30분쯤 기다리며 대화를 나눴다.

"막걸리라도 사서 감사 전하고 싶다"며 칭찬 글까지
기자와 인터뷰하다 웃어보이던 박준흠 소방장./사진=남형도 기자
박 소방장은 헬기가 빠르게 내려올 수 있도록 연막탄을 피웠다. 하강할 땐 바람이 거세게 분다. 돌멩이며 나뭇가지 등이 날려 다칠 수 있단다. 등에 업고 온 부상자가 다치지 않게 온몸으로 막았다. 바람을 가려드리겠다고. 그리 무사히 헬기를 타고 떠나는 걸 봤다. 위험할 뻔했던 한 사람을 살리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1월1일, 해돋이를 보기 위해 올랐다가 '저체온증'으로 위험했던 등산객을 보호하던 박준흠 소방장./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형도 :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이후 소식도 들으셨을까요.
준흠 : 부상자 가족분들께는 걱정하지 말고 먼저 내려가시라고 했거든요. 병원에서 기다리시라고요. 헬기 작업 끝내고 전화드려서 "이제 병원에서 뵈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랬지요. 그랬더니 정말 고마워하시더라고요. "막걸리라도 사서 찾아가 감사의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라고요. 잘 치료 받고 괜찮아지셨대요. 저희 소방서에 칭찬 글도 써주셨고요.

북한산에서 무릎과 다리를 부상당한 30대 여성이 헬기에 무사히 오르고 있다./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형도 : 보시니까 그래도 기분 좋으셨지요.
준흠 : 진짜 엄청 뿌듯하더라고요. 아내한테도 그랬어요. "봤지? 내가 이렇게 돈 열심히 벌고 있으니까, 나한테 잘해야 해" 그랬어요(웃음). 아내도 처음 보니까 신기하기도 하고 그랬나 보더라고요.

형도 : 하하, 그 이후엔 아내께서 좀 잘해주시던가요(웃음).
준흠 : 아우, 전혀, 전혀 없어요. 일상으로 그냥 바로 돌아왔었습니다(웃음).

형도 : 그런데 실은 귀한 휴일이셨던 거잖아요. 아내 분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고요. 굳이 그렇게까지 역할을 하진 않아도 될 텐데, 모른 척하고 싶으셨던 마음은 없으셨을까요.
준흠 : 국민분들이 생각보다 '헬기는 VIP들만 타는구나'하고 잘 모르시거든요. 제가 힘들어질 순 있지만, 그래도 '소방관들은 구조 활동을 이리 적극적으로 하는구나'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많이 찾아주시면 저희 존재 가치가 더 있는 거고요. 아무래도 평소 하는 일이 누가 도와달라 할 때, 도와주는 걸 많이 하는 편이니까요. 그래서 자연스레 그런 게 남아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컴컴한 한강 속…돌아가신 '할아버지 신발'이 보였다
한강에 뛰어든 이를 찾기 위해, 숨이 멈췄더라도 고인을 유족에게 바래다주기 위해, 수색하는 박준흠 경기 고양소방서 119 구조대 소방장(36). 한강 물살이 생각보다 세고, 그물에 걸릴 수 있기에 위험한 작업이다./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나가신 지 3시간이 됐는데, 연락이 되질 않아요."

지난해 9월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를 찾아달란 신고가 들어왔다. 출동 장소는 한강이었다. 다리 위엔 노인의 '지팡이'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박 소방장도 출동했다.

잠수 준비를 했다. 한강에 보트를 띄우고 수색을 시작했다. 실종 예상 지점 인근, 3m 깊이로 입수해 수색을 시작했다. 한강 물의 속도가 생각보다 거셌다. 두렵기도 했다.

실종자 수색을 위해 한강에 입수하는 박준흠 소방장./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한강 물속은 컴컴했다. 시야가 너무 안 나왔다. 아예 안 보이는 지경이었다. 15분 정도를 안에서 왔다 갔다 했다. 박 소방장은 생각했다.

'돌아가신 분이라면, 최대한 훼손이 안 되도록 잘 찾아야 한다.'

간혹 고인을 못 찾았을 땐 죄송한 마음이 들 때도 많았단다. 어떻게든 인양하고 싶었다. 그때였다.

희뿌연 한강 물 안에서, 할아버지의 신발이 보였다. 로프로 작업해 인양하기 시작했다. 그를 기다리는 유가족에게로.

화재 현장서 소사된 분들 보며…부모님 앞에서 운 적도 있었다
내부 진입이 어려울 땐, 옥상에서 로프를 연결해 창문으로 진입하기도 한다. 역시 위험한 작업./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열혈 소방관'인 박 소방장은 지난해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주는 '2023 생명 존중 대상'에서 의인(義人)으로 선정됐다. 의로운 사람. 가끔 자랑할 때면 "그래, 고생했네" 하던 모친도 아들이 호텔서 상 받는 걸 보고 "대단하다" 했다며 웃었다. 학창 시절엔 공부를 많이 안 해 걱정했었다며.

산과 강을 넘나들고, 심지어는 공중에서 뛰어들기도 한다. 한 번은 5층 건물의 주택 5층에 36개월 아기가 방 안에 갇혔단 신고를 받았다. 안에서 문을 잠갔단다. 그 와중에도 문이 파손될까, 최대한 피해를 안 주려 옥상에서 로프를 타고 내려와 방에 진입했다. 보통 낯선 소방관이 들어오면 아이가 우는데, 배시시 웃고 있었다고.

형도 : 아이도 꽤 놀랐을 텐데 웃고 있었단 게 신기한걸요.
준흠 : 아이가 저희도 잘 모르는 소방 관련 차량까지 다 알고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소방관을 너무 좋아한다고, 꿈이라고 어머니께서 그러셨어요. 같이 사진도 찍고 얘기도 하고 그랬지요. 그때도 보람 있었어요. 아기에게 좋은 기억을 심어줬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저희 아이도 6살인데 한 번도 그런 얘길 한 적이 없는데요(웃음).

보람찬 일. 그러나 힘들고 고되기도 한 일. 정말 그럴 것 같았다. 한겨울인데, 어제도 저수지에 동계 다이빙 훈련을 했단다. 사고가 계절을 가리진 않으니까.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단다. 익수자를 찾다 그물에 걸려 위험한 일도 많았단다. 인명을 더 잘 구하려, 함께한 동료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 비번 날에도 훈련하고 애쓴다. 인명구조사 1급, 화학대응 능력, 응급구조사, 잠수기능사 등 자격증만 16개나 된단다.

등산객 부상자를 등에 업고 내려오는 고양소방서 119 구조대원들./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형도 : 위험하셨던 일도…아마도 있으셨겠지요.
준흠 : 제가 전엔 파주 소방서에 있었거든요. 거긴 공장이 참 많아서, 불이 났을 때 지붕이 코앞에서 무너진 적도 있었어요. 절에서 불이 났을 땐 지붕이 엄청 무거웠거든요. 바깥에서 진압하다 지붕에 쿵 내려앉는 거예요. 근데 그쪽에 저희 구조 대장님께서 계셨거든요. 막 소리 지르며 뛰어갔는데 다행히 무사하시더라고요.

형도 : 현장에서 트라우마 비슷하게, 남으신 일도 있으시겠어요.
준흠 : 초반엔 화재 현장에서 소사되신 분들을 보고 몸도 안 좋아지고 충격도 컸었어요. 그래서 부모님 앞에서 한 번 울었었어요. 보는 게 너무 쉽지 않다고요. 살인 사건 났을 때 자상을 본 적도 있는데 7~8년 지나니 가물가물해지긴 했지만, 언제든 기억이 끄집어내어지긴 하고요. 저희 팀장님께선 10년 전에 교통사고 나셨던 분 일을 아직 또렷이 기억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심리 상담 지원이 잘 돼 있어요.

지난해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서 주는 '생명존중대상'을 수상한 박준흠 소방장(36)./사진=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형도 : 그런데도 매일 소방 일을 하시며 사람을 구하고 계신 거고요. 후회하신 적은 없나요.
준흠 : 전혀 없고요. 그래도 고맙단 말 한마디 들을 때마다 너무 좋고, 다른 동료 직원, 팀장님과 이렇게 있다 보면 너무 행복하고 재밌습니다. 출근하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항상 현장이 다르니까요. 새로운 느낌도 받고요.

임용 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연애하고 결혼한, 같은 소방서 119 구급대인 아내. 구급대는 출동 인원도 더 적고, 아직은 시민들에게 고충을 많이 겪는다고. 그를 위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요새는 구급대 폭행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 보호하는 틀이 생기는구나, 싶긴 하단다.

"항상 도와드리러 가는 사람들이거든요. 3만 아프면 될 걸 6~7까지 아프게 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어요. 저희한테 최대한 잘 따라주셨으면 좋겠어요. 기억되고픈 소방관은 그런 거예요. 다른 동료들에게 '정말 성실히 열심히 일하는구나', 그리 남고 싶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어디든 달려오며 고생하는 119 구조대. 사진은 고양소방서 119 구조대원들의 모습./사진=박준흠 소방장 제공
박 소방장의 왼쪽 어깨에 부착돼 있던 '구조(RESCUE)' 안장. 고요히 고생하는 이들이 있기에, 험한 세상에서도 비로소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사진=남형도 기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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