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항암제, 이젠 '모든 위암'에 쓴다…다음 발전은? [의술, 이게 최신]

이광호 기자 2024. 1.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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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암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환자가 나오는 암이었습니다. 그만큼 위암을 극복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고, 건강검진에서 위 내시경 검사가 빠지지 않게 된 것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 결과, 초기에 위암을 발견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졌고, 수술을 통해 완치를 노려볼 수 있는 환자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때를 놓쳐 위암이 많이 진행된 말기 위암 환자들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습니다. CAR-T, ADC 등 혁신적인 항암제는 고사하고, 오래되고 부작용 많은 세포독성 항암제를 기본으로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그랬던 위암에 면역항암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됐고 ADC 항암제 역시 활용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말기 위암 치료의 최신 변화들을 상급종합병원 전문의들과 짚어봤습니다. 

위암 vs. 폐암, 역전된 생존율
우리나라에서 많이 걸리는 대표적인 암(갑상선, 대장, 폐, 위, 간) 중에서 가장 위험한 암을 꼽으라면 단연 폐암입니다. 암이 첫 발생한 장기를 벗어나지 않은 '국한기'(혹은 1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24.6%로 5개 암 중에 가장 낮습니다. 발견도 쉽지 않은데 초기에 발견해 치료해도 5년 상대생존율(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과 비교한 생존율)이 78.5%입니다. 다른 암은 1기 발견 시 간암(62.4%)을 제외하고 모두 90%가 훌쩍 넘습니다. 

위암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갑자기 폐암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1기나 2기(암이 첫 발생한 장기의 주변까지만 침범. 국소 진행기)에서는 위암의 생존율이 높지만, 3기(다른 장기까지 전이된 상태. 원격 전이)에선 폐암보다도 위암의 생존율이 낮습니다. 수술이 불가능해진 시점에는 폐암보다도 위암의 상황이 안 좋다는 뜻입니다.(단, 병원 현장에서는 위암을 1~4기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3기까지는 수술이 가능할 정도의 전이, 4기는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를 뜻합니다.)
최근 10여년 간의 국가암등록통계를 모아 봤더니, 2011년에는 3기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이 폐암 4.9%, 위암 5.8%였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격차가 줄어들면서 2016년에는 위암 5.9%, 폐암 6.7%로 생존율이 뒤집혔습니다. 이 격차는 꾸준히 벌어져, 지난달 말 집계된 2021년 통계에선 폐암 12.1%, 위암은 6.6%의 생존율을 기록했습니다. 

주목할 건 폐암의 생존율이 2배 넘게 치솟을 동안, 위암은 지지부진했다는 겁니다. 그만큼 폐암에서는 말기까지도 암을 통제할 수 있는 새로운 약들이 추가됐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타그리소'나 '렉라자' 등 폐암 변이에 대응하는 표적항암제가 최근까지도 많이 출시됐죠. 그런 신약이 위암에선 지금까지 거의 추가되지 않았습니다. 

10년 만에 등장한 면역항암제
위암에는 변이가 딱 하나 있습니다. 'HER2'라는 이름의 변이입니다. 위암 세포가 너무 단순해서 변이가 하나뿐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대입니다. 위암 세포는 이질성이 너무 커서, 어느 한 변이로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나마 위암의 특성이라  부를 정도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변이가 HER2 하나였던 겁니다. 

HER2 변이를 가지고 있을 경우(양성), 독성항암제에 더해 표적항암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허셉틴'이라는 이름의 치료제로, 국내에 2010년 출시됐습니다. 이미 13년이 지났는데, 이후 추가된 표적항암제는 없습니다. 만약 HER2 변이가 없다면(음성), 표적항암제도 못 쓴 채 부작용이 많은 독성항암제만 써야 했습니다. 
상황이 바뀐 건 2021년부터입니다. '옵디보'라는 면역항암제가 HER2 음성 위암의 첫 치료(1차 치료)에 허가됐습니다. 기존의 독성항암제에 옵디보를 동시 투약하는 형태입니다. 지난해 9월에는 건강보험도 적용됐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말에는 '키트루다'라는 면역항암제가 HER2 양성 위암에 역시 1차 치료로 승인됐습니다. HER2 양성 위암 환자라면 독성항암제와 표적항암제에 면역항암제까지 동시에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면역항암제의 '오해'
하지만, 면역항암제를 모든 환자가 쓸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면역항암제는 이름만 보면 우리 몸에 면역력을 높여 항암 효과를 내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실제 작용 방식은 좀 다릅니다. 

암세포는 우리 면역세포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자신을 정상세포처럼 속이는 단백질을 내뿜습니다. 비유적으로 표현하면 분명히 적군인데 아군 군복을 입고 있는 겁니다. 면역항암제는 그런 군복을 벗기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가짜 군복을 많이 입고 있는 암세포일수록 효과가 좋고, 그렇지 않을수록 효과가 줄어듭니다. 

면역항암제 치료를 위해서는 해당 항암제가 억제할 수 있는 물질(즉, 벗길 수 있는 군복)의 발현율을 검사해야 합니다. 발현율이 충분해야만 면역항암제를 쓸 수 있습니다. 옵디보의 경우에는 40% 안팎, 키트루다는 절반 안팎의 환자가 이 검사를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이 검사와 관련해서는 불편이 남아 있습니다. '옵디보'와 '키트루다', 두 항암제 모두 'PD-L1'이라는 단백질을 억제합니다. 하지만 허가 당시 사용됐던 검사 기기가 달라 따로 검사를 해야 합니다. 즉, 환자 입장에서는 HER2 검사를 한 번 받고, 그 뒤에 옵디보용 검사와 키트루다용 검사를 또 따로 해야 합니다. 환자의 치료 시기 등을 고려하면 처음부터 3개의 검사를 동시에 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고작 수 개월…"포기 마세요"
이렇게 힘들게 도입된 면역항암제, 효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각 개발사의 임상실험 기준, 기존 치료에 옵디보를 추가했을 때 생존기간의 중간값(mOS)은 13.8개월이었습니다. 옵디보를 안 쓴 경우엔 11.6개월로, 2.2개월 늘었습니다. 키트루다는 기존 15.7개월에서 20개월로 4.3개월 늘었습니다. 거칠게 표현하면, 1년 사시던 분이 1년 반 정도 사시게 된다는 뜻입니다. 
수치를 이렇게만 보면 '뭐 하러 비싼 항암제를 더 맞나' 싶을 수도 있는데요. 의사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수치보다 우리나라 환자들의 수치가 더 좋다는 겁니다. 

[라선영 /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위암은 우리나라나 일본에 많이 발생하고, 또 그만큼 치료도 잘합니다. 수술, 항암치료, 그리고 환자의 증상 관리와 식사 관련 영양 지원 등을 굉장히 잘 하기 때문에 동일한 병기의 환자라도 미국이나 외국 환자보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더 오래 삽니다. 키트루다 임상실험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양인 환자들이 3분의 1밖에 안 들어가 있거든요. 실제 우리나라 환자들은 어떠냐, 2년 이상 지내십니다(키트루다 임상실험의 생존기간 중간값은 1년8개월). 제 환자들 중에서는 3년 이상 치료하신 분도 10% 이상 되고요. 그냥 전체 생존 기간으로만 놓고 보면 2년도 굉장히 마음에 차지 않죠. 그렇지만 한국에서 더 좋은 치료를 할 수 있고, 새로운 치료들도 나오면서 좋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 환자 치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방암 혁신' ADC, 위암에는 못 쓰나
ADC(항체-약물 접합체)는 표적항암제의 머리에 독성항암제를 꼬리로 붙인 형태의 치료제입니다. 머리는 암세포를 정확하게 찾아가고, 그렇게 찾은 암세포에 강한 독성물질을 끼얹습니다. 부작용 우려가 컸던 강한 독성항암제를 훨씬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습니다. 
[ADC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Antibody)의 머리와 강력한 약물(Drug)의 꼬리를 가진 치료제입니다 / 자료: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현재 가장 혁신적인 성과를 낸 ADC 치료제는 '엔허투'입니다. 이 치료제는 위암에 쓰이는 유일한 표적항암제 '허셉틴'의 머리를 사용했습니다. 유사성이 있는 만큼 현재도 엔허투를 위암에 사용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두 개 이상의 치료를 받고도 실패한 환자에게만, 즉 3차 치료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HER2 변이인데, 유방암에서는 혁신적인 성과를 냈지만 위암은 양상이 좀 달랐습니다. 

[라선영 /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 '디펜던시'라고 얘기하거든요. 위암 세포는 특정 표적에 의존하는 세포 기능이 상대적으로 약해요. 무슨 말이냐면, HER2라는 표적을 운전사라고 했을 때, 폐암이나 유방암 같은 경우에는 운전사가 HER2 한 명이에요. 그래서 그 운전사를 잡으면 차가 멈추거나 사고가 나죠. 그런데 위암에는 항상 조수석에 한 명이 더 있어요. 그래서 HER2 운전사를 없애도 옆에 있던 조수가 잽싸게 다시 운전을 하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위암은 표적항암제로 운전사를 잡고 독성항암제로 조수를 잡아야 차가 멎어요. 그런데 또 그러면 뒤에서 꾸물꾸물 내성이 또 생겨서 다시 운전을 합니다. 이게 위암이 현재까지 치료 효과가 좋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납니다.]

새로운 표적항암제 '대기중'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미국에서 임상 3상을 마치고 FDA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인 신약이 있습니다. '클라우딘 18.2'라는 표적을 노리는 '졸베툭시맙'이라는 항암제입니다. 지난해 1월 HER2 음성이면서 클라우딘 18.2 양성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3상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기존 독성항암제에 졸베툭시맙을 추가한 경우 생존기간 중간값 기준 18.2개월로, 기존 독성항암제만 쓴 환자 15.5개월보다 2.7개월 길었습니다. 

다만 이 치료제는 최근 미국 FDA로부터 승인 보류 판정을 받았습니다. 약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고, 제조시설에서 문제 사항이 지적됐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회사는 문제가 됐던 시설을 정비해 다시 허가 신청에 나선다는 계획입니다. 

'FGFR2'라는 표적을 노리는 항암제도 있습니다. '베마리투주맙'이라는 성분으로, 현재 임상 3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3상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FGFR2 표적은 HER2 음성 위암 환자의 약 30%에서 과하게 발현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특히나 고무적인 건, 표적항암제가 늘면 ADC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김승태 / 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교수: 독성항암제와 HER2 표적항암제가 효과를 보인 것처럼 독성항암제와 클라우딘18.2로 ADC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개발이 활발히 되고 있습니다. 플랫폼 자체의 개발은 완료됐고 이제 임상실험에 돌입한 상태입니다. 특히 HER2 음성 위암은 항암제와 면역항암제 이외에는 아직까지 뚜렷한 약제의 개발이 없거든요. 클라우딘18.2라든지 FGFR2 등을 표적하는 치료제 임상이 잘 성공한다면 HER2 음성 위암에도 사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항암제와 '프로바이오틱스'
최근 국내 한 연구진이 항생제와 면역항암제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항생제를 미리 쓴 환자는 면역항암제 효과가 떨어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암이 진행되면 이런저런 합병증을 일으키고 항생제를 써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우려를 낳는 대목이었습니다. 

[김승태 / 삼성서울병원 종양내과 교수: 항생제를 먹으면 우리가 갖고 있는 정상적인 균총의 변화를 가져옵니다. 그래서 어떤 항생제를 먹었을 때, 면역항암제에 일반적으로 잘 들을 수 있는 균총이 억제될 수 있다는 게 보고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면역항암제를 위해 항생제를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석하게 되면 상당히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폐렴에 걸려서 반드시 항생제를 써야 하는 사람에게 면역항암제를 걱정해서 안 쓴다든지 하는 상황은 상당히 주의를 해야 한다는 거죠.]

여기서 말한 균총은 주로 대장을 중심으로 분포한 균 집합입니다. 최근 많이 거론되는 '마이크로바이옴' 내지는 '프로바이오틱스'와 같은 것들입니다. 프로바이오틱스는 면역항암제의 효과와 연관이 있습니다. 면역항암제에 반응이 좋았던 환자들은 특정 균이 많았다는 연구가 오래 전부터 이뤄졌습니다. 아커만시아 뮤시니필라(Akkermansia muciniphila), 박테로이데스 카카에(B. caccae), 유산균으로 유명한 비피더스균(Bifidobacterium) 등이 대표적입니다. 

최근 많이 출시되는 프로바이오틱스 건강기능식품도 이런 유익균을 많이 포함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식품 혹은 의약품으로 개발된 것들의 효과는 밝혀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이런 균을 먹어서 섭취하는 것이 실제 몸의 균 분포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균이 변화하더라도 원래 균이 많았던 사람과는 항암 효과에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암 환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는지 등은 거의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무작정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으면 항암에 좋다고 이야기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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