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품질로만! 세계 최고 캐시미어 고집[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로로피아나①
최근 ‘조용한 럭셔리’가 유행하면서 눈에 띄는 현란한 디자인보다 센스와 안목이 돋보이는 하이퀄리티의 소재를 사용하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캐시미어 제품을 입었을 때 포근함과 몸을 휘감는 부드러운 감촉, 보온성은 입어 본 사람만이 안다. 캐시미어는 공기를 가두어 추위로부터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하고 일정한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최근 전 세계에서 캐시미어 소비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10만원대의 SPA 브랜드(자사의 기획브랜드 상품을 직접 제조 유통하는 소매전문)에서부터 수백만원의 가격대를 호가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에 이르기까지 퀄리티 또한 천차만별이다. 캐시미어 소비가 늘어나자 오직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무자비한 동물 사육 방식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3~5월 염소 솜털에서만 얻을 수 있어
캐시미어는 카프라 히르쿠스 또는 캐시미어 염소의 솜털에서만 얻을 수 있는 희귀하고 귀한 섬유다. 이 염소들은 아시아의 산악지역, 특히 몽골과 네이멍구가 원산지다. 여름은 혹독하게 가물고, 겨울은 매서운 추위로 먹이와 물이 거의 없는 척박한 사막이 대부분인 곳에서 자란다. 작고 겁이 없는 동물인 캐시미어 염소는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친 겉털과 피부 사이에 매우 섬세한 섬유로 구성된 또 다른 솜털 층을 발달시켜 공기를 가두어 추위로부터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이 부드러운 한 층의 솜털이 캐시미어 소재가 된다. 염소를 키우는 농가에서는 지역 동물상을 온전히 존중하면서 자연적 주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3월과 5월 사이에 솜털을 채취한다. 기후가 비교적 온화한 이 시기에 추운 계절에 몸을 보호하던 부드럽고 따듯한 캐시미어 솜털이 자연적으로 빠진다. 방목하는 염소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산악지역의 염소들이 먹어 치우는 풀뿌리의 양이 많아져 몽골 초원은 생태계에 여러 문제를 가져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2009년부터 개발된 로로피아나 메소드 프로그램은 지속가능한 사육 및 목축 관행을 보장하기 위해 캐시미어 염소를 사육하는 지역사회에 이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중국 네이멍구의 알라샨 염소에서 얻은 캐시미어의 품질 저하를 방지하고, 이 지역의 생물 다양성과 동물종 특성을 보존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다. 2018년 로로피아나는 이 지역의 파트너와 함께 시범 농장을 만들고 캐시미어 염소를 키우기 시작했고,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3세대의 탄생을 보았으며, 캐시미어 품질 향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로로피아나는 2019년부터 중국에서 책임감 있는 캐시미어 공급망에 대한 인증 프로토콜을 정의하는 적극적 역할을 해왔다. 로로피아나는 ICCAW(국제동물복지협력위원회) 및 SFA(지속가능한 섬유연합)와 협력하여 표준 초안을 작성하고 6개의 시범 프로젝트 중 하나에 참여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2021년에는 첫 번째 캐시미어 배지 인증이라는 결실을 얻었다.
로로피아나는 1800년대 이탈리아 서북부 피에몬테 트리베로에서 모직물 판매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인 브랜드가 아니라 집안 전체 사람들이 모직물 사업에 종사하는 가문형 기업이었다. 1924년 피에트로 로로피아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좋은 파인 메리노 울을 제작해 판매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로로피아나 브랜드를 창업했다.
지금은 전 세계에 최고의 캐시미어를 공급하는 최고의 고급 브랜드이다. 1941년 피에트로 로로피아나의 조카 프랑코가 그 뒤를 이었고, 1970년대 이후에는 프랑코의 아들인 세르조와 피에르 루이지가 아버지의 경영권을 물려받아 3년마다 교대로 회사를 이끌었다.
단골 손님 아르노, 로로피아나 사들여
LVMH 회장인 베르나르 아르노와 그의 아들인 앙투안 아르노에게는 ‘여름 전통’이 있다. 이 여름 전통은 이탈리아의 호화로운 휴양지 중 한 곳인 포르토피노의 로로피아나 매장에 들러 폴로셔츠와 스웨터 등 로로피아나 제품을 쇼핑하는 것이다. 이 단골손님인 아르노는 결국 2013년 20억 유로를 들여 로로피아나 지분 80%를 사들였다. 이 인수 과정에서 로로피아나 가문이 요구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절대 스타 디자이너를 데리고 오지 말 것!” 이 얼마나 자신감 넘치며 멋진 조건인가. 그들은 오직 품질로만 말하고 싶어했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싶어했다.
파인 메리노 울 원단으로 유명한 로로피아나는 1992년 맞춤 양복점과 남성복 브랜드에 원단을 제공하며 한국에 진출했다. 필자도 디자이너 시절 로로피아나 원단의 우수성에 감탄하기도 했고, 높은 가격대에 사용을 망설이기도 했다. 로로피아나의 한국 매출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 해 100억원이 넘었다.
최고급 원단을 국내 남성복 브랜드인 로가디스, 더반, 닥스 등 업체와 소공동 외 맞춤 양복점에 공급하면서 한국 남성들의 럭셔리 취향을 만족시켜 주었다. 당시 로로피아나 양복은 한 벌에 300만원을 호가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부산시청에서 열린 부산 발전전략토론회에 참석했을 때 로로피아나 양복을 입은 모습이 노출되기도 했다.
피에르 루이지 로로피아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아함이란 그림이 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림이 된다는 것은 ‘풍경에 스며드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도드라지는 것은 결코 우아한 것이 아닙니다. T.P.O를 알고 함께 있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며 주위 풍경에 어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자료: loropiana com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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