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세상에 이런 법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벌써 7년 전 일이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제멋대로 종식시키려는 삼성전자에 맞서 시민단체 반올림이 1년 넘게 노숙 농성을 할 때였고, 나는 반올림의 상근 활동가였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 1981년에 제정되고 10년 가까이 방치되었다가 1980년대 말에 잇따라 터진 고 문송면 투쟁, 원진레이온 투쟁을 계기로 1990년에 처음 개정되었다.
이 법안 논의가 계속 진행된다면, 활동가들은 또 그것을 막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할지 모른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벌써 7년 전 일이다.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제멋대로 종식시키려는 삼성전자에 맞서 시민단체 반올림이 1년 넘게 노숙 농성을 할 때였고, 나는 반올림의 상근 활동가였다. 가까운 지인이 내게 말했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냐.” 그도 반올림의 싸움이 옳다는 건 알았지만, 어차피 이길 수 없는 무모한 싸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회운동 전반을 냉소하는 태도도 보였다. 당시 나는 “포기할 수 없는 싸움이고 다른 방법이 있지도 않다”라고 답했다. 다소 무기력한 답변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쉽다. 더 분명하고 힘 있게 말해야 했다. 당신이 잘 몰라서 그렇지, 이런 싸움이 실제 세상을 여러 번 바꾸어왔노라고.
지난해 나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제안을 받고 한 연구 과제에 참여했다. 국내 노동안전보건 법·제도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살피고 평가하며, 앞으로의 과제를 정리하는 연구였다. 관련 자료들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 7년 전을 떠올렸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겠냐?’는 투의 냉소는 세상이 정말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잘 몰라서 갖게 되는 마음일 뿐이라고, 다시금 생각했다.
노동관계법, 특히 노동자의 생명·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법들은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고된 투쟁들에 의해 쓰이고 고쳐졌다.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 1981년에 제정되고 10년 가까이 방치되었다가 1980년대 말에 잇따라 터진 고 문송면 투쟁, 원진레이온 투쟁을 계기로 1990년에 처음 개정되었다.
그 후로 또 20년 가까이 노동 현장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뒤처지다,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의 활동에 힘입어 2019년에 다시 전면 개정되었다. 2021년에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어떤가. 2020년 4월 이천 물류센터 화재 사고를 계기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운동본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갖지 못했을 법이다.
1963년에 제정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역사도 다르지 않다. 보험의 적용 대상과 보험급여 항목이 확대되고 산재 인정 범위와 절차가 개선되는 과정 곳곳에, 산재 피해를 입고도 방치된 사람들과 그들의 고통에 분노한 이들의 지난한 싸움이 있었다. 아무도 싸우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를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조직적이고 연속적인 활동을 사회운동이라 한다면, 그 운동의 주체가 된 사람들을 활동가라 부른다. ‘누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비교적 분명한 답을 갖고 있다. 활동가들의 꺾이지 않는 투쟁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내고 있다. 그들의 투쟁은 세상이 퇴보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아무도 싸우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 피해 유족을 포함한 활동가들이 국회 앞 단식농성까지 불사하며 만들어낸 법인데, 국회는 지금 그 법을 개악하려(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적용 유예를 연장하려) 하고 있다. 그래서 그 활동가들은 다시 국회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그뿐인가. 최근 국회 산자위는 지역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특정 지역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적용을 배제할 수 있게 하는 해괴한 법안(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 논의가 계속 진행된다면, 활동가들은 또 그것을 막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할지 모른다.
올해 우리는 총선을 치른다. 입법권을 가진 헌법기관(국회)의 구성을 정하는 매우 중요한 선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는 선거 결과에 따라 세상이 크게 후퇴할 수는 있어도, 그 결과만으로 세상이 크게 진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국회의원이 되고 어느 정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건, 사회운동과 활동가들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역할을 존중하고 그 중요성을 잘 아는 사람이 국회에 더 많이 가길 바랄 뿐이다.
임자운 (변호사)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