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더 낼래요”라는 대학생들…10년 넘게 동결하더니, 무슨 일

서정원 기자(jungwon.seo@mk.co.kr) 2024. 1. 2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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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등록금 심의위 회의
“우수한 교수·시설 원한다”
학생위원이 되레 동결 반대
교육부, 10년째 동결 기조
올해도 총선 앞두고 압박
대학 “찍히면 재정지원 손해
누가 먼저 올리나 눈치싸움만”
서강대 [사진 = 연합뉴스]
10년 넘게 지속돼 온 대학 등록금 동결 정책에 균열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부작용으로 대학교육 질이 악화하자 그간 인상을 반대해 온 학생들 사이에서도 찬성 의견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등록금 동결 정책 이후 물가부담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정부가 총선을 앞두고 동결·인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어 대학들 불만이 거세다.

최근 서강대학교가 공개한 ‘2024학년도 제1차 등록금심의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학생 대표 측에서 학부 등록금 인상 취지에 적극 공감하는 발언을 한 것이 눈에 띈다. 회의록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열린 회의에서 A 학생위원은 “학생들도 좋은 교수님들께 우수한 교육 환경에서 수업을 받고 싶은 심정”이라며 “등록금 인상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말했다. 등록금심의위원회는 이날 학부 등록금 동결안을 9명 중 6명 찬성으로 의결했지만, 교직원위원 1인, 학생위원 1인, 외부전문가위원 1인이 등록금 인상 필요성에 동감하여 반대했다고 밝혔다.

학생이 등록금 인상에 찬성하는 현상이야말로 지난 10여년 간 등록금 동결 여파로 대학 교육·연구·생활의 질 저하가 얼마나 심각한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등록금 인상률 제한규정의 입법영향분석’ 보고서를 발간하며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수입의 감소가 사립대학의 교육과 연구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립대학들이 연구비에 지출한 예산은 2011년 5401억원에서 2022년 4429억원으로 약 18% 줄었다. 같은 기간 실험실습비도 2163억원에서 1598억원으로 26%, 도서구입비는 1514억원에서 1128억원으로 25% 감소했다. 이해우 동아대 총장은 “학생들이 ‘등록금을 올리더라도 화장실 좀 고쳐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며 “강의실 빔프로젝터는 수리만 반복해 화질이 점점 떨어지고, 공대엔 실험 장비나 기자재가 낡았지만, 최신형으로 들여올 엄두를 못 냈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대학의 과도한 등록금 인상을 억제한다며 2010년 1월 ‘고등교육법’ 제11조를 개정하고 4월부터 시행했다. 등록금 인상률을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는 게 골자다. 2012년부터는 등록금을 동결·인하한 대학에게만 ‘국가장학금Ⅱ’ 재정지원을 하면서 사실상 등록금을 강제로 묶었고, 대부분 대학 등록금이 10년 넘게 제자리걸음하는 상황이다. 대학들 전체 등록금도 연 평균 0%대 인상에 머물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은 연 평균 1%대 후반을 기록하며 대학들 교육비 부담이 가중됐다.

특히 최근 3년 간 코로나19 당시 확장재정 여파로 물가상승률이 치솟으며 고등교육법에 따른 등록금 인상률 상한도 역대 최고인 5.64%를 기록했다. 최근 3년 간 연 평균 소비자물가상승률은 3.7%에 달한다. 이에 따라 각 대학들 셈법도 복잡해졌다. 과거엔 등록금을 올렸을 때 추가 수입보다 정부가 주는 ‘국가장학금Ⅱ’액수가 더 많아 동결했지만 이제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지난해 6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하계대학 총장 세미나에 참석한 전국 4년제 대학 총장 8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41.7%가 인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사립대 관계자는 “‘동아대 모델’이 우리 학교에도 적용되는지 검토 중”이라고 했다. 동아대는 지난해 학부 등록금을 3.95% 인상하며 13년 만에 동결 고리에서 벗어났다. 국가장학금Ⅱ 지원금 20억원을 못 받는 대신 50억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해 30억원의 여유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관건은 어느 대학이 올해 등록금 인상 첫 주자가 되느냐다. 서울대, 경북대, 국민대 등은 등록금을 동결했고, 다른 대학들은 서로 추이를 살피며 ‘눈치싸움’ 중이라고 한다. 총선을 앞두고 정부에 ‘미운 털’이 박혀 재정지원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혼자 올리면 등록금 부담에 학생 지원도 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말 ‘등록금 동결 기조 유지’와 ‘등록금 안정화 적극 동참’을 요청하고, 이례적으로 주요 대학에 전화를 걸어 등록금 동결 여부까지 확인하면서 각 대학들은 등록금 인상에 심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서강대 등록금심의위원회 B 교직원위원은 “형식상으로는 권고사항이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은 권고사항으로만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서강대 A 학생위원도 “현재 상황에서 우리 대학만 등록금 인상을 해서 이슈가 되는 것은 바람직해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 시내 한 사립대 총장도 “재정이 정말 어려워 등록금을 인상하긴 해야 하는데, 개별 대학이 (등록금 인상 후폭풍을) 대응하기에는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법률로 정해진 한도만큼 등록금 인상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정부가 국가장학금 2유형 지원과 등록금 인상률을 연계한 것은 법률에서 규정한 대학의 권한(법정 한도 내에서 등록금을 정할 수 있는 권한)을 제한한 것”이라며 “대학이 법정 인상률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정책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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