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학적 시계’ 비밀 풀면…환자 구하고, ‘영원한 젊음’도 넘본다
오가노이드 나이
성인질환 치료 목적 오가노이드
어른 수준 도달해야 활용도 커져
사람 장기에 달린 ‘발생학적 시계’
통합적 개체 발생의 비밀 풀어야
새해가 밝았다. 나이를 먹는 게 희망차고 좋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우울해질 사람도 있을 텐데, 이번에는 오가노이드의 나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장기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로부터 만든다.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하면 엄마 배 속에서 태아가 발생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겪으면서 장기 오가노이드를 만들 수 있다. 반면, 어른 장기에 존재하는 성체줄기세포를 채취·배양해 만들어낼 수 있는 오가노이드도 있다. 이런 경우는 장기 재생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오가노이드가 만들어지는데, 성체줄기세포는 이미 어른의 나이를 가진 것이므로, 만들어진 오가노이드도 성인 장기의 특성을 불완전하나마 가지고 있다.
사람 생년월일 모르면…
오가노이드는 잘 키우는 일만큼이나 생물학적 나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가노이드가 대부분 성인의 질환을 해결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배양된 장기 오가노이드가 몇살 정도로 성숙했는지를 알아야 각종 실험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를 사용하는 경우, 오가노이드는 배 발생 과정을 겪어야 하므로 배양한 날짜와 그 오가노이드의 나이가 얼추 일치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오가노이드의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사실 생년월일을 모르면 사람의 생물학적 나이를 측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혈액 검사, 세포의 텔로미어 검사(염색체 말단의 텔로미어 길이로 나이 측정), 디엔에이(DNA) 변성 검사(세포가 태어나서 겪은 과정이 기록된 디엔에이의 가변적 변화) 등을 종합해야 한다. 오가노이드의 경우도 비슷한 방법으로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데, 세포의 조성, 각 세포가 가진 유전자 발현 패턴, 후성유전학 패턴 등을 읽은 후에 이 결과들을 종합해 알아낸다. 뇌 오가노이드의 나이는 신경신호의 성숙 정도로도 파악이 가능한데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의 알리송 무오트리 교수는 2019년, 약 9개월 키운 뇌 오가노이드에서 신생아와 비슷한 신경신호를 검출한 바 있다.
오가노이드가 사람과 비슷하게 발생하고 늙어간다는 발견은 흥미로운 질문을 파생시킨다. 시험관에서 만들어지는 오가노이드도 태아 속에서 발생하는 장기와 비슷한 시간을 쓴다는 것은, 자체적으로 발생하는 시간을 인지해 조절하는 시스템이 사람 장기에도 있다는 말이 된다. 이걸 ‘발생학적 시계’(developmental clock)라고 하는데, 이 시계가 잘 맞아야 몸 각각의 발생에 필요한 시간이 비슷해져 통합적인 개체 발생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다. 사람과 달리 생쥐는 3주면 태어나고, 다시 3주만 지나도 젖을 떼고 사춘기에 접어든다. 이런 발생학적 시계의 차이 덕에 생쥐 배아줄기세포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면 3주 만에 사람 오가노이드를 반년 넘게 키운 것과 비슷한 정도로 성숙시킬 수 있다. 사람의 오가노이드가 느리게 발달하는 게 인간 특이적인 복잡성과 연관돼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데, 발생학적 시계에는 종 특이성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다. 이 시계의 실체가 뭔지 아직 과학자들은 잘 모르고 있고, 이 미스터리를 풀면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
아직 정답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연구자들이 이 질문에 근접한 연구 결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벨기에의 피에르 판데르하헌 연구팀은 생쥐와 사람 세포를 배양하면서, 기능적으로 유사한 정도로 분화된 세포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대사 능력과 대사 경로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이 보고됐다. 세포가 살아가고 성장하는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으로, 간단히 비유하면 생쥐는 가솔린 엔진을, 사람은 디젤 엔진을 장착하고 있는 셈이다. 연구팀이 약간의 ‘엔진 개조’를 해서 사람 세포에 ‘가솔린을 주입’했더니, 생쥐만큼은 아니어도 보통의 사람 세포가 성숙하는 것보다 2배 정도 속도가 빨라졌다. 반대로 생쥐 뉴런의 대사 속도를 낮추면 신경 성숙도도 느려졌다. 어떤 영양 및 대사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서 어느 정도는 신경 발달 속도가 조절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이 생쥐가 먹는 것을 따라 한다고 생쥐처럼 될 리는 없다. 그래서 이보다 더 결정적으로 발생학적 시계를 관장하는 생물학적 기제를 찾는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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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비밀’도 오가노이드로
오가노이드의 나이는 배양 속도 문제와 직결된다. 오가노이드를 어른의 장기와 비슷한 상태로 만들기 위해 그만큼 오랫동안 오가노이드를 키워야 한다면, 결과를 얻기도 전에 연구자는 은퇴해야 할 것이다. 또 내가 키우기 시작한 오가노이드를 수십년 뒤 다음 세대 연구자가 분석해야 할 텐데, 이 긴 시간 동안 결과도 모르고 별 보상도 없이, 부모의 마음으로 일생을 바쳐 오가노이드를 지켜보고 키우는 게 가능할까? ‘역청(타르) 낙하 실험’은 인류가 수행 중인 가장 느린 실험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상온에서 거의 고체처럼 보이는 역청이 실제로는 점도가 높은 액체임을 보여주기 위해 중력에 의해 떨어지게 하는 이 실험은 1930년에 시작돼 아직도 진행 중이라고 한다. 물론 이건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되는 실험이다. 하지만 생명체 특성을 가진 오가노이드 배양은 사람이 계속 돌봐주어야 하기 때문에 그 노력의 정도가 다르다.
뇌 오가노이드로 치매나 파킨슨병 등 노인성 질환 모델링 연구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보다는 나은 연구 방법이긴 하지만 노화 상태를 반영하지 않은 뇌 오가노이드 연구의 한계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오가노이드 활용 수준을 높이기 위해 발생학적 시계 문제를 해결해 오가노이드 성숙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이유다.
발생학적 시계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선 생물학적 방법으로 조작을 가하는 일련의 실험을 해야 하는데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간 장기 오가노이드는 최소한 이런 실험을 해볼 수 있는 훌륭한 재료가 된다. 이런 실험과 노력이 쌓이면 발생학적 시계의 실체를 파악하게 되고 결국 사람의 발생과 노화를 조절하는 게 가능해질 수 있겠다. ‘영원한 젊음’을 가져다 주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연구실 배양기 안에 있는 오가노이드들도 한살 더 먹었다. 2024년 모두 원하는 만큼만 생물학적 나이를 먹었으면 좋겠다. 다들 행복한 한해가 되시길.
고려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어릴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집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발생학에 관심이 생겨 신경발생학 분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첨단기술의 과학’, ‘생물학 명강 3’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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