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겨울왕국’ 청양 알프스마을···나무마다 핀 얼음꽃처럼 동심 활짝

이윤정 기자 2024. 1. 2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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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마다 30만명 발길···16년째 이어지는 ‘칠갑산 얼음분수축제’
칠갑산 얼음분수축제를 찾은 어린이가 얼음 조형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윤정 기자

마을은 하늘에 맞닿았다고 해서 ‘천장(天庄)’이라 불렸다. 하늘과 가까운 만큼 산기슭 마을엔 겨울이 빨리 찾아왔고 늦게까지 머물렀다. 늦가을 얼기 시작한 눈은 봄볕이 으늑히 드리우기 전까지 녹지 않았다. 어느 겨울날 마을 주민은 나무에 핀 얼음꽃이 예술품처럼 보였다. 자연스럽게 마을을 ‘천연 겨울왕국’처럼 꾸며보자는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얼음 조각을 다듬고, 눈밭에 놀거리를 만들었다. 마을 이름도 천장리에서 ‘청양 알프스 마을’로 바꿨다. 얼음축제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한 해 30만명이 찾는 지역 대표 축제로 성장했다. 올해로 16년째 이어지고 있는 칠갑산 얼음분수축제다.

“이상기후 대비해 축제 준비”
칠갑산 얼음분수축제. 이윤정 기자

칠갑산 산길을 돌아나서자 호젓했던 분위기가 들썩하게 바뀌었다. 평일 오전인데도 청양 알프스 마을 주차장에는 수십대 차량의 행렬이 이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축제 현장에 나와 방문객을 분주하게 맞이했다. 축제장 입구부터 고구마, 밤 굽는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마을은 겨우내 잔치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축제장으로 들어서자 설국이 펼쳐졌다. 얼음갑옷을 두른 나무들이 계곡에서 위용을 뽐냈다. 반대편 길목엔 캐릭터 모양의 얼음 조각들이 카메라 셔터 세례를 받고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이글루에 들어서면 예술 얼음 조각과 화려한 조명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산책로는 얼음 왕국답게 눈으로 뒤덮였고, 사람들은 미끄러지지 않으려 서로 손을 잡고 겨울 분위기를 만끽했다.

얼음분수축제 이글루에 안에 얼음 조각과 화려한 조명이 설처돼 있다. 이윤정 기자

즐길거리도 가득했다. 얼음썰매, 눈썰매, 얼음봅슬레이 등 놀이 시설은 다양한 경사로의 썰매장으로 구성됐다. 연령대별로 겨울 체험을 선택해 즐길 수 있다. 손주와 함께 3대가 나들이에 나선 가족부터 인생 사진을 남기려는 2030세대까지 방문객의 면모도 다양했다. 짚트랙, 빙어낚시 , 맨손빙어잡기 등 가족·연인이 함께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도 준비됐다. 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고구마, 밤 등도 구워 먹을 수 있다.

2008년 처음 얼음축제 아이디어를 낸 알프스 마을 황준환 대표는 “농촌이라 겨울에 일거리가 없어서 고민하던 차에 겨우내 눈이 녹지 않는 환경을 활용하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버섯 재배용 참나무 목재에 물을 주려 분수처럼 자동 모터를 틀어놓았는데 물줄기가 얼면서 작품처럼 변해 있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설명했다. 마을 주민 80여명은 알프스영농조합법인을 꾸려 축제 수익금을 나누고 남는 자금은 재투자와 기부 등을 하고 있다.

칠갑산 얼음분수축제 이글루 안에 마련된 얼음조각. 이윤정 기자

성공한 축제로 매년 겨울 잔치를 벌이지만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년 심해지는 이상기후 현상 때문이다. 한반도 겨울철 날씨의 대표적 특징으로 알려진 ‘3한4온’은 사라진 지 오래다.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거나 혹한의 날씨가 연달아 이어지는 등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황 대표는 “눈이 덜 오거나 따스한 날이 오래 이어질 경우를 대비해 추운 날 얼음을 최대한 많이 얼려 겨울축제를 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칠갑산 얼음분수축제에서 방문객들이 눈썰매를 타고 있다. 이윤정 기자
영롱한 천장호와 영험한 칠갑산

칠갑산 기슭에 위치한 청양 알프스마을은 천장호까지 산책로로 연결된다. 얼음축제로 흥을 돋웠다면 천장호 산책로를 걸으며 감성을 채우기 좋다. 천장호 출렁다리에서 마을까지 덱으로 조성된 산책길은 마치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서 ‘알프스 하늘다리 산책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천장호 출렁다리는 길이 207m, 폭 1.5m, 높이 24m 규모다. 청양의 특산품인 청양고추와 구기자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 존재감을 뽐낸다. 천장호 출렁다리는 수면에 가깝게 붙어있어 출렁이는 구간을 걸을 때는 마치 배 위에 있는 느낌이 든다. 다리의 중간 지점을 지날 때 상하좌우로 30∼40㎝ 흔들리도록 설계됐다.

천장호 출렁다리에 청양고추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이윤정 기자

영롱한 풍광을 자아내는 천장호는 ‘청양 10경’ 중 하나지만 지금의 모양을 갖춘 것은 근래 들어서다. 농경지 관개용 저수지로 1979년 축조됐다. 만수면적이 24.1㏊(7만2000평)에 달하는 인공 호수다. 천장호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는 2009년 완공된 이후 지역 명물로 떠올랐다. 2017년 한국기록원으로부터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로, 동양에서는 두 번째로 긴 현수교로 인증받았다. 그러나 이후 전국 각지에 더 긴 출렁다리가 생겨났다. 현재 국내 최장 출렁다리는 강원 원주 소금산 출렁다리(404m)인데, 대청호를 가로지르는 출렁다리(411m)가 2025년 완공되면 1위 타이틀을 뺏을 예정이다.

그래도 천장호 산책로는 청양과 칠갑산 방문객에게 필수 코스다. 지역의 옛이야기를 이곳에서 모두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장호 주변에는 시집간 딸을 위해 700일을 정성 들여 기도한 끝에 태어난 아이가 거란족으로부터 고려를 구한 용호장군이 됐다는 전설이 담긴 ‘칠갑산 소원바위(용호장군 잉태바위)’, 칠갑산 용과 호랑이의 전설을 다룬 테마 조형물, 콩밭 매는 아낙네상 등이 조성돼 있다. 또 출렁다리보다 더 스릴 넘치는 어드벤처 놀이시설도 있다. 그물망 다리와 타워를 건너는 177m 무료 체험시설 ‘네트 에코 워크’다. 인디아나존스 코스 등 5개 코스의 최대 높이는 10m에 달한다. 시설 관계자는 “출렁다리보다 더 짜릿하다”고 소개했다.

칠갑산과 천장호 풍경. 이윤정 기자

시간이 넉넉한 방문객은 칠갑산에 오르는 것도 좋다. 1973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면적은 32.542㎢로 여의도 면적 4배 정도 크기의 산이다. 예부터 영험한 산으로 이곳에서 제천의식이 행해졌다. 산 이름은 일곱 가지 천지만물을 뜻하는 ‘칠’과 육십갑자의 첫 글자인 ‘갑’을 따왔다는 설부터 깊은 계곡들이 휘돌아가며 명당 일곱 개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청양의 기운은 칠갑산의 영험함에서 온 것은 아닐까. 3만 명이 사는 작은 군이 겨울마다 수십만 명을 겨울왕국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알고 가세요

·칠갑산 얼음분수축제 입장료는 9000원이다. 썰매장 이용료는 별도로 2만9000원을 받는다. 포털사이트 예매나 ‘청양투어패스’ 구매 시 할인받을 수 있다. 기존 24시간권인 청양투어패스(9900원)를 48시간권으로 늘린 패키지(1만5900원)를 구매하면 칠갑산 얼음분수축제까지 즐길 수 있다. 청양투어패스는 군 내에 있는 유료 관광지(5개소) 무료입장과 카페(13개소) 아메리카노 무료 혜택을 제공한다. 칠갑산 얼음분수축제는 2월18일까지 이어진다. 축제장 내 산책로는 눈과 얼음이 섞여 매우 미끄럽다. 눈길에서도 잘 미끄러지지 않는 방한화를 신고가는 것을 추천한다.

칠갑산 얼음분수축제. 이윤정 기자

청양|글·사진 |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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