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사장님"…늘어나는 고학력 N잡러
힘들게 취업한 MZ "연봉·근무환경 실망 커…부업 여건 더 편해져"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대기업 회계팀에서 일하고 있는 송모씨(36)는 퇴근하면 자영업자로 변신한다. 친구들 4명과 돈을 모아 차린 프랜차이즈 술집 점포만 벌써 3개째다.
낮에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술집을 운영하느라 하루에 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이 4시간 밖에 안 되지만 오히려 부업할 때 더 힘이 난다고 한다.
송씨는 "자본을 모아 식당 여러 개를 운영하며 자유롭게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목표"라며 "사업이 안정되면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밤마다 사무실 정기청소 부업을 하고 있는 신모씨(42)도 본업은 대기업 회사원이다. 신씨는 "준비한 사업에 도전하기 전에 본업을 유지하며 가능성과 리스크 체크를 위해 부업 형태로 일을 병행 중"이라고 했다.
신씨는 "추가 수입을 목적으로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는 것이 아니라서 금전적인 변화는 크게 없지만, 미래 비전을 위해 내가 직접 현실과 부딪히며 성장하고 있다는 확신에 자존감이 많이 올라갔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자리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부업을 병행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이른바 '투잡러', 'N잡러'라는 용어가 자주 쓰인다. 특히 소득이 비교적 높은 편인 대기업 근무자 등 고학력자 사이에서 N잡러가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7일 한국노동연구원이 한국노동패널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한 '복수 일자리 종사자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복수일자리 종사자 비중은 지난해 전체 취업자의 2.0%였다.
학력별로 보면 대졸자 비중이 2018년 24.6%에서 2022년 26.7%로 증가했고, 대학원 이상 졸업자 비중도 같은 기간 3.7%에서 4.1%로 늘어났다. 반면 고졸 미만 비중은 20.8%에서 17.4%로 감소했다.
고학력 N잡러들이 많아진 배경에는 불안정한 경제와 고용 상황으로 인해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이 과거에 비해 약화된 때문이다. 여기에 기업들의 대우나 근로환경이 고학력자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신씨는 "한 직장에서 원치 않는 일로 평생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며 "직업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그 안에서 내게 가장 맞는 일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과거보다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하나의 일자리에 소속감을 갖고 자기 생활을 꾸려나갔던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주된 일자리가 불충분하거나 불안정해지다 보니까 소득원과 미래 대비를 위한 보완책으로 부업을 찾는 경우가 많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또 "MZ세대의 경우 열심히 취직 활동을 하고 취업을 했는데 처음에 기대했던 바와 현실이 달라 실망이 클 수도 있고, 또는 자기 개성을 살려 유튜브 등 SNS 활동을 즐기기 위해 부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7월7일~10일 전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N잡러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1.5%는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것은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데 동의했다.
아울러 N잡을 하는 주된 이유로는 △추가 수입으로 여유 자금 마련(45.9%, 중복응답) △젊었을 때 남들보다 한 푼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27.0%)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25.8%) 등 경제적 여유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많이 꼽혔다.
온라인 쇼핑몰 사업을 하는 구모씨(40)는 "물가와 금리 상승 등 전반적인 경제적 불안감 때문에 부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구씨는 평소 그림 실력을 살려 프리랜서로 의류 디자인 일을 병행하고 있다.
대기업 회사원 권모씨(39) 역시 "주수입 인상률이 물가 인상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부업으로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부담이 덜해졌다"고 했다.
내년 초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김모씨(59)에겐 부업이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새로운 '생계수단'에 가깝다. 현재 직장에 허락을 받고 공인중개사를 겸업하고 있는 김씨는 "먹고 살기 위해" 부업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기업도 최근에는 임금 인상률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보다 높지 않아 쪼들린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많다"며 "또 자율근무제 등 노동시간 유연성이 과거보다 높아져 부업을 더 편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도 했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다만 아직까지는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소상공인 등 주된 일자리가 충분한 수입을 보장하지 않아 대리기사나 배달원 등으로 일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며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적 보장제도가 탄탄해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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