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과 과학]① ‘25도’ 정말 최고의 발효온도일까
술의 맛과 향에 따라 저온 발효가 적합할 수도
“발효 보관 온도는 24도에서 26도 사이. 대략적으로 온도가 맞았다면 6일 걸립니다.”
한국 요식업의 큰 손으로 불리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막걸리에 대한 애정이 지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직접 소규모 양조장을 설립해 백걸리라는 이름의 막걸리도 만들고 있다. 구독자만 600만명이 넘는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막걸리를 빚는 방법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영상에서 백 대표는 막걸리의 적정 발효 온도를 24~26도로 소개한다.
백 대표 외에도 많은 사람이 공통적으로 우리 술의 적정 발효 온도를 ‘25도’로 제시하고 있다. 왜 그럴까. 전통주 전문가인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지방농업연구사는 “25도가 미생물인 효모가 생존하기 좋은 온도 범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쌀을 이용해 술을 빚으려면 쌀에 있는 전분을 당으로 분해해야 한다. 우리 술은 누룩을 이용해 전분을 당으로 분해하는데, 누룩에 들어 있는 효모가 전분에서 분해된 당을 소비해서 알코올 발효를 일으키는 핵심 역할을 한다. 효모가 얼마나 잘 살아서 움직이느냐에 따라 발효의 성패가 결정된다. 이 연구사는 “발효할 때 온도가 30도가 넘어서면 효모의 활력이 서서히 떨어지고 유산균이나 젖산균 같이 불필요한 미생물들이 활발하게 자란다”며 “발효 온도가 정해진 건 아니지만 효모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는 온도가 25도에서 30도 사이이기 때문에 25도를 보통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연구사는 25도가 정답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원료와 물의 양, 발효 기간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술의 맛이 달라지는 만큼 양조장이나 술을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발효 온도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발효온도에 따라서 술의 맛과 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아보는 여러 실험과 연구를 진행했다. 전남대 농업과학기술연구소 연구진은 ‘발효온도가 진양주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청주인 진양주의 적정 발효온도를 찾기 위한 실험 결과를 소개했다. 진양주는 전남 해남에서 찹쌀을 원료로 써서 만든 우리 술이다. 전남대 연구진은 10도, 15도, 20도, 25도로 각각 발효온도를 달리해서 진양주를 만들었고 이후 pH, 총산, 총당, 에탄올 함량, 색도 등을 비교했다.
결과를 보면 발효온도 10도와 15도, 20도와 25도 사이에 큰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다. 발효온도 10도와 15도의 시험구의 경우 총산의 변화가 천천히 진행됐고, 산도도 낮게 나타났다. 진양주의 감미와 산미에 영향을 주는 주요 성분인 유기산은 10도와 15도에서 낮게 나타났다.
반면 발효온도 20도와 25도에서는 신맛이 강하게 나타났다. 총당의 함량은 발효온도 20도와 25도의 시험구가 10도, 15도보다 낮게 나타나 역시 풍미가 낮았다. 연구진은 “관능검사에서도 종합적인 기호도가 발효온도 15도에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10도, 20도, 25도의 순서였다”며 “진양주에서는 발효온도 10도와 15도가 품질에 더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결국 산미는 높고 당도는 낮은 20도와 25도는 관능에서 낮은 점수였으면 산미가 낮고 당도가 높았던 10도, 15도가 관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것이다.
흔히 알려진 우리 술의 적정 발효 온도는 ‘25도’인데, 왜 ‘20~25도가’ 맛없는 발효 온도라는 연구 결과가 나온 걸까. 서울 은평구의 우리 술 양조장인 ‘온지술도가’를 운영하는 김만중 대표는 “25도는 효모에게 적정한 온도이지 술에 적정한 온도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효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수록 다양한 맛과 향이 나온다”며 “흔히 알려진 25도는 술을 빨리 만들기 위한 적정 온도고, 술의 맛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다른 온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가 찾은 온도는 18도다. 25도보다 낮은 저온 발효를 택한 대신 발효 기간을 훨씬 길게 가져갔다. 앞서 백 대표는 ‘25도에서 6일’이라고 했지만, 김 대표는 ‘18도에서 두달 반’을 발효하고 있다. 실제로 온지술도가 한 켠의 발효실에 들어서자 온도계가 17.5도를 알리고 있었다. 김 대표는 “고온에서 짧게 빚은 술은 맛과 향이 풍부하지 않고 보존도 오래하기가 어렵다”며 “반면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한 술은 향이 좋고, 장기간 보관해도 변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온 발효에서 술의 맛과 향이 두드러진다는 건 다른 연구 결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과 전남대 농업생명대학 친환경농업센터 연구진은 “10~15도의 저온발효는 술의 1차향의 손실을 방지하고 2차향의 합성을 증가시키는 등 긍정적인 요소가 있다”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 저온적응성이 좋은 종균효모를 제시하기도 했다.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의 융합산업학과 발효식품·양조학 전공인 이상현씨의 석사학위 논문 ‘발효온도를 달리한 멥쌀과 찹쌀 약주의 발효와 품질 특성 연구’를 보면 멥쌀과 찹쌀약주 모두 발효온도가 낮을수록 알코올이 천천히 생성되고 완만하고 지속적인 발효가 일어났다. 이씨는 발효온도를 10도, 18도, 25도로 달리해서 비교했는데, 고온일수록 당화가 빠르게 일어나면서 발효가 빨리 끝났고, 발효 후반에 효모가 활성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발효온도가 낮을수록 pH는 낮게 나타나 유해세균으로부터 안전한 발효에 도움이 되고, 유기산과 휘발성 향기성분의 조성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펴낸 ‘탁·약주 개론’도 저온 발효의 장점으로 “알코올이 많이 휘발되지 않아 최종 알코올 함량이 높고 향기도 덜 손실된다”며 “탄산 함량이 증가해 청량감을 높일 수 있으며 향미가 부드럽고 온화하게 형성된다”고 밝혔다.
이런 저온 발효의 장점을 살린 우리 술은 이미 적지 않다. 김만중 대표의 온지술도가뿐만 아니라 여러 양조장이 저온 발효를 고집하고 있다. 프리미엄 막걸리의 대명사인 해창주조장의 해창막걸리 역시 저온 발효와 숙성을 17도에서 진행하고 있고, 국내 누룩명인 1호로 유명한 한영석발효연구소의 청명주도 13.5도에서 저온 발효를 한다.
저온 발효의 장점이 분명한 데도 ‘25도’라는 온도가 널리 알려진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빨리 대량으로 술을 빚는데 최적화된 온도가 25도라고 설명한다. ‘탁·약주 개론’에서도 23~28도의 고온 발효는 품온을 적정하게 유지만 해주면 알코올 수득량이 많다고 설명한다. 과거 냉난방 시설이 변변치 않았던 시대에는 25도의 상온을 유지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었다는 설명도 있다. 많은 양조장이 25도에 맞는 제조법을 찾으면서 저온 발효만큼이나 다양한 맛과 향을 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연구사는 “25도에서는 일주일이면 알코올을 뽑아낼 수 있는데, 10도에서 발효를 진행하면 석달씩 걸리기도 한다”며 “술을 만드는 데 정해진 발효 온도라는 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각자의 스타일대로 맛있는 발효 온도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참고자료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 https://doi.org/10.11002/kjfp.2015.22.6.908
한국식품과학회지,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200603042162447.page
한국식품저장유통학회, https://doi.org/10.11002/kjfp.2016.23.5.666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홍콩 부동산 침체 가속화?… 호화 주택 내던지는 부자들
- 계열사가 “불매 운동하자”… 성과급에 분열된 현대차그룹
- 삼성전자·SK하이닉스, 트럼프 2기에도 ‘손해보는 투자 안한다’… 전문가들 “정부도 美에 할
- [르포] 일원본동 "매물 없어요"… 재건축 추진·수서개발에 집주인들 '환호'
- 10兆 전기차 공장 지었는데… 현대차, 美 시장에 드리워진 ‘먹구름’
- [인터뷰] 전고체 날개 단 CIS “캐즘으로 시간 벌어… 소재·장비 ‘두 마리 토끼’ 잡는다”
- “美FDA 승인 받았는데 회사 꼼수에 주가 곤두박질”... 분노한 개미들, 최대주주된다
- [르포] “혈액 받고 제조, 36시간 안에 투여” 지씨셀 세포치료제 센터
- [과학영재교육 갈림길]④ 김성근 포스텍 총장 “문제풀이 숙련공 거부…370명 원석 뽑겠다”
- 비트코인 급등에 엘살바도르, 90% 수익 '대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