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이슈] 긴축하면서 돈도 푸는 한은?… 금융중개지원대출을 둘러싼 상반된 시선
조윤제 금통위원은 반대… ‘긴축 기조와 배치’
한국은행이 취약업종·지방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9조원 규모의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을 사용하기로 했다.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자금 사정과 조달 여건이 어려워지는 기업을 선제적으로 지원하는 조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시중 통화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긴축 기조와 배치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연 3.50%로 8연속 동결하면서 그간 한도 유보분으로 뒀던 9조원 규모의 금중대를 취약업종과 지방 중소기업 지원에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39조8000억원이었던 금중대 지원 한도를 작년 11월 말 30조원으로 낮추면서 남겨둔 유보분을 새해 첫 금통위 의결을 통해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 유보분 9조원 투입해 지방 中企 저리대출 지원
금중대는 한은이 시중은행에 저리로 돈을 빌려주고, 이를 중소기업 대출에 활용하도록 한 제도다. 개별 은행이 먼저 차입자에게 대출을 해주면, 그 실적대로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해 각 은행에 자금을 내주는 사후대출 방식을 쓴다. 시중은행은 기준금리 3.5%보다 낮은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릴 수 있고, 중소기업은 저렴한 비용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금중대는 ▲무역금융지원 ▲신성장·일자리지원 ▲중소기업대출안정화 ▲지방중소기업지원 등을 목적으로 한 대출에 사용된다. 목적별로 정해진 한도 내에서만 자금을 운용해야 한다. 현재 무역금융지원은 1조5000억원, 신성장·일자리 지원은 13조원, 중소기업대출안정화는 3000억원, 지방중소기업지원은 5조9000억원이 지원 한도다.
만약을 대비해 예비비 성격의 한도 유보분을 확보하기도 한다. 한도 유보분은 금통위 의결을 거쳐 사용할 수 있다. 지난 2022년 한은은 총 19조1000억원 규모의 한도 유보분을 확보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기업 지원 ▲소상공인 지원 ▲재해복구특별지원 등에 썼다. 한도 유보분을 포함한 총 대출한도는 39조8000억원이었다.
지난달부터는 기존에 한도 유보분으로 썼던 3가지 사업 중 재해복구특별지원을 뺀 2가지 사업을 종료했다. 총 한도는 30조원으로 낮추고 한도 유보분으로 9조3000억원을 책정했다.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에 접어들면서 지원 규모를 조정한 것이다. 이 중 3000억원을 재해복구특별지원 목적으로 남겨두기로 했고, 나머지 9조원은 용처가 정해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이번 결정으로 한은은 잔여 한도 유보분 9조원을 지방 중소기업 대출지원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대상기업은 다음달부터 7월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지원받은 돈은 내년 8월까지 상환해야한다. 9조원 중 지방 중소기업에 7조2000억원, 서울에 1조8000억원이 투입된다. 은행은 한은으로부터 연 2.00% 금리로 자금을 대출받는다.
◇ ‘긴축 기조와 배치’ 우려도… 금통위원 일부 반대
한은은 한도 유보분을 사용하는 것이 작년 초부터 시작된 긴축 기조를 장기간 지속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부문과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금중대가 긴축 기조의 부작용을 최소화해 통화정책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1일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금리인하를 논의하기엔 시기상조인 상황에서 고금리의 부정적 영향이 취약업종과 지방소재 중소기업에 차별적으로 크게 파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들에 대한 선별적이고 한시적인 지원을 통해 고금리 정책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근 한은의 통화긴축 기조와는 배치된다고 우려한다. 내년 8월 자금이 회수되기 전까지는 시중에 통화량이 풀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중 유동성이 4000조원에 달하는 만큼 금중대 한도 유보분으로 풀리는 9조원이 큰 금액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시장에는 금중대 확대를 계기로 한은이 긴축 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될 수 있다.
금통위원 중 조윤제 위원도 이 같은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중대 지원이 자칫 한은의 정책기조와 다른 완화적 신호를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정 금통위원들의 견해가 공개적으로 제시되는 것은 이례적이다. 한은 안팎에선 조 위원이 반대 의견을 강하게 제기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은 기본적으로 정책금융의 성격을 가지면서 동시에 통화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는 수단”이라면서 “무분별하게 시행하면 시장을 교란하는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가급적 정책의 목적에 맞게 제한된 범위에서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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