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키오스크와 사투…69세 이씨의 고단한 외출[현장]

이태성 기자 2024. 1.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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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서비스 익숙지 않은 고령층
젊은세대 비해 시간·비용 모두 손해
"디지털기술에 뒤처져 인생 허비해"
설 기차표 구매는 결국 포기하기도
[서울=뉴시스] 이태성 기자 = 16일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한 주민센터에서 이총우(69)씨가 증명서를 발급받고 있다. 2024.01.16. victory@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태성 기자 = "디지털 기술에 뒤처져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으니, 결국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요. 무인 안내기 사용이 어려우니 한나절을 투자해도 볼일을 하나도 못 볼 때가 많더라고요. 아주 답답하죠"

20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식당과 카페, 공공기관을 가리지 않고 무인 안내기(키오스크) 도입이 늘며 디지털 기기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 일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뉴시스는 지난 16일 이총우(69)씨의 일상을 함께했는데, 비대면 업무가 서툰 그는 젊은 세대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거나, 아예 키오스크 사용을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씨는 한나절 동안 5곳에서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데 총 2시간24분과 3400원을 들여야 했는데, 20대인 기자는 비용을 들이지 않고 15분 만에 같은 업무를 끝낼 수 있었다. 디지털화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고령층은 시간과 비용 모두에서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오전 9시께 이씨는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노인 일자리 사업에 필요한 증명서 발급을 위해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주민등록등본 1부를 발급하는 데 16분이 걸렸고, 400원을 썼다. 행정서비스 포털 정부24를 이용했을 땐 무료로 4분 만에 발급이 가능한 서류였다.

설맞이 온누리상품권을 살 때도 은행을 직접 방문하니 32분이 걸렸지만, 스마트폰에서는 모든 절차가 5분 만에 끝났다. 이씨는 "요새 대형 은행들도 창구에 직원이 2~3명밖에 없고, 지점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대면) 창구를 꼭 이용해야 하는 노인들은 은행 업무 보기가 무척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서울=뉴시스] 이태성 기자 = 16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에서 이총우(69)씨가 설 기차표 구입을 문의하고 있다. 2024.01.16. victory@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은행에서 나온 이씨는 3주 앞으로 다가온 설날을 맞이해 고향을 방문하기 위한 기차표를 끊기 위해 동대문구 청량리역을 찾았다. 1시간20분 동안 교통비 3000원을 들여 발품을 팔았지만 끝내 표를 구하지 못했다. 원하는 차편은 이미 매진된 탓이다.

창구 직원은 "인터넷으로 취소 표를 예약하라"고 안내했으나 이씨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이나 인터넷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서다.

표를 구매하기 위해 역사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도 걸어봤지만, 멤버십 번호를 입력하라는 자동응답시스템(ARS)에서 막혀 통화에 실패했다. 그는 "전화로는 이렇게 상담 자체가 불가능하다"며 "무조건 (직접) 와서 물어봐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고 했다.

오전 일정을 끝낸 이씨는 점심 식사를 하러 찾은 식당에서도 주문 키오스크 앞에서 애를 먹어야 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발표한 외식업체경영실태조사에 따르면, 외식업체의 키오스크 사용률은 2020년 3.1%, 2021년 4.5%, 2022년 6.1%로 2년 새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씨가 키오스크로 국수 한 그릇과 커피 한 잔을 주문하는 데 걸린 시간은 7분. 그마저도 다른 손님의 도움을 받아 가능했다. 옆의 키오스크를 이용하던 한 젊은 남성은 메뉴 선택부터 결제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서울=뉴시스] 이태성 기자 = 16일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한 카페에서 이총우(69)씨가 무인 안내기(키오스크)로 음료를 주문하고 있다. 2024.01.16. victory@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집에서 저녁을 요리해 먹기 위해 들린 대형마트에서도 이씨는 한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무인 계산대에는 대기 줄이 없어 여러 고객들이 도착하자마자 결제를 시작했지만, 그를 비롯한 대다수 어르신 고객들은 점원과 대면 결제를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이씨가 8개의 품목을 계산하는 데 8분이 걸린 반면 무인 계산대에서는 비슷한 물건 계산을 3분 만에 마쳤다.

그는 "무인 기계로는 계산해 본 적이 없어서 아무래도 생소하고 답답하다"며 "뒤에 줄이 생기면 더 부담감도 느끼고 바쁜 직원한테 물어보기도 미안해서 웬만하면 익숙한 (대면) 방식으로 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이태성 기자 = 16일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한 대형마트에서 이총우(69)씨가 물건을 구매하고 있다. 2024.01.16. victory@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노인 디지털 소외는 노인 인구 급증과 맞물려 사회 문제로 대두됐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말 기준 70대 이상 인구가 20대 인구 수를 추월했다고 밝혔다. 이는 주민등록 인구통계 집계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분당서울대병원이 지난 16일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79세 미만 노인 중 63.2%는 스스로 스마트폰 앱을 설치하거나 삭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디지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현재 기술 습득 격차에 따라 불평등, 즉,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며 "개별 사업장이 앞장서 (디지털) 역량이 떨어지는 노령층에 기존에 제공하던 대면 서비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victory@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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