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이광수, 홍명희, 김동인, 이기영...스타 작가들이 펼친 ‘신문소설 올림픽’
‘실로 신문이 있은 후 이렇게도 화려찬란하고 다산적인 신문소설 범람시대를 연출한 일이 있은 것 같지 않다.’
스물 다섯 문인 기자 김기림이 1933년 잡지 ‘삼천리’ 신년호에 당대 인기 신문소설을 해부하는 평론을 썼다. ‘신문소설 올림픽시대’. 이 땅에 신문이 생긴 이래, 연재소설이 이렇듯 화제를 모을 만큼 쏟아져나온 적이 있는가 하는 감탄조로 시작한다.
그도 그럴 만했다.당시 조선일보는 홍명희의 ‘임꺽정’(연재 제목은 ' 林巨正傳'), 최독견의 ‘명일’(明日), 동아일보는 이광수의 ‘흙’, 방인근의 ‘마도(魔都)의 향불’, 중앙일보(조선중앙일보 전신)는 염상섭의 ‘백구’(白鳩)를 연재중이었다. 김동인도 ‘매일신보’에 ‘해는 지평선에’를 실었다. 이광수, 홍명희, 염상섭, 김동인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매일 창작 소설로 경쟁하고 있으니 ‘신문소설 올림픽시대’란 말이 나올 법했다.
◇1930년대는 신문 소설 전성기
1930년대는 신문 소설의 전성기였다. 김기림이 글을 쓴 시점은 1932년 12월인데, 1930년대 중반이 되면 연재소설 목록은 더 화려해진다. 조선일보는 1933년 4월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4월26일~1934년2월17일·197회)을 필두로 채만식의 ‘인형의 집을 나와서’(5월27일~11월14일·150회), 춘원 이광수의 ‘유정’(9월27일~12월31일·76회), 이기영의 ‘고향’(11월15일~1934년9월21일·252회)을 연재했다. 1932년 12월 연재를 재개한 홍명희의 ‘임꺽정’까지 있었으니, 당대 내로라하는 문단 스타들이 매일 필력을 겨뤘다.
1933년 10월4일자 신문을 보면, 조간 3면하단에 김동인 ‘운현궁의 봄’, 4면 하단에 홍명희 ‘임거정전’, 7면엔 채만식 ‘인형의 집을 나와서’가 실렸고, 석간 3면엔 이광수의 ‘유정’이 실렸다. 11월14일 채만식 소설 연재가 끝나자, 다음날 조간 7면엔 이기영의 ‘고향’이 뒤를 이었다. 조간 3편, 석간 1편 연재 체제는 거의 한해 내내 지속됐다. 지면을 넘길 때마다 김동인, 홍명희, 채만식, 이기영, 이광수가 차례로 등장하는 신문소설의 황금기였다.
동아일보도 1934년 강경애의 ‘인간문제’(8월1일~12월22일·총 120회)에 이어 1935년 심훈의 ‘상록수’(9월10일~1936년2월15일·127회)가 주가를 올렸고, 여운형이 이끈 조선중앙일보는 1934년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8월1일~9월19일·32회)을 실었다. 1920년대 꽃피우기 시작한 근대 소설이 1930년대 신문 연재를 통해 벼락치듯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연재소설이 ‘킬러 콘텐츠’
당시 신문은 왜 앞다퉈 소설을 연재했을까. ‘신문지의 본래 사명인 매일매일의 뉴스를 알리는 한편 신문지의 일단에는 오래 게재되는 한 개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실어서 독자로 하여금 그 ‘이야기’때문에 다른 신문으로 개가하는 것을 방지하여야 겠다, 이리하여 신문에는 신문 소설을 연재하는 것이다.’(신문소설강좌 1 신문은 왜 소설을 요구하나, 조선일보 1933년9월6일) 신문이 충성스러운 독자를 확보하려면 뉴스 전달 이외의 독자적 ‘킬러 콘텐츠’가 필요한데, 그게 연재소설이라는 설명이다.
◇가정주부와 학생이 연재소설 主독자
원래 신문소설은 여성과 학생층을 타깃으로 했던 듯하다. 김동인은 신문 소설 독자에 대해 ‘나는 일찍이 식자(識者) 계급의 사람이 신문소설을 읽는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다’면서 ‘신문 소설의 애독자란 가정 부인과 학생이 대부분을 점령하고 그 밖에는 상로(商路)의 상인과 극안가의 자극밖에는 섭취할 수 없는 직공군(群)과 소점원이 대부분을 점령한다’(‘신문 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나’, 조선일보 1933년5월14일)고 했다. 신문소설 작가는 이런 독자층을 고려하지 않을 수없다고도 했다.
◇'신문 독자 90%가 연재소설 읽는다’ 호언
하지만 신문 소설이 주목을 끌면서 독자층도 점점 더 확대된 모양이다. 1935년 월간지 ‘삼천리’(제7권제6호) 설문에 응한 김형원 당시 조선일보 편집국장은 ‘신문 소설을 가정부녀나 보는 것으로 알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적어도 현대의 복잡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누구나 위안을 구하게 되고 위안을 얻을 기회가 적은 우리 사회에서는 신문 소설만이 가장 보편적으로 위안을 드리는 재료가 될 줄로 믿습니다’라고 답했다. 여성만이 아니라 현대인 전반을 위해 ‘가장 보편적으로 위안을 드리는 재료’로 신문 소설을 꼽았다.
신문 구독자 중에서 연재소설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김형원 국장은 ‘전 독자의 90파-센트는 소설까지 애독하는 독자로 믿습니다’라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김동성 조선중앙일보 편집국장은 ‘전 독자의 50파-센트는 되는 줄 아옵니다’라고 했고, 설의식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분명한 숫자는 들기 어렵습니다마는 독자를 유별(類別)해 본다면 이 방면의 독자가 가장 많으리라고 믿습니다’라고 답했다. 3대 일간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연재소설을 읽는 독자 비중이 가장 크다고 답할 만큼, 연재소설이 신문에서 갖는 비중은 막강했다.
◇'한회라도 독자가 하품할 곳이 없어야’
신문 연재 소설은 단행본이나 잡지 연재와는 어떻게 다를까. 김동인(1900~1951)은 ‘신문 소설이라는 것을 보는 두 가지의 눈이 있다’면서 ‘첫째는 신문인 측의 눈이오, 하나는 청교도적 문인의 눈’(‘신문 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나’, 조선일보 1933년5월14일)이라고 설명한다.
‘신문인 측의 눈으로는 내용의 무엇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고려되는 것이 ‘이 소설이 신문 지상(紙上)에 적합하냐, 매일 백몇십행씩 연재를 하여 신문을 장식하면 독자가 그 때문에 끊으려는 신문을 끊지를 못하고 그냥 구독하겠느냐, 이 소설은 그만한 흥미와 애정을 가졌느냐, 첫회부터 이 소설은 독자의 흥미를 넉넉히 끌겠느냐, 중도에서 읽기 시작해도 넉넉히 흥미를 끌겠느냐, 남의 집에 이웃을 가서 우연히 그 한회를 보고도 그 소설의 매력에 취하여 이튿날부터 그 신문의 구독자가 되겠느냐, 매회에 넉넉히 클라이막스가 들어서 한회뿐으로도 희넉넉 재미있게 보겠느냐, 지리한 점은 없느냐, 그 한회라도 독자의 하품을 자아낼 만한 곳이 없느냐’하는 것이다.’
신문에 매회 실릴 때마다 독자들의 흥미를 끌 수있느냐가 연재소설의 관건이라는 취지다. TV일일드라마의 요건과 비슷하게 들린다. 하지만 문단의 평가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문인측의 눈은 그 소설을 제1회부터 종말까지를 통하여 보아서 거기서 문예적 가치를 발견하면 그것으로 넉넉한 것으로서 그 중도에 비록 20회, 30회를 연하여 독자의 하품을 자아내는 지리하고 귀찮은 장면이 있을지라도 그러한 점은 돌아보지 않는다.’ 신문계와 문단이 말하는 ‘걸작’의 구별이 생긴다는 것이다. 신문 연재소설이 갖는 핵심 특징을 잘 짚었다.
◇'매회 서스펜스가 있어야’
극작가 겸 소설가 윤백남(1888~1954)도 ‘명랑과 유모어를 실은 위에 대중의 갈 길을 암시하고 취미를 향상시키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소설이 된다 하면 이것은 대중소설의 극치’(‘신문소설 그 의의와 기교’, 조선일보 1933년 5월14일)라면서 신문 소설은 대중 소설을 지향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신문소설은 ‘매회매회에 일종의 ‘서스펜스’를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조선에 있어 위에 말한 바와 같은 명랑과 청신을 담은 훌륭한 대중소설이 나오지 못한 원인은 작자의 무기력한 것도 있거니와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우리 조선인 생활 그것에 명랑성이 있기 어렵고 또 번화하고 청신한 생활이 드문 것도 원인이다’고 했다. ‘부르주아라 한들 얼마나 굉장한 부르주아가 있으며 식크하고 모던하다 한들 얼마나 식크하고 모던-할 것이냐’라고도 했다. 명랑과 유모어를 갖춘 계층이 없는데, 어떻게 그런 작품이 나올 수있느냐는 항변이다.
그런가 하면, 이무영은 신문 소설에 대한 애증을 토로하기도 했다. ‘아사(餓死)할 지언정 저널리즘의 사도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러한 결심을 한 것은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신문 소설을 쓰게 되는 자신을 돌아볼 때 어떤 때는 눈물이 나도록 자신이 불쌍하여 진다.’ (‘신문소설에 대한 관견’, 신동아 제4권5호, 1934년5월)
◇군국주의에 휘말린 근대 문학의 상처
가끔 대중성, 상업성 논란도 있었지만 1930년대 근대 소설이 신문이라는 뉴미디어와 손잡고 전성기를 구가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 문학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작품들이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193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근대 문학이 전쟁으로 치달은 일본 군국주의의 돌풍에 휘말린 것은 상처이자 손실이다. 하지만 시각을 바꾸면 기회일지도 모르다. 식민지와 파시즘을 통과한 경험이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로 이어진다면, 우리가 세계에 내놓을 만한 자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김기림, 신문소설 올림픽시대, 삼천리 제5권제1호, 1933,1
(설문)조선문화와 민중과 신문, 삼천리 제7권제6호, 1935, 7
천정환, 근대의 책읽기, 푸른 역사,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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