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대만 총통 선거가 증명한 민생 정치의 힘

베이징=이윤정 특파원 2024. 1.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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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이 독립하거나 중국과 통일하면 먹고사는 문제가 나아지나요? 높은 집값, 낮은 임금 같은 경제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해요. 그런데도 상황을 이렇게 만든 민주진보당(민진당)과 국민당은 여전히 서로 반중, 친중이라며 싸우기 바쁘니 등을 돌릴 수밖에요. 커원저 민중당 후보는 유일하게 우리들의 경제적 고충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에요."

양안(중국과 대만)·안보 문제에 갇혀버린 양대 정당과 달리 민중당은 일자리, 저임금, 주거 등 민생 경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 2030 청년층이 가장 지지하는 정당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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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산업부 기자

“대만이 독립하거나 중국과 통일하면 먹고사는 문제가 나아지나요? 높은 집값, 낮은 임금 같은 경제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해요. 그런데도 상황을 이렇게 만든 민주진보당(민진당)과 국민당은 여전히 서로 반중, 친중이라며 싸우기 바쁘니 등을 돌릴 수밖에요. 커원저 민중당 후보는 유일하게 우리들의 경제적 고충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에요.”

대만 총통 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저녁, 타이베이시 총통부 앞 제3정당 민중당 유세 현장에서 만난 31세 청년 리모씨의 말이다. 그는 어느 정당도 응원하지 않는 무당파였지만, 이번 선거부터 민중당을 지지하게 됐다고 했다. 리씨의 머리 위에는 ‘대만 새 정치의 새싹이 되겠다’는 의미가 담긴 초록색 새싹 핀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커 후보가 대만 총통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그 자신과 민중당의 약진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커 후보는 26.5%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대만 총통 선거가 직선제로 전환한 1996년 이후 제3정당 총통 후보 중 최고 기록이다. 같은 날 치러진 입법의원(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기존 5석에서 8석까지 늘리는 데 성공했다. 민진당(51석), 국민당(52석) 모두 과반(57석)에 미달한 만큼, 민중당이 법안 통과 여부를 결정짓게 됐다.

이는 민중당이 ‘민생 경제’에 집중한 덕이다. 대만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대에 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5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고, 주택가격지수도 3분기까지 21개 분기 연속 상승했다. 반면 물가 수준을 반영한 1~10월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7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양안(중국과 대만)·안보 문제에 갇혀버린 양대 정당과 달리 민중당은 일자리, 저임금, 주거 등 민생 경제 해결에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 2030 청년층이 가장 지지하는 정당으로 거듭났다.

대만 선거 현장에서 자연스레 한국이 떠올랐다. 한국 역시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4%에 그쳤고, 고물가·고금리 현상은 장기화하고 있다. 버는 돈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도 대만과 똑같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올해 1~10월 상용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이 1년 전보다 1.0% 감소했다고 한다.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첫 마이너스다. 민생 경제 안정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기다.

하지만 한국 정당들은 매번 선거 때마다 민생 경제는 뒷전이었다. 이보다는 이념과 권력 다툼이 먼저였고, 상대방을 심판해야 한다고 호소하며 표심을 얻어왔다. 4월 총선 정국이 막 시작된 최근 여야의 당 대표를 했던 이들이 당내 권력 다툼에서 지는 바람에 거의 동시에 탈당, 창당에 나선 사태가 대표적이다. 이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갤럽 연간 통합 조사에 따르면, 무당층 비율이 지난해 28%를 기록했다. 2015년(31%·지지 정당 없음+의견 유보) 이후 최고치다.

이념보다는 먹고 사는 문제가 더 중요해진 요즘이다. 대만 총통·입법의원 선거는 이를 명확히 드러냈고, 민생 경제에 집중한 정당이 정치 개혁의 마중물이 됐다. 한국도 반으로 갈라져 싸우는 극단의 정치가 아닌, 국민의 삶을 최우선으로 두는 실용주의 정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정당, 정치인이 있다면 민심은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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