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갤럭시 S24는 아이폰을 이길까
내심 지켜주고 싶은 상대를 평가하는 자리에 서봤는가. 그렇다면 애쓰지 않고도 칭찬이 술술 나오는 상황이 얼마나 다행인지 공감할 것이다. 작은 장점이라도 찾아내겠다는 수고도, 어쩔 수 없이 쓴소리를 해야 하는 난감함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실리콘밸리서 열린 삼성전자의 인공지능(AI) 스마트폰 ‘갤럭시 S24′ 언팩(공개) 행사가 기자에겐 그런 자리였다. 갤럭시 스마트폰을 쓰는 현지인에게 ‘왜 쓰시냐’는 물음이 절로 나올 만큼 애플이 시장을 장악한 이곳에서, 삼성이 한 번쯤 시원한 펀치를 날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삼성이 갤럭시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혁신엔 항상 씁쓸한 뒷맛이 남았었다. ‘달과 은하수도 찍는 카메라’는 실생활과 거리가 멀었고, 폴더블(접는) 스마트폰은 하드웨어상 대단한 기술 돌파임에도 견고한 애플 팬층을 뚫을 ‘게임 체인저’는 못 됐다. 행사 전 ‘AI 스마트폰’을 공개한다는 예고에도 허물없는 칭찬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못 했던 것은 이처럼 반복되는 아쉬움의 경험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평소 갤럭시에 냉소적이던 외신 기자들은 인터넷 없이도 작동하는 통번역과 비어있는 배경을 감쪽같이 채워주는 생성형 이미지 편집과 같은 AI 기능에 진심으로 놀라워했다. 곧이어 주요 외신에는 ‘아이폰을 뛰어넘는 스마트폰이 마침내 등장’했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AI가 스마트폰 경쟁을 원점으로 돌렸고, 삼성이 일단 앞서고 있다’는 호의적인 평가는 물론, ‘쓰던 아이폰을 갤럭시로 바꿔야겠다’는 이례적인 댓글까지 줄줄이 달렸다. ‘애쓰지 않고도 칭찬할 게 많겠다’는 기대는 비로소 확신이 됐다.
다만 이 같은 호평은 삼성이 AI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 대한 인정일지언정, 향후의 AI 경쟁에서 승리를 거둘 것이란 뜻은 아니다. 최근 만난 실리콘밸리 1세대 창업자인 이종문 암벡스벤처그룹 회장은 “한국 엔지니어들은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데는 특출나지만, 완벽하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진 못한다”고 지적했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갤럭시 S24가 내세운 통번역·문서 요약·이미지 편집 등은 전부 어디선가 봤었던 익숙한 AI 기술의 고도화 버전이었다. 모바일 검색의 정의를 뒤바꿀 만큼 혁신적이라는 ‘서클 투 서치’도 결국 구글 AI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서비스다. AI 스마트폰이라는 미래의 시작점으론 충분히 훌륭하지만, 전쟁을 이길 필승 무기는 못 된다는 것이다.
삼성이 AI 스마트폰의 포문을 열었지만, 혁신의 대명사인 애플이 차기 아이폰에 완전히 새로운 AI 기술을 탑재해 판을 뒤집을 가능성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삼성의 ‘파괴적 혁신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부디 애쓰지 않고 삼성을 칭찬할 수 있었던 오늘의 뿌듯함이 특별한 경험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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